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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

[피의사실 공표, 질의-응답]

미국, 여론재판 폐해에 단호 … 영국, 법정모욕죄로 처벌

검찰과거사위 "폐해 심각, 엄격 처벌해야"

법은 명확한 금지, 훈령 개정시점 오해 소지

등록 : 2019-09-17 11:57:37

조국 법무부장관 취임후 법무부가 검찰의 피의사실공표를 엄격히 규제하는 훈령개정을 추진해 논란이 일고 있다. 검찰개혁을 위해 조치라는 견해와 조 장관 관련 수사를 위축시키려는 의도라는 반론이 동시에 나오고 있다. 형법 제126조 수사기관의 피의사실 공표죄에 대한 논란을 질의-응답으로 짚어봤다.

박상기 전 법무부장관은 지난 9일 퇴임사에서 "수사과정에서 피의사실 공표, 포토라인 설정, 심야조사 등의 문제점은 인권의 관점에서 하루 속히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천=연합뉴스 임화영 기자


: 피의사실 공표죄가 무엇인가.

: 형법 제126조는 '검찰, 경찰 기타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 또는 이를 감독하거나 보조하는 자가 그 직무를 행하며 알게 된 피의사실을 공판청구 전에 공표한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핵심은 두가지다. 검찰 경찰 등 수사기관이 대상이고, 기소전 공표는 안된다는 것이다. 기소후에는 상관없다.

: 피의사실 공표죄가 형법에 들어간 이유는 무엇인가.

: 1953년 형법 제정당시부터 있던 조항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 검찰을 그대로 이어받아 검찰에 수사권을 독점시키면서, 그 남용을 막기 위한 장치로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혐의내용을 흘리면 여론재판을 통해 누구든지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 나중에 혐의가 무죄로 드러나도 이미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게 된다. 이게 검찰의 숨겨진 힘이다.

: 피의사실 공표죄가 사실상 사문화 됐다는 지적이 많다.

: 피의사실 공표가 없는 게 아니라, 검찰이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어 기소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0년 검찰연감에 따르면 1999년부터 2010년까지 피의사실 공표사건이 238건 접수됐으나 모두 불기소 처분이 내려졌다. 공수처를 만들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 대표적 피의사실 공표 사례는

: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지낸 서아람 판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 논두렁시계 사건을 비롯해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2009년, 2010년) △공업용 쇠기름 라면 사건(1989년) △포르말린 통조림 사건(1998년) △연예인 주병진 사건(2000년) △불량만두소 사건, 인천시장 굴비상자 사건(2004년) △일심회 사건(2006년) △변양균, 신정아 편지사건(2007년) △PD수첩사건(2009년) 등을 꼽았다. 모두 검찰, 경찰 등 수사기관이 피의사실을 언론에 흘려 여론재판을 했던 사건이다. 그러나 혐의는 대부분 무죄로 드러났다.

: 검찰과거사위원회도 이 문제를 다루지 않았나.

: 지난 5월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는 '형법은 수사기관이 기소 전 피의사실 공표를 예외없이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음에도, 현실에서 법무부훈령인 수사공보준칙을 근거로 공식적인 수사공보 방식의 피의사실공표 행위가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며 개선을 촉구했다.

: 왜 이 시점에서 피의사실 공표를 금지하는 훈령을 개정하려는가.

: 당시 박상기 법무부장관이 훈령 개정안을 만들었으나 검찰의 반발로 시행을 보류했다.

조국 장관이 들어서 이를 다시 추진하려는 것인데, 가족이 수사를 받는 상황이어서 오해를 사고 있다. 검찰개혁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이지만 시점이 공교롭다. 조 장관이 자신의 가족 수사 관련해서는 기존 훈령을 따르겠다는 것을 선언하면 오해를 피할 수 있지 않을까.

: 법무부가 개정하려는 훈령은 어떤 내용인가.

: 기존 훈령과 가장 달라진 점은 공개 여부와 범위를 결정할 '형사사건공개심의위원회'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11명 이상 30명 이하의 위원중 민간위원이 과반수를 차지하도록 했다. 위원회 구성과 운영은 대검찰청 예규로 정하도록 했다.

또 예외적 공개범위의 축소, 초상권 보호 강화 등을 담았다.

: 피의사실 공표를 금지하면 국민의 알권리가 제한되나.

피의사실 공표는 국민의 알권리 뿐 아니라, 당사자의 인격권, 무죄추정의 원칙, 공정한 재판받을 권리 등이 관련된 문제다.

무죄추정의 원칙만을 적용하면 기소 후에도 피의사실 공표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국민의 알권리와 조화를 위해 기소전 피의사실 공표만을 금지한 것이다.

: 선진국은 피의사실 공표에 대해 어떤 입장인가.

: 우리나라와 같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검찰이 독점한 선진국은 없는 점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 그렇다하더라도 영국은 공정한 재판의 이익이 언론자유의 이익보다 명백히 더 우월한 것으로 다뤄진다. 1981년 제정된 '법정모욕법'은 피의자의 체포와 공소제기 이전에 피의사실을 보도하는 일체 행위를 법정모욕죄로 처벌하고, 모든 소송절차가 끝날 때까지 법정에서 나오는 정보 이외에 조금이라도 영향력을 행사할 우려가 있는 사항의 공표행위까지 처벌대상이다.

미국은 연방검사업무지침에서 공판 전 피의사실 공표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연방대법원 판례도 여론재판의 폐해에 대해 단호한 입장이다.

법원은 편견적인 언론보도에 의해 공정한 재판이 박탈될 피고인의 유죄판결을 취소할 것을 누차 강조했고, 실제 그런 사례도 있다.

독일은 형법에 '공소장을 공판에서 낭독하기 전에 문안대로 공개한 자를 1년 이하 징역 또는 벌금형에 처한다'고 규정했다.

: 왜 우리나라에서만 피의사실 공표가 문제인가.

: 과거 권위주의 시절, 검찰은 정권의 하수인으로 공안사건수사를 하며 이를 언론에 흘려 이른바 공안정국을 조성했다. 피의사실 공표를 야당과 민주화운동에 대한 탄압수단으로 악용했다. 민주화 이후에는 검찰이 스스로 권력기관으로 등장해 피의사실 공표로 권한을 강화해오고 있다. '피의사실 공표 금지'가 검찰개혁의 핵심 사안인 이유다.

장병호 기자 bh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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