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부적법한 해제, 기대이익 20% 배상해야"

주택재건축조합이 시공사와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했다면, 시공사들에게 기대이익을 배상해줘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시공사로서는 직접 공사를 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이익의 상당액을 손해배상 받을 수 있고 조합은 사업비 증가라는 부담을 짊어지게 됐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33부(김선희 부장판사)는 지난달 말 GS건설 등 3개 대형건설사가 서울 서초구 A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고는 원고들에게 410억원을 지급하라"는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했다.

A조합은 아파트를 짓기 위해 GS건설 롯데건설 포스코건설 등에게 공사를 맡겼지만 A조합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하면서 법정공방을 벌여왔다.

2012년 서초구청으로부터 조합설립인가를 받은 A조합은 2014년 GS건설 컨소시엄을 시공사로 선정했다. 조합과 시공사들은 일반분양 물량 중 3.3㎡당 3100만원을 초과해 발생하는 이익을 나눠 갖는 지분제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키로 했다. 하지만 양측은 사업자금 조달 방식에서 이견을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2017년 3월 A조합은 총회를 열고 3개 시공사와 공사계약을 해제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이후 A조합은 현대건설을 새로운 시공사로 선정했다.

계약해지를 당한 GS건설 등 시공사는 "A조합이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 과다한 자금 대여를 요청하고, 일방적으로 정한 대출방식을 제안했다"며 "공사계약을 해제했으므로 이행이익 상당의 손해 및 지연손해금 2070억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A조합은 "입찰제안서에 허위사실을 기재하고 구비서류를 누락했다"며 "이에 따라 공사계약도 무효"라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공사계약이 무효"라는 A조합 측 주장을 따졌다. 시공사들은 순공사비 외에 소요되는 주변 학교 학습환경 보호대책, 미분양에 따른 금융비용, 민원해소 비용 등을 '제경비'로 분류해 입찰제안서를 작성했다. 제경비를 공사비에 포함할 경우 예정가격이 초과하기 때문에 입찰참여 규정을 어기게 된다. A조합은 또 시공사가 부담키로 할 비용 일부를 제경비에 포함시킨 점을 들어 허위 기재라고 따져들며 "공사 연기에 따른 30억원을 지급하라"는 맞소송(반소)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입찰제안서를 제출할 당시 관련 비용을 누가 부담할지 확정되지 않은 상태"라며 "입찰제안서 자체에 허위기재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시공사들이 대여금을 제공하지 않거나 지급보증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A조합의 주장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시공사가 지급보증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해도 조합이 요구한 금원 상당액을 대여한 점 등에 비춰 시공사들이 지급보증의무 위반이 공사계약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만큼 중대한 의무위반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고 봤다.

3개 시공사는 애초 공사 계약에 따라 얻을 수 있는 분양이익(2050억원) 등을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A조합은 실제공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돈을 지급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A조합의 공사계약 해제통보는 해제사유가 없는데도 이뤄진 부적법한 해제"라면서 "A조합은 시공사들에게 공사계약 해제에 따른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며 시공사들 손을 들어줬다. 구체적인 손해배상 범위에 대해서는 계약서와 사업조건 등을 고려해 시공3사가 얻을 수 있는 2050억원의 20%(410억원)만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시공사가 실제 공사를 수행하지 않았고, 공사과정에서 얻는 각종 사업상 위험을 피할 수 있게 된 점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시공사들이 받게 된 기대이익은 컨소시엄 지분율에 따라 GS건설 155억8000만원, 롯데건설 123억원, 포스코건설 131억2000만원 등이다.

여기에 시공사들은 A조합 운영을 위해 빌려준 돈 등 27억5400만원을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A조합이 일부 공탁을 하는 등 대여원리금 변제충당을 한 점을 고려해 손해배상할 금액은 14억7300만원으로 정했다.

이와 함께 A조합 측이 제기한 반소에 대해서는 "공사계약에서 정한 (시공사들의) 대여 의무 위반, 지급보증 의무 위반, 가압류에 의한 이행거절 등 채무불이행이 없다"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승완 기자 osw@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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