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군, 80년대 안기부, 90년대 이후 검찰 '무소불위 권력'

검찰, 정권 초엔 야당 정권 말엔 여당 수사하면서 '권력' 유지

문재인 대통령이 정치적 부담을 무릅 쓰고 조국 법무부장관을 임명한 데는 검찰이라는 '법 위의 권력'을 개혁해야한다는 절박감이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비록 최전방 공격수(조국)가 상처투성이지만, 어떻게든 이번에 검찰 개혁을 마무리하지 못하면 또다시 '법 위의 권력'이 전횡을 일삼는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될 것이란 판단이다.

검찰은 조국-패스트트랙 수사를 통해 여야 모두를 초토화시킬 수도 있는 카드를 쥐었다. 정권과 검찰이 명운을 건 대결을 예고하고 있다.

검찰 앞 소환 대기 |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취재진이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를 비롯, 관련자 소환에 대비하고 있는 가운데 검찰관계자들이 걸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류영석 기자


◆해가 지지 않는 권력 = 권위주의 시절, 우리 사회에는 '법 위의 권력'이 출현해 무소불위 권력을 행사했다.

60∼70년대 군 출신 대통령이 집권하던 무렵에는 군이 '법 위의 권력'이었다. 군 출신들이 권력핵심부를 차지했고 군 정보기관이 반정부세력을 탄압했다. 80년대에는 국가안전기획부가 그 역할을 했다. 권력자의 강력한 통치기관으로 자리잡은 안기부는 검찰과 경찰까지 주무르면서 초법적 권한을 행사했다.

검찰은 87년 6월 항쟁 이후 민주화바람이 불면서 역설적으로 '법 위의 권력'으로 등장했다. 안기부가 더이상 초법적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게 되자, 그 빈틈을 검찰이 비집고 들어간 것. 권력자는 검찰을 앞세워 정적을 옭아매려했고, 검찰은 그 약점을 이용해 역대 어느 집단보다 강력한 '법 위의 권력'이 됐다.

검찰은 정권 초에는 야권을 쳐서 권력자의 입맛을 맞추고, 정권 말에는 거꾸로 여권을 치면서 권력을 유지했다. 어느새 검찰은 임기 5년짜리 정치권력조차 눈치를 봐야하는 위세를 누렸다.

떡검, 견찰, 색검이라는 국민적 지탄을 받았지만 정치권력의 견제 시도(개혁)를 차단할 힘이 있었다.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정권을 이어오면서 검찰은 '해가 지지 않는 권력'으로 군림하고 있다.

◆검찰 개혁 절박한 문 대통령 = 노무현정부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내면서 검찰의 저항에 부딪혀 검찰 개혁에 손도 못댔고, 이후 검찰 수사로 노 전 대통령을 떠나보냈던 문 대통령으로선 검찰 개혁이 절박해 보인다.

조 장관을 겨냥한 야권과 검찰의 총공세로 조 장관이 상처투성이가 됐지만, 검찰 개혁이 절박하고 그 역할을 수행할 적임자는 조 장관 뿐이라는 판단이 조 장관 임명이라는 강수를 두게 했다는 분석이다.

문 대통령은 9일 "자칫 국민분열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을 보면서 대통령으로서 깊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조 장관 임명에 대한 부담을 인정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지난 대선 권력기관 개혁을 가장 중요한 공약 중 하나로 내세웠고 그 공약은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았다"며 "(조 장관 임명에 대해) 국민들의 넓은 이해와 지지를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검찰 개혁이 절박한만큼 딸 입시와 사모펀드 등 무수한 논란에 휩싸여있는 '상처투성이 조국' 임명을 양해해달라는 말이다.

◆검찰, 정치권 초토화 기세 = 문 대통령이 내건 '검찰 개혁' 목표는 검찰이란 장벽 앞에 서 있다. 검찰은 조 장관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조 장관 주변에 대해 대대적 압수수색을 한 데 이어 청문회 도중 조 장관 부인을 기소하면서 본인들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조국을 반대한다"는 해석을 낳았다.

검찰은 현재 조 장관과 여야 국회의원 109명에 대한 수사를 진행 중이다. 검찰은 조 장관 가족을 넘어 조 장관 본인이 연루된 범죄혐의를 찾아내기 위해 전력을 다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본인이 책임져야 할 명백한 위법행위가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의혹만으로 임명하지 않는다면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9일 여야 의원 109명이 피고발된 패스트트랙 관련 사건 일체를 경찰로부터 송치받았다. 제1야당인 한국당 의원이 59명으로 가장 많고 제기된 혐의(국회선진화법 위반)가 중대한 편이다.

검찰로선 여야 모두에게 직격탄을 날릴 수 있는 카드를 쥔 셈이다. 여권의 "검찰 개혁"과 야권의 "권력 하수인"이란 공세로부터 검찰 자신을 지켜낼 강력한 무기를 갖춘 것이다.

결국 정권과 검찰이 명운을 건 승부를 펼치게 됐다. 정권이 앞세운 '상처투성이 조국'이 '조국·패스트트랙' 수사라는 반격카드를 가진 검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둘지는 불투명하다. 야당은 대정부 투쟁에 나섰고, 여론도 갈려 있다. 문 대통령으로선 '위험한 도박'에 나선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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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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