조홍래 이노비즈 회장

최근 우리나라 경제를 뒤흔들고 있는 ‘일본 수출규제’를 보면서 문득 구밀복검(口蜜腹劍)이라는 고사성어가 떠올랐다. 이는 입속에는 꿀을 머금고 있지만 뱃속에는 칼을 가지고 있다는 뜻으로 겉으로는 친한 척 하지만 속으로는 해칠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겉과 속이 다르게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그 간 우리나라는 일본과의 역사적 적대감을 넘어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추구해 왔으며, 지난해 기준 일본과의 무역규모는 851억달러로 중국 미국에 이어 3위를 기록하는 등 경제적으로도 최우방 국가로서 서로 많은 영향을 주고 받았다. 특히 민간에서는 상호 협력 관계임을 인식, ‘안전, 신뢰, 신용’이라는 3가지 축을 바탕으로 일본기업과의 비즈니스를 진행하면서 여러 정치적 영향에도 불구하고 기업인들끼리는 우호적이고 부드러운 관계를 잘 유지해 왔다.

기업가정신으로 지속성장 기틀 확보

하지만 금번 수출규제에서 보듯 향후 경제방향의 큰 틀을 정하는 국가정책에서는 ‘혼네(속마음)와 다테마에(겉마음)가 다르다’라는 말처럼 지금까지 교역관계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여지없이 보여준 것이다. 일본정부는 현행 수출규제 외에도 우방국 큰 잣대 중 하나로 여겨졌던 전략물자 수출 시 통관절차 간소화 혜택을 부여하는 화이트리스트에서도 한국을 배제하는 등 극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와같은 일본의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정치와 외교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투트랙 전략을 통해 외교적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정상화를 통해 이전처럼 상호 협력관계로 돌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허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어떤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거목(巨木)’처럼 우리 실력을 키워나가야 함에 있다. 이미 정부에서도 산업의 대외의존도를 완화하고 근본적인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개발에 ‘2020년부터 10년 간 1조원을 투입하고, 생산성향상 시설에 대한 투자 세액공제율 상향·적용 대상 확대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또한 신성장기술·원천기술 R&D 비용 세액공제 확대도 적극 검토하는 등 ‘민간투자 촉진’을 통한 ‘국산화’ 라는 과제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노력이 빛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민간에서도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먼저 중소기업에서는 기업가정신을 지속 발휘함으로써 연구개발(R&D)과 인재육성에 집중 투자하고, 차별화된 내부경쟁력을 확보해 장기적인 기업성장에 나서는 것이 우선시 될 필요가 있다.

이와함께 대기업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그간 생태계 리더로서 신속하고 집중적인 R&D 투자를 지속하면서, 중소기업을 이끌어 나가는 역할이 무엇보다도 요구된다. 일례로 몇 년 전 국내 중소기업이 고순도 불화수소를 제조하는 기술을 개발했으나 대기업의 관심 부족과 막대한 설비투자 자금 부담 등으로 실제 생산·판매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기사를 접하면서, 결국 중소기업 성장을 위해서는 대기업이 ‘상생의 파트너’이자 ‘길잡이’가 돼야 함을 느꼈다.

누구나 범접할 수 없는 기술역량 갖춰야

정상에 오래 머무는 방법은 또 다른 정상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그 간 쌓아왔던 ‘반도체 1위 국가’와 ‘혁신성’이라는 정상을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연구와 투자를 통해 부품소재 분야에서 다시 세계적인 수준을 확보해야 한다.

특히 지난 100여년 간 ‘시간의 축적’을 통해 전 산업분야에서 기술우위를 확보한 일본과, 거대한 내수시장을 활용한 ‘공간의 축적’을 통해 산업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중국에 대응하여, 상대적으로 부족한 여건을 가진 한국이 취해야 할 것은 ‘전략의 축적’ 이다.

뛰어난 ICT 기술과 인프라를 활용한 융합과 모듈화 등을 바탕으로 우리가 보다 잘 할 수 있는 핵심기술 확보에 역량을 집중해야 하는 것이다.

흔히 국제정치에서는 영원한 적도 우방도 없다고 한다.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글로벌경제에서 꿋꿋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기술역량을 갖춤으로써 우리 스스로 거대한 거목(巨木)이 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