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서울 모 지역은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 수가 줄지 않아 고민이였다.

그래서 기존의 접근과 다른 방법으로 지역주민 당사자들의 의견을 직접 들어보기로 했다. 지역 토론회를 기획했고, 적지 않은 주민들이 참석해 진행했다. 평일 저녁 마을 카페에 모여 2시간씩 3회, 대략 6시간의 토론회 동안, 다양한 주민들이 마을 생명사랑 활동에 대해 토론했다.

마을에서 우울과 자살에 관한 대화에 사람들 모이기란 어렵지 않을까 하는 것은 기우였다. 살고 죽는 것은 모두의 문제였고, 힘들게 살고 어렵게 살고 고통을 겪어내는 생활은 인간의 보편성이기에 어려움 없이 여러 이야기가 오갔다. 이 토론회를 준비하고 진행한 우리 팀은 다음과 같은 강렬한 교훈을 얻었다.

첫째, 마을에서 일어난 극단적 선택에 대한 통계 자료의 제공, 즉 마을 정보는 토론을 촉발하는 중요한 자극제였다. 자신들의 마을에 그만큼의 안타까운 죽음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주민들은 마치 마을을 진단하는 의사같은 태도로 마을에 대해 묻고 성찰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무관심, 무지에 대해서는 부끄러움 책임감 당혹함을 공유했고, 또 지역의 단절과 고립에 놀라워했다.

둘째, 주민들은 마을 사람들이 관련되어 있는 죽음의 단서나 자극들을 훨씬 더 구체적으로 알고 있었고, '팩트'를 이루는 마을의 진실들에 가장 근접해 있었다. 그래서 탁상공론이 아닌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토론을 했다. 그 지역의 교통, 병원, 복지기관 그리고 동네의 분위기까지 토론되면서, 아주 구체적인 안내지도가 만들어졌다. 외부인들은 도저히 알기 어려운 그 지역이 지닌 속앓이 문제를 이해하고 공유할 수 있었다.

셋째, 생명과 관련된 마을 활동은 단지 의료적 차원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해주었다. 어떤 마을에서는 임대 아파트의 재계약이, 또 다른 마을에서는 병원에 가기 위한 교통 문제가, 또 다른 곳에서는 노인층의 질병이 자살의 촉발제가 되었다는 것을 통해, 그 지역사회가 갖고 있는 다양한 사회적 이슈가 극단적 선택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특히 고독과 고립은 마을의 핵심적 문제로, 공동체의 회복이 얼마나 절실한가를 깨우쳐주었다.

넷째, 토론에 참여한 주민들은 자살과 관련된 질환인 우울증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어해서 함께 공부를 했고, 또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의 경고 징후에 대해서도 공부를 해서 주변에서 그런 신호들을 파악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기를 원했다. 위기의 순간에 병원에 갈 수 있도록, 혹은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직접적인 생명사랑 응급 구호활동을 배웠다. 그래서 함께 학습 공동체가 되기도 했었다.

끝으로 이 토론은 우리 마을을 위해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에 대한 실천을 이끌어냈다. 이 토론의 자료들은 구청과 의회에 전달이 되었고, 특정한 사안들은 현실 행정에 반영되는 결과를 얻었다. 토론 후 마을에서 모임을 시작한 분도 계시고, 돌봄의 활동을 확대하는 행정적 실천과도 연결되었다.

서울 424개동에서 이런 생명사랑 활동이 활성화 되어 자발적인 연결과 돌봄이 촘촘히 이루어지면, 우리의 무너진 공동체를 회복하는 과정에 가속도가 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실제로 이런 활동을 통해 지난 4년간 스스로 생명을 끊은 사람이 한 명도 없었던 곳이 서울 한 복판에 있다. 서울 마포구 성산동 '명랑촌'이 바로 그 곳이다. 자발적인 주민 모임인 '명랑촌'의 촌장 박미자님은 '관심'이 가장 큰 회복력의 요소라고 했다. 마을의 문제로 함께 토론하고 배우고, 만나서 동네 주민들을 관심있게 챙기고 돕다보니 한 명도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는 마을이 되었다고 했다.

자살예방정책의 여러 전략 중에 시민들 스스로가 참여하여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생명사랑 활동은 생명과 마을을 동시에 살려내는 일석이조, 일석삼조의 활동이다. 국제적 자살예방 전략의 기본이 게이트 키퍼(gate keeper 생명사랑 지킴이) 양성인 이유는 명랑촌과 같은 근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한다. 서울 마을의 핵심 가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살리는 활동, 위기에 참 사람을 살리는 생명사랑활동이 마을 활동의 핵심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