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부에서 최소한의 금도인 준법마저 무너지고 있다. '위법'이나 '초법'이 관행이 되고 있다. 법을 만드는 곳에서 법을 우습게 아는 풍토가 확산되는 분위기다. 입법부 스스로 존재의 이유를 부정하는 행위다.

자유한국당은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 일정을 법적 허용범위내에서 잡지 않아도 되지 않느냐는 취지의 입장을 공공연히, 당당히 밝혔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부득이하게 인사청문회를 상임위 형편에 따라 9월2일 또는 3일정도 까지 쓸 수 있다는 입장"이라며 "제대로 된 인사청문회를 위해서는 인사청문회 일자를 법적, 물리적으로 가능한 일정으로 잡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인사청문회법에 따르면 청문위원회(상임위원회)에 인사청문요청서가 상정(8월16일)된 지 15일 이내(8월30일까지)에 청문회를 끝내야 한다. 인사청문절차를 모두 마무리해야 하는 시점은 청문요청서가 국회에 제출(8월14일)된지 20일 이내(9월 2일까지)다.

나 원내대표는 "보다 철저한 인사검증을 위해 충분히 검증이 가능한 날짜에 (인사청문회를) 하겠다"고도 했다. 한국당(27~28일)과 민주당(30일, 현재는 연기됐음)의 연찬회 일정을 들이밀기도 했다. 그러고는 "인사청문회 보고서 채택(시한 경과)이후에 열린 인사청문회가 관행적으로 (19대 국회이후) 12차례나 있었다"면서 '위법 관행'을 주요 근거로 제시했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인사청문회가 있었다. 15일이라는 시간이 '철저한 검증'에 어려운 시간인지 의문이다. '정당 연찬회 일정'과 '위법 관행'은 더더욱 설득력이 없다. 위법을 상정해놓은 의원들이 장관 후보자의 적격성을 검증하는 게 적절한 태도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국민청문회'를 꺼내든 것은 답답한 심정을 이해하면서도 스스로의 무능력이나 자신감 부족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청문회는 국민들이 자신들을 대신한 대표들이 대통령의 임명권을 견제하라고 만든 제도다. 그런데도 여당과 청와대는 국회에서의 조율에 실패한 나머지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국민'과 '기자'에게 검증책임을 떠넘기겠다는 다소 이기적인 방안을 내놓았다. 만약 국민청문회가 성사된다면 여당, 청와대, 조국 후보자와 함께 그 청문회에 참여한 사람(기자를 포함)들은 국회의 의무이자 권한인 청문회를 대신 치른 '초법적 청문회'의 원죄를 안고 가야 할 것이다. 국회법과 인사청문회법은 국회가 인사청문회를 열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해찬 여당 대표는 한국당의 청문일정 거부에 대해 "(한국당은) 자신이 만든 법까지 너무나 쉽게 위반한다"며 "국회의원과 정당은 법 위에 있지 않다. 이 자리를 빌려 '최소한 법은 지키고 할 일은 하자'고 말씀드린다"고 말한 바 있다. 자신에게 같은 말을 자문할 시점이다.

국회가 스스로 만든 법을 지키는 것조차 점점 어려운 과제가 되고 있어 씁쓸하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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