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은 지음 / 헤이북스 / 1만4800원

미투 운동이 한국사회를 한창 휩쓸고 있을 때 관련 집회를 가보면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취지의 팻말이 자주 눈에 띄었다. 남성의 집회참석은 물론, 남자기자들의 취재도 허용하지 않아 ‘성평등을 이야기하면서 왜 성차별을 하느냐’는 논란을 일으켰던 한 집회에선 참석자 모두를 자매님이라고 불렀다. 엄마 손에 이끌려 멋 모르고 따라온 꼬마소녀든,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왔던 세상이 딸 세대에도 그대로인 게 싫어서 집회에 참석한 중년 여성이든 다 자매님이었다. 보면서 생각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에게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해 줄 언니들이 필요한 게 아닐까.

한국일보 기자인 저자 김지은의 언니들 인터뷰집이 나왔다. 자신의 삶을 담담히 말하는 12명의 언니들은 여성이 약자로 취급되는 세상에 살면서 먼저 입사하고, 먼저 벽에 부딪히고, 먼저 이별을 하고, 먼저 외로워하고, 먼저 실패하고, 먼저 눈물 흘려본 사람들이다. 먼저 길을 나섰지만 여전히 싸우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가슴 한 켠이 짠하다가도, 그 길을 따라나서는 동생 입장에선 힘든 건 나만이 아니구나 싶어 마음이 든든해진다. 어릴 적 엄마에게 “왜 나는 언니가 없어? 언니 낳아줘!” 투정을 부리곤 했다는 저자가 사회에 나와 존재만으로도 든든한 세상의 많은 언니들을 만나게 되었다고 느끼는 이유도 이 때문이리라.

장애 동생의 자립을 돕고 있는 언니 장혜영은 장애인은 시설에서 사는 게 당연한 듯 여겨졌던 우리 사회에 질문을 던진다. “장애인으로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하도록 만드는 사회에 희망이 있을까요?”

남편과 이혼하고 여자와 사는 퀴어 언니 김인선은 자신과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젊은 성소수자들에게 연대의 손을 내밀고 있다. 삼성그룹 계열사 최초의 공채 출신 여성 임원이라는 기록을 갖고 있는 언니 최인아는 여자라는 이유로 낮은 호봉으로 시작한 직장생활을 떠올리며 한심해 하다가도 ‘현실을 돌파한 샘플이 되어보자’며 돌진하던 시절을 떠올린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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