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실무협상이 9월 하순 개최를 향해 카운트다운에 돌입했다. 9월 24일을 전후해 뉴욕 유엔총회에서는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번째 한미정상회담을 갖고 동맹현안들은 물론 비핵화 협상을 위한 공동 전략을 숙의할 채비를 하고 있다.

경질된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작년 11월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정례 브리핑에 참석해 기자들에게 발언하는 모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 볼턴 보좌관을 경질했다고 밝혔다. 워싱턴 AP=연합뉴스


◆볼턴 퇴출로 '폼페이오 솔로시대' 오나 = 트럼프 외교안보팀의 개편이 미국의 외교안보정책까지 바꾸게 될지 주목을 끌고 있다. 대북강경 슈퍼 매파로 꼽혀온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퇴출되면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솔로시대가 오고 있다는 관측이 나돌고 있다. 1970년대 닉슨과 포드 시절 헨리 키신저 박사처럼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까지 겸직할 것이란 보도까지 나왔다가 트럼프 대통령의 부인으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러나 이번주 누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임명되는지와는 상관없이 '폼페이오 솔로시대'가 전개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으로 뉴욕 타임스 등 미 언론들이 보도하고 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외교안보 사안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을 뿐 아니라 핵심부서 책임자들을 거의 전원 자신의 우군으로 두고 있다. 그가 겸직하지 않더라도 볼턴의 후임 국가안보보좌관에 거명 되고 있는 인물들은 국무부 소속 스티브 비건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브라이언 훅 대이란 정책 특별대표여서 누가 기용되더라도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호흡을 맞출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은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미 육사인 웨스트포인트 동문으로 막역한 사이로 꼽힌다. 지나 헤스펠 CIA(중앙정보국) 국장은 폼페이오 장관이 국장일 때 부터 주파수를 맞춰온 파트너이다.

◆볼턴 경질, 북한에 좋은 일 = 볼턴의 전격 경질은 분명 북한 김정은 정권에게 바라던 바가 이뤄진 좋은 일이다. 볼턴은 실제로 아프간 탈레반과의 극비 협상을 누설하고 대이란 정책과 현격한 입장 차이를 보였기 때문에 볼턴을 전격 경질하면서도 북한이 눈엣가시처럼 여겨온 볼턴을 제거한 것처럼 언급해 김정은 국무위원장 달래기에도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경질된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이 북핵과 관련해 리비아 모델을 언급한 것은 큰 실수였다고 공개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볼턴과는 어떠한 관계도 엮이지 않으려 했다"고 강조했다.

공동 브리핑하는 폼페이오-므누신 | 미국의 마이크 폼페이오(왼쪽) 국무장관과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이 10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공동 브리핑을 하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 자리에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경질과 관련 트럼프 대통령과 볼턴의 의견이 다른 적이 많았다고 답변했다. 워싱턴 AFP=연합뉴스


이에 대해 국무부 비확산 부차관보를 지낸 마크 피츠패트릭 전 부차관보는 "그간 모든 것을 포기해야 많은 걸 얻을 수 있다며 최일선에서 북한과의 협상에 장애물이 됐던 볼턴을 경질한 것은 김정은 정권에게 자신들이 요구해온 새로운 계산법으로 협상에 나올 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갖게 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블룸버그 통신도 분석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볼턴을 경질함으로써 자신의 외교안보팀을 개편하는 동시에 북한과 이란 등과의 접근법에서도 다소 유연해질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김정은, 트럼프 새로운 양보 기대하면 낙담 위험 =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볼턴을 경질했다고 해서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에서 유연해진 입장을 취할 수도 있어도 새로운 양보를 할 것으로 너무 기대했다가는 베트남 하노이 때처럼 낙담할 위험이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스콧 스나이더 미 외교협회 선임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비판한 볼턴 전 보좌관의 리비아 모델 언급은 이미 오래전 공개 일축했던 것으로 대북입장의 획기적 변화를 의미하는 신호로 해석 할 수 없다"고 밝혔다. 특히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지나친 양보는 하지 않도록 억제시켜온 인물이기 때문에 곧 재개될 북미 실무협상에서 미국측이 획기적인 양보를 하지는 않을 것으로 스나이더 선임연구원은 내다봤다. 북한도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그 같은 태도를 눈치챈 듯 그간 볼턴과 함께 폼페이오도 싸잡아 비난해왔고 협상상대를 바꾸라는 노골적인 요구까지 했다.


9월 하순에 시작될 가능성이 높아진 북미 실무협상에 나올 북한 협상 대표단에 누가 나올지를 보면 북한의 실질적인 비핵화 협상의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초기 지표가 될 것으로 스나이더 선임연구원은 밝혔다.

북한은 그동안 실무협상에 비핵화와 평화체제, 새 관계정상화를 논의해 합의점을 도출해 낼 수 있는 전문가들을 내세우지 않았다고 미국측 실무협상 대표인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 특별 대표가 최근 공개적으로 불만을 터뜨린 바 있다.

◆북한이 요구하는 '새로운 계산법' = 북한은 9월 하순 대화재개 용의를 밝히면서도 미국이 새로운 계산법을 갖고 협상 테이블에 나와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그간의 물밑접촉에서 북한이 어떤 새로운 계산법을 요구했는지, 미국은 어느 정도 들어 줄 수 있다고 내비쳤는지 알 수 없지만 접점을 찾았거나 획기적인 돌파구를 찾아냈다는 징후는 아직 없는 것으로 미 전문가들은 관측하고 있다. 북한이 요구하는 미국의 새로운 계산법이 어떤 내용인지 확실치 않아 이번 북미실무협상이 어떻게 될지 가늠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우선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을 빈손 회담으로 만들어 버린 미국의 전부 아니면 전무와 북한의 단계적 접근의 상반된 입장을 조율해야 한다고 미 전문가들은 강조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과 독보적인 친분관계를 과시하며 볼턴까지 경질해 이른바 빅딜이란 이름으로 전부 아니면 전무를 고집하지는 않을 가능성이 있다. 단지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체제, 관계 정상화라는 3대 최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빅딜이란 용어와 로드맵에 합의할 수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최종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여러 중간단계와 단계별로 상호 이행할 수 있는 조치들을 합의한 뒤 하나하나씩 실행해 나가는 방식을 취해야 할 것으로 스콧 스나이더, 마크 피츠패트릭 등 미전문가들은 제시하고 있다. 북한은 단계별 접근을 통해 비핵화 조치들은 하지 않거나 최대한 늦추면서 그 이전에 대북 제재를 대폭 완화 또는 해제받고 체제안전을 보장받기를 원하고 있음을 숨기지 않고 있다. 그러나 제재 완화폭이 거의 전면 해제를 요구한 반면 제시한 비핵화 조치들은 미국의 예상에 너무 못 미쳤기 때문에 하노이에서 빈손 정상회담이 됐던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번 실무협상에서 단계별로 어떤 비핵화조치 들을 내놓고 얼마만큼의 제재완화나 체제안전 보장 조치들을 제시해 합의점을 도출할 수 있을지가 관건으로 보인다.

◆미국이 촉구하는 '창의적 아이디어' = 북한이 새로운 계산법을 요구하고 있는데 맞서 미국은 지금껏 한 번도 이야기 하지 않았던 '창의적 아이디어'를 갖고 협상테이블에 나와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미국이 원하는 북한의 창의적 아이디어는 비핵화의 진정한 의지와 지금까지와는 다른 믿을 만한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들을 일컫고 있는 것으로 미 전문가들은 해석하고 있다.

스나이더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밝혀온 영변핵시설폐쇄는 이미 예전에 시도했던 카드이기 때문에 이번 실무협상에서는 영변를 넘어서는 비핵화 조치를 갖고 나와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스나이더 연구원은 "비건 특별대표는 최근 영변은 북한 핵프로그램에서 더 이상 핵심이 아니라고 지적했다"면서 "영변 핵시설 폐쇄는 물론 다른 핵심 핵물질 생산시설의 폐쇄 또는 적어도 동결을 제시해야 하며 미국도 그에 상응하는 조치들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크 피츠패트릭 전 국무부 부차관보는 미국이 얼마나 제재를 완화할지는 북한이 어떤 비핵화 조치들을 제시 하느냐에 따라 비례적으로 제안하면 될 것으로 밝혔다. 만약 북한이 핵시설들의 해체대신 동결을 제안 하면 미국은 인도적 지원과 남북협력 사업 허용과 같은 제한적인 제재완화 부터 상응조치로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내다봤다. 핵시설들을 실제로 해체하기 시작하면 제재조치들도 추가로 완화해주면 될 것으로 피츠패트릭 전 부차관보는 말했다.

스나이더 선임연구원은 북한은 막연하게 체제안전보장을 요구해 미국이 여러 가지들을 제시하면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방안들을 최대한 취하려 하지 말고 보다 구체적으로 요구하고 미국은 상응조치들의 하나로 합의를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면택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