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프스트리트

이제는 미국에서도 마이너스금리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미 월가와 언론에서 가능성을 점치는 이야기들이 무성하다. 현재 전 세계 마이너스금리 채권은 국채와 회사채 포함해 약 17조달러에 달한다.

마이너스금리 정책은 위기를 단기간에 해소하기 위한 일종의 실험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단기 실험은 이제 '뉴노멀'(new normal·새로운 표준)이 됐다. 그럼에도 정책적 효과가 나지 않았다.

따라서 더욱 더 깊이 마이너스 영역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이달 들어 새로운 통화정책 부양패키지 가능성을 흘리고 있다.


독일국채 '분트'는 30년만기까지 전 영역이 마이너스 수익률이다(상단 그래프). 독일 경제는 지난 2분기 축소됐다. ECB 마이너스 금리에도 불구하고 지난 4개 분기 가운데 2분기 경제가 위축됐다. 즉 전 세계 4위 규모의 독일 경제는 내리막을 타고 있는 중이다. 마이너스 수익률에도 '불구하고' 일까, 아니면 마이너스 수익률 '때문' 일까. 이런 상황에서 ECB는 채권 수익률을 더 깊이 떨어뜨리려 하고 있다.

ECB의 새로운 부양책을 준비중이라는 소식이 퍼지면서 유로존뿐 아니라 유럽연합 소속 모든 나라의 은행주들이 충격과 공포를 나타내고 있다. 이달 들어 유럽 은행주는 11% 하락했다.

11% 하락은 거품의 절정에서 추락한 게 아니다. 이미 내려갈 대로 내려간 상황에서 또 하락한 것이다. 은행주는 2007년 최정점 기준에서 보면 78% 하락했다. 현재 주가는 1990년 은행주 인덱스가 처음 선을 보인 때와 동일하다. 약 30년 전 수준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온라인금융매체 '울프스트리트'는 21일 "마이너스금리는 은행에 악몽이다. 사업모델을 망가뜨린다"며 "은행들이 손실을 흡수할 자본을 충분히 쌓아둘 수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일본에서도 비슷한 악몽이 벌어지고 있다. 일본은 양적완화(QE)라는 말이 사용되기 훨씬 이전부터 사실상의 양적완화를 통해 금리를 낮춰왔다. 지난 20년 동안 제로금리 또는 마이너스금리를 시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일본 은행주 지수는 이달 1일 이후 8% 하락했다. 일본중앙은행이 새로운 부양조치를 시행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면서다. 현재 일본의 은행주는 2006년 기준에서 보면 73% 하락했다.

1980년대 거품경제 시기까지 포함하면 더 충격적이다. 1989년 토픽스 은행지수는 1500포인트로 최정점에 달했다. 현재는 129포인트다. 지난 30년 동안 91% 하락했다.

이처럼 제로금리 또는 마이너스금리는 장기적으로 은행들에게 치명타다. 이는 결국 은행에 의존해 자본을 조달하는 실물경제에도 치명타다.


시중은행은 예금을 받고 대출을 시행한다. 예금에 지급하는 이자와 대출로 벌어들이는 이자 간의 차이로 돈을 번다. 하지만 기준금리가 마이너스라면, 은행의 이익이 크게 줄어든다. 그럼에도 리스크는 더 커진다. 담보로 사용되는 자산 가격이 저금리로 크게 부풀려지면서다.

처음엔 괜찮아 보인다. 하지만 장기간 진행되면 은행의 사업모델은 심각한 난관에 봉착한다. 마이너스금리 때문에 은행들은 어떤 종류의 리스크도 마다하지 않으려 한다. 은행들은 위험한 영역에 발을 들이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CLO(대출채권담보부증권) 시장이다. CLO는 정크등급 레버리지론에 기초한 상품이다. 달리 말하면 투기적인 금융 리스크 위에 세워진 상품이다. 현재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전 세계 은행들이 대거 발을 들여놓았다(하단 그래프).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은행은 점차 불안정해지고 위태로워진다.

실물경제와 관련해 마이너스금리는 더 파괴적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 경제적 결정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요소를 왜곡한다. 바로 리스크를 가격으로 산정하는 기능이다.

리스크는 자본 비용으로 평가된다. 위험한 기업에 투자할 경우 투자자들은 더 많은 수익을 요구한다. 리스크에 대한 보상 때문이다. 안전한 또는 덜 위험한 기업에 투자한다면, 그만큼 수익 또는 보상은 낮아진다. 이를 결정하는 건 시장이다.

하지만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마이너스 영역으로 계속 짓누르면, 이같은 과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리스크는 더 이상 가격으로 산정될 수 없다. 가장 부합한 사례는 유럽의 특정 정크등급 회사채들이 현재 마이너스 수익률로 거래되고 있다는 사실이다(내일신문 2019년 7월 11일 10면 '정크본드마저 마이너스 수익률' 참조). 유럽 내 리스크 가격산정 시스템이 붕괴했음을 의미한다.

리스크가 정확히 산출되지 않는다면, 각종 악영향이 나타난다. 잘못된 투자, 잘못된 결정을 이끈다. 과도한 생산, 과도한 설비를 유도한다. 전체 금융시스템에 막대한 리스크를 지우는 자산거품을 부추긴다. 담보로 쓰이는 자산의 가치가 마이너스금리로 크게 부풀려지기 때문이다.

울프스트리트는 "독일 경제가 침체를 향해 가는데도 베를린과 뮌헨 등 주요 도시의 부동산이 계속 고공행진을 하는 상황은 바로 이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상황이 어떤 결말을 맺을까. 아무도 모른다. 아무도 이런 상황을 과거에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 암시는 있다.

마이너스금리가 이같은 상황에 일조했음이 분명하지만 ECB는 그같은 부양책을 더욱 강도높게 추진하려 한다.

울프스트리트는 "유럽과 일본의 중앙은행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바로 대규모 시장조정이다. 그 때문에 효과가 없음이 드러난 부양책을 또 다시 꺼내든 것"이라며 "마이너스금리를 지속할수록 경제 시스템은 더 망가진다"고 지적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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