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중경 한국공인회계사 회장

극일의 목소리가 크다. 일본에 지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지는 것은 의미가 크다. 그러나 작은 싸움도 합당한 준비 없이 시작하면 낭패를 볼 확률이 높다. 우리보다 땅덩어리가 크고 인구도 많고 경제력과 군사력이 월등한 일본과 싸워 지지 않으려면 단단히 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대한민국에서는 이런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일본을 너무 쉽게 본다. 명분 없는 임진왜란을 일으켜 조선에 큰 피해를 입히고, 식민 지배를 통해 야만적 행위를 했던 일본을 도덕적으로 낮춰 보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 하나, 임진왜란의 배경, 무기체계, 군사전술, 산업구조, 교훈에 관한 토론은 없고 이순신 장군의 승전이 임진왜란의 모든 것인 것처럼, 그래서 형편없이 깨진 일본수군이 일본을 대표하는 것처럼 인식하도록 한 역사교육의 탓일 수도 있다.

일본을 근거 없이 쉽게 보는 습관 버려야

일본은 그렇게 쉽게 볼 수 없는 나라이다. 일본을 알고 싶으면 우선 인터넷에도 일부 떠있는 태평양전쟁 기록영화를 볼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일본해군은 1930년대에 항공모함을 만들고 항공모함에 탑재된 폭격기와 전투기를 활용한 전술을 발전시켜 미국해군보다 앞서가는 입장에 있었다. 진주만기습도 태평양에 떠있는 항공모함에서 발진한 폭격기들이 주역을 맡았다. 태평양전쟁 개전당시 일본군 주력항공기 제로쎈전투기는 최고성능의 전투기로 이름을 떨쳤다.

일본을 제대로 알려면 란가쿠(蘭學: 일본 에도시대 네덜란드에서 전래된 지식을 연구한 학문)가 일본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보아야 한다. 일본은 17세기부터 네덜란드를 통해 서양의 문물을 받아 들였다. 페리제독의 함대가 개항을 요구했을 때 미국함대 기함에 오른 일본관리가 유창한 네덜란드어로 협상에 임했다는 일화가 란가쿠가 일본에 끼친 영향의 폭과 깊이를 가늠하게 한다.

미국에 개항을 약속한 1854년 가나가와 화친조약(미일 화친조약)은 미국 해군이 끌고 온 증기선을 처음 보고 놀라서 근대화의 스승을 네덜란드에서 미국으로 바꾼 사건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미국을 새 스승으로 모시고 50년간 정진한 결과 청나라와 러시아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20세기 초에 강국 반열에 올랐다.

이런 얘기를 하면 친일파로 몰아세우는 세력이 있는데 손자병법에서 ‘지피지기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라 했다. 싸움에서 지지 않으려면 우선 상대방의 역량과 우리의 역량을 상세하게 알아야 한다. 현재 한국 산업 일본의존도가 높은 현실과 양국 국력을 비교해 보면 싸움에 이길 준비는 되어 있지 않다.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해서 패배감에 젖어 있을 필요는 없다. 우리 산업의 일본의존도를 낮춰 나가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하다 보면 일본을 극복할 수 있는 날이 온다. 하지만 일본을 이기겠다고 공개적으로 소리를 지르는 것은 하책이다. 소리 지르면 일본이 우리를 어렵게 만들 건 자명한 이치인데 공매를 부를 이유가 없다. 전쟁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정세판단을 잘못하여 청나라와의 타협을 거부한 인조는 전쟁을 예상하면서도 모든 것은 하늘의 뜻 운운하며 지도자답지 않은 모습을 보였는데 역사에 되풀이되면 안 된다.

세계무대에 나가보면 일본의 위상은 당당하다. 우리는 G20의 일원임을 자랑하지만 일본은 G7의 일원으로서 세계질서 형성과정에 깊숙이 간여한다. 아시아개발은행의 주인 노릇을 하며 아시아 개발도상국가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여러 국제기구에 많은 돈을 기부하며 발언권을 키우는 모습도 눈에 띤다.

작은 싸움도 합당한 준비 있어야

특히 일본이 태평양전쟁 적이었던 미국에 들여온 공은 우리 상상을 훨씬 초월한다. 이미 워싱턴 정계와 관계에선 일본 전문가 그룹을 지칭하는 이른바 ‘재팬 스쿨’이 활약하고 있어, 미국이 한국 편을 들 공간은 매우 비좁아 보인다.

우리는 그동안 한미혈맹을 얘기했지만 워싱턴에 합당한 투자는 하지 않았다. ‘코리아스쿨’도 양성하지 못했다. 일본의 수출규제가 부적절하지만 미국이 어정쩡한 태도로 일관하는 것은 뿌린 대로 거둔다는 진리를 확인해 주고 있다. 우리보다 강하고 치밀한 일본을 근거 없이 쉽게 보는 습관을 버려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극일의 길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