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은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

해외 리빙랩((Living Lab) 탐방차원에서 필자는 최근 네덜란드를 다녀왔다. 그간 네덜란드는 노·사·정 간의 대화와 타협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한 국가로 널리 알려져 왔다. 하지만 지금은 한 발짝 더 나아가 민·산·학·연·관의 협력을 강조하는 리빙랩의 나라가 되어 있었다.

네덜란드는 그동안 기후변화, 고령화 등 사회적 도전과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에너지·주거·교통·식품 등 다양한 영역에서 지속가능한 시스템으로의 전환 실험을 해 왔다. 이를 위해 생활공간인 도시·지역·마을에서 살아있는 실험실인 리빙랩을 시민들과 전문가, 공무원들이 함께 운영하고 있다.

이용자 참여와 협력으로 돌봄 완성

문제가 있는 현장에서 관련 주체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리빙랩은 새로운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미리 살펴볼 수 있는 실험 공간이었다.

이번 출장에서 눈여겨 본 부분은 지속가능한 케어시스템이었다. 기존 케어시스템에서 제기되는 고비용과 수요자 불만족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살던 집과 지역에서 안심하고 살기 위한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를 표방하며 관련 정책 간의 통합적 노력과 함께 다각도의 전환 실험이 이뤄지고 있었다.

가장 큰 변화 흐름은 정부주도에서 민간주도로,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요양원 등 기관 돌봄에서 지역돌봄 중심으로의 전환이었다. 이를 위해 환자 처방·정보를 공유하는 등 분절된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엮어 나가고 의료·돌봄·간호 전문팀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서로 협력하도록 지역커뮤니티를 활성화함으로써 돌보기와 돌봄 받기가 동시에 이뤄지고 있었다.

지금은 1500개에 달한다는 케어팜도 지속가능한 케어시스템으로의 전환에 중요한 축이다. 이번에 방문한 중증치매환자를 위한 거주형 케어팜의 경우 중증치매노인이 복지시설에 갇혀 여생을 보내는 것이 아닌 자기 집에 머무는 것처럼 농사도 짓고 요리도 하고 취미생활 등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다양한 동·식물을 접하고 키움으로써 정신적인 안정감과 함께 일하는 보람을 동시에 느낄 수 있도록 되어 있었으며, 이 과정에서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

폰티스대학이 리빙랩을 운영하는 치매돌봄센터의 경우 모든 시설과 서비스가 최종 수요 주체인 환자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었다. 자기 집처럼 느낄 수 있도록 좋아하는 사진과 가구 배치가 되어 있었고, 각각의 방문 그림도 달랐다. 그 분들이 힐링하고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친숙한 그림·음악과 함께 냄새·촉감까지 고려하여 거실, 침대, 주방, 작업장, 발코니, 마사지숍 등이 꾸려져 있었다. 창문의 그림도 한창 아이가 뛰어노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어떤 의자는 기차를 타고 여행을 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돌봄의 받는 치매환자와 돌봄을 담당하는 직원들 모두 너무나도 밝은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이 과정에서 기술을 케어 전반에 통합시켜 나가는 이헬스(eHealth)를 강화함으로써 돌봄 비용도 줄이면서 그 품질도 높여 나가려는 시도가 함께 이뤄지고 있었다. 반려로봇, 매직테이블 등 케어에 활용되는 기술 또한 그것의 첨단성을 강조하면서 일방적으로 밀어내기보다 최종 수요 주체들과의 긴밀한 협업을 통해 기술의 친숙성과 수용성을 향상시키고자 했다.

한국에서도 커뮤니티 케어나 치매국가책임제를 통해 케어 시스템 전반을 혁신하려는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기존 방식과 같이 공급자 중심의 단기적이고 대증적인 처방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환자,가족, 돌봄노동자 눈으로 혁신

네덜란드에서 확인한 것은 최종 이용 주체인 환자, 가족, 사회복지사가 중심이 되는 케어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돌봄 활동에 참여하는 주체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의를 통해 만들어 질 수 있다. 이런 바탕 위에 다양한 기술·서비스도 제 기능을 다 할 수 있다. 이제 환자, 가족, 돌봄 노동자의 눈으로 케어시스템을 전환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