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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

남산엔 '국치길' 광교엔 '경제침탈길'

서울관광재단 '다크투어'

"눈 아닌 마음으로 기억"

등록 : 2019-08-14 12:06:19

서울관광재단이 광복절 74돌을 맞아 '아픈 역사'를 되새길 수 있는 장소를 소개한다. 비극적인 역사의 현장을 돌아보는 '다크투어리즘'을 통해 잊어서는 안될 역사를 기억하자는 취지다.

◆조선을 통치하던 시설들 =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일제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조선을 통치하기 위해 들어섰던 여러 시설들 흔적을 따라 조성한 2㎞ 구간은 '남산 국치의 길'이다. 1910년 8월 22일 데라우치 통감과 이완용 총리대신이 한일병합조약을 체결했던 한국통감관저 터에서 출발한다. 지금은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기억의 터'로 탈바꿈했는데 관저 터를 알리는 비석과 '거꾸로 세운 동상'이 있다. 일제는 대한제국 외교권을 빼앗은 을사늑약 체결 공로자로 하야시 곤스케 주한 일본 공사의 동상을 통감관저 앞에 설치했는데 해방 이후 당시의 치욕을 기억하기 위해 동상 잔해를 모아 거꾸로 세웠다.

남산자락 리라학교와 숭의여대에는 노기신사 터와 경성신사 터가 남아있다. 노기신사는 러일전쟁 당시 일본 육군을 지휘한 노기 마레스키를 모셨고 경성신사는 침략전쟁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던 이세신궁 일부를 가져와 만들었다.

한양공원은 남산 케이블카 탑승장 위쪽에 남아있는 비석으로 흔적을 알 수 있다. 1910년 일본인들을 위해 세워진 공원 입구에 있던 비석이다. 서울교육청 과학전시관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일제강점기 조선신궁으로 통하는 계단 일부였다.

◆광교~숭례문~서울역 '경성 금융가' = 종로구 관철동 보신각 남쪽 광교를 시작으로 숭례문을 지나 서울역까지 이어지는 구간은 조선은행을 비롯해 조선저축은행 한성은행 등 여러 은행이 밀집했던 금융가였다. 한반도를 효율적으로 수탈하기 위해 세워진 건물도 있었다. 1908년 일제가 대한제국 토지와 자원을 수탈하기 위해 설치한 동양척식주식회사가 대표적이다. 일제는 토지조사사업을 통해 토지와 농지를 헐값으로 매입하거나 강제로 빼앗았다.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던지고 토지개량부 간부들을 사살한 나석주 의사를 기리는 동상으로 당시 자리를 확인할 수 있다.

한국 최초의 천주교 본당인 명동성당도 아픈 역사와 관련이 있다. 친일파 이완용이 명동성당에서 열리는 벨기에 국왕 추도식에 참석한다는 보도를 접하고 이재명 의사가 군밤장수로 변신해 칼을 휘둘렀다. 이완용은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만 의사는 일본 경찰에 체포, 사형선고를 받고 순국했다.

한구은행 화폐박물관은 옛 조선은행 건물이다. 이곳을 본점으로 일제는 한국 금융계를 장악하고 중국 침략 발판을 마련하고자 했다.

◆궁녀 가마를 타고 도망친 임금 = 고종은 명성왕후가 시해된 뒤 경복궁을 빠져나와 러시아 공사관으로 몸을 피하는데 2011년 미국 대사관 직원 숙소부지가 우리 소유로 바뀐 이후 아관파천 당시 '고종의 길'이 복원됐다. 총 120m에 불과하지만 궁녀가 탔던 가마에 몸을 싣고 도망쳐야 했던 왕의 길이다.

옛 러시아 공사관은 한국전쟁때 파괴돼 첨탑과 지하통로만 남아있다. 고종은 1년간 공사관에 머물다 정동 덕수궁으로 환궁한다. 서양식 건축물인 중명전은 황실도서관으로 사용하기 위해 지었지만 덕수궁에 불이 난 이후 고종 집무실로 바뀌었다. 이토 히로부미가 군사를 이끌고 고종과 대신들을 압박, 강제로 을사늑약을 체결한 장소가 중명전이다.

재단은 다크투어리즘 명소들을 소개하며 "눈으로 보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바라보며 기억해야 할 여행"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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