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북구 '백산무역과 경주 최부자' 기획전시

근현대사기념관 '노블레스 오블리주' 조명

"요즘 같으면 일부러 부실기업을 만드는 거예요. 임시정부·독립운동 자금 대려고. 일제가 철저히 감시하고 있는데 대담하게." "그 와중에 근검절약하고 이웃까지 돌보며 살았다니 놀라워요."

박겸수 서울 강북구청장과 인수동 주민들이 강북구 우이동 근현대사기념관 기획전시실에서 만났다. 민족문제연구소와 경주최부자민족정신선양회 도움으로 지난달부터 열고 있는 '나라가 없으면 부자도 없다 _ 백산무역과 경주 최부자의 독립운동' 기획전시다. 북한산자락 순국·애국선열 묘역과 4.19민주묘지를 중심으로 역사문화관광 도시로 발돋움하려는 강북구가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특별전시이기도 하다.

박겸수 강북구청장과 인수동 통장들이 독립운동과 임시정부를 후원했던 재벌가 경주 최부잣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강북구 제공


전시 주인공은 12대 만석꾼으로 잘 알려진 경주 교촌마을 최부잣집. 절제와 검약, 구휼과 기부 등 '청부(淸富)정신'으로 이름난 영남 명문가다. 수신(修身)에 대한 육훈(六訓)과 제가(濟家)에 대한 육연(六然)을 가훈으로 조선 후기 300여년간 막대한 재산을 유지해왔다. '재산은 1만석 이상 지니지 마라' '흉년에는 땅을 사지 마라' '사방 100리 안에 굶어죽는 이가 없게 하라' '스스로 초연하게 지내고' '남에게 온화하게 대하며' 등이다.

1911년 7월 매일신보에 따르면 당시 50만원 이상 보유한 자산가는 전국에 1018명인데 조선인은 32명뿐이다. 대부분 친일 귀족과 거상들인데 나머지 가운데 '경주의 최현식'이 포함돼있다. 일제침략기에도 손꼽히는 자산가였던 최부잣집이 조선총독부나 통감부가 집중적으로 감시하는 가운데 독립운동에 참여하거나 지원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있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일부 사료나 전언에 의지했던 과거와 달리 실물자료로 독립운동을 재구성해 눈길을 끈다. 지난해 6월 최부잣집 광에서 우연히 발견된 고문서 가운데 독립운동과 관련된 문화재급 자료를 엄선,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했다.

근현대사기념관은 특히 조선식산은행 근저당설정계약서와 조선신탁주식회사 부동산관리신탁계약서에 주목한다. 근저당계약에 따르면 백산무역은 식산은행에서 35만원을 대출받는데 근저당권이 설정된 부동산은 경주 710여건, 울산 62건, 전답 6만평이다. 백산무역이 파산한 뒤 사장이자 담보 제공자인 최 준은 보유 부동산 관리를 신탁회사에 이관한다. 홍정희 학예연구사는 "광복 이후에야 재산권을 되찾았는데 사회에 환원한 게 영남대학교"라며 "최 준과 독립운동자금, 최현식과 국채보상운동을 증명하는 서류와 의병 독립운동가 등 최부잣집 인맥을 중점적으로 보면 더 의미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54.22㎡ 규모 작은 사무실 크기인 기획전시실에는 지난달 9일 개막 이후부터 하루 평균 100여명씩 주민들 발길이 줄을 잇는다. 주민단체와 화계초 미양고 학생들도 방문을 예고, 전시해설을 신청한 상태다. 이혜숙(64) 인수동 통장은 "문서를 발견했다는 뉴스를 봤을 때 가슴이 울렁거렸다"며 "이번에 전시 안된 나머지 문서도 모두 보고 싶다"고 말했다. 최순남 인수동 통장협의회장은 "전에는 최가라고 하면 '고집 세다'는 얘기만 들었는데 이제는 자부심이 느껴진다"며 "통장 385명 모두 들를 수 있도록 회장들과 의논해봐야겠다"고 전했다.

강북구는 아예 평일 오전과 오후로 나눠 공무원들이 관람하도록 하고 있다. 전시와 연계한 '독립민주시민학교'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다룰 최 염 선생 강의에는 공무원과 주민들 참여를 독려 중이다. 박겸수 강북구청장은 "독립운동이라면 무력투쟁이나 국외활동, 비밀결사로만 알고 있는데 최부잣집은 모든 재산을 독립운동에 투입한 또다른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정부의 경제보복이 한창인 지금 역사적 의미가 크다"며 "우리시대 재벌들이 한번쯤은 봐야할 전시"라고 덧붙였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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