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정책연구원 '미투 이후 과제' … "근로감독관마다 처리 다르면 안돼"

성폭력 사건 발생 뒤 다양한 2차 가해가 발생하고 있지만 법적 개념이 명확하지 않아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또한 근로감독관 개개인의 경험과 역량, 근무조건에 따라 사건 대응이 달라지지 않도록 세부지침이 나와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여정연)은 20일 오후 2시 서울 불광동에서 '미투 이후, 성희롱·성폭력 신고센터 운영과 향후 과제'를 주제로 제118차 양성평등정책포럼을 연다. 미투 운동 이후 정부가 추진해 온 성희롱·성폭력 근절 대책들 중 사회분야별 성희롱·성폭력 신고시스템에 초점을 두고 운영 성과와 한계, 향후 개선 과제를 모색하기 위한 자리다.

이번 포럼에 토론자로 참석하는 안지희 법무법인 위민 변호사는 발제문을 통해 "유형화하기 어려울 정도로 여러 양상의 2차 가해행위가 발생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2차 가해에 대한 법적 개념정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여성가족부는 법무부 등과 협업해 2차 가해 개념 정의 및 법제화 검토를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고 건수 적다고 사건 미발생 아냐" = 공공부문에서 일어나는 성희롱 사건 처리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도 나오고 있다. 안 변호사는 "성희롱 발생건수를 기준으로 하는 기관평가 방식 개선이 필요하다"며 "사건이 많이 발생했다고 해당 기관에 감점을 주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건을 처리하는 기관에 가점을 주는 방식으로 기관평가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희롱 사건이 적게 신고 되는 기관이라고 해서 반드시 성인지 감수성이 뛰어나지는 않다는 것. 기관평가에서 감점을 받게 되면 오히려 사건을 감추게 되고 기관장도 적극적으로 처리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민간 영역도 마찬가지다. 구미영 여정연 연구위원은 "1999년부터 성희롱 관련 사업주의 조치의무, 불이익금지 조항이 도입됐지만 정작 기업현장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며 "미투 운동 이후 지난해 설치된 고용노동부의 익명신고센터에 폭발적으로 접수 건수가 많았던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구 연구위원은 또 "미투 이후 성희롱, 성폭력 문제에 대한 사회의식이 높아진 상황에서 고용부가 전문적이고 효율적인 대응 체계를 갖추지 않는다면 다시 불신의 악순환이 시작될 수 있다"며 "성희롱 피해 구제·예방의 선순환을 만들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심재명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 센터장은 "예술인 권리보장법에 따라 문화 예술 분야 특성을 고려한 분야별 기관에서 성희롱·성폭력 금지, 조사 및 징계, 구제절차 등 법적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며 "영화산업 특성상 피해자 신변 노출 위험 및 2차 피해가 더 쉽게 발생할 수 있으므로 '공동체적 해결' 방식이라는 선택지를 둔 것처럼 각 문화 예술 분야의 특성과 제도 운영의 자율성, 효율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잘못된 중재로 2차 피해 발생 막아야" = 제대로 된 정보가 부족해 피해자가 2차 피해를 호소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안 변호사는 "여가부 매뉴얼에는 성폭력 사건이 접수, 조사를 하기 전에 중재를 할 수 있다는 취지의 내용이 있는데, 여러 기관에서 해당 전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사안에 대해서도 사건이 경미하다는 생각에 피해자에게 중재를 요구하는 사례가 상당수 있었다"며 "여가부 매뉴얼에 중재 진행시 유의해야 할 점을 강조해 담당자들이 섣불리 중재를 강요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간 영역에서도 잘못된 정부의 처리로 2차 피해를 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구 연구위원은 "근로감독관 개개인의 경험과 역량, 근무조건에 따라 사건 대응이 달라지지 않도록 고용부의 세부 지침이 필요하다"며 "2차 피해 관련 사업주의 법위반 여부를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지 등 여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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