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광희 한국환경산업기술원 원장

애플이 성공한 배경으로 우리는 흔히 미국 실리콘밸리의 자유로운 창업 열정과 과감한 벤처자본의 주도를 떠올린다. 그러나 영국 경제학자 마리아나 마추카토는 저서 ‘기업가적 정부’에서 이런 상식을 전면 부인한다. 그에 따르면 애플 신화의 배경에는 창업 열정이나 벤처자본보다 기반기술에 대한 미국 정부의 투자가 있었다. 아이폰의 주요 기능인 GPS 음성인식 터치스크린 등이 모두 정부 지원으로 개발된 기술이었다. 당시 이 기술들은 불확실하고 리스크 높은 과제들이었지만, 기업가적 정부가 위험을 감수하고 투자하여 혁신을 이끌어 낸 것이다. 저자는 창업에 뛰어든 신생기업의 혁신 기술 개발을 돕기 위해, 장기 투자를 견딜 수 있는 정부의 인내자본(Patient Capital) 역할을 강조한다.

기업가적 정부 역할 중요해져

우리 정부 역시 창업생태계를 조성해 혁신성장을 이룬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올해 역대 최대 규모인 1조1180억원의 창업지원 정책을 시행한다고도 밝혔다. 실제로 국내 창업 시장은 양적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창업기업동향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창업한 기업은 134만4366개로 2년 연속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창업지원정책의 주요 대상인 30대 이하 청년 창업기업은 44만2604개로 전체의 33%를 차지한다. 그러나 아쉬운 점들도 보인다. 창업기업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업력 1년 차 청년창업가는 시장의 19.8%를 차지하지만 7년 차는 9.2%로 뚝 떨어진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전 세계 346개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인 비상장 스타트업) 가운데 국내 기업은 8개에 불과하다. 이마저 전자상거래, 인터넷 소프트웨어 등 분야에 한정되어 있다. 보다 다양한 분야에서 경쟁력 있는 창업기업을 육성하는 기업가적 정부의 역할이 강조되는 이유다.

특히 환경 시장은 창업가들이 주목해야 할 분야다. 미세먼지, 폐기물재활용 등 일상과 밀접한 환경문제가 증가하면서 국민들의 환경 인식도 높아지고, 환경문제 해결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미세먼지 대응 정책이 관련 시장을 만들고, 친환경자동차가 자동차 산업의 새로운 주력으로 성장하듯이 오늘날 필(必)환경 시대에서 환경정책은 단순 규제를 넘어 미래 신성장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환경규제 강화 추세에 따라 글로벌 환경시장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해외시장을 노리는 우리나라 창업기업에게 블루오션이 될 수 있다.

환경부와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은 환경산업연구단지를 중심으로 창업 지원에 힘쓰고 있다. 우수한 벤처기업들을 입주시켜 다각적 지원을 하며 초기창업 패키지, 환경기술ICT공모전, 환경창업대전 등 청년창업가를 육성한다. ‘이퀄스’는 이러한 지원을 통해 차근차근 성장해 온 기업이다. 1986년생 사장 본인이 평소 좋아하는 커피와 맥주를 간편하게 즐기기 위해 맞춤형 캔 포장을 만드는 아이디어로 2017년 창업에 뛰어들었다. 2018년 초기창업 패키지 지원 기업으로 선정되고, 환경창업랩을 거쳐 최근 일반기업으로 연구단지에 입주할 만큼 성장했다. 지난해 홍콩에서 열린 아시아 스타트업 컨퍼런스, 올해 미국에서 열린 알파랩 기어 하드웨어컵에서 수상의 영예도 얻었다.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5배가 뛰었고, 첫 수출 성과도 거두었다. 이퀄스는 앞으로 플라스틱을 대체할 소규모 맞춤형 알루미늄 캔 패키징의 선두기업이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86년생 사장의 꿈이 현실이 되다

이처럼 우수 벤처기업을 지원해 스타 창업기업으로 양성하기 위해 보다 장기적이고 핵심역량 중심의 인내자본이 필요하다. 정부 지원이 초기 창업단계에 국한되지 말고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특히 앞으로 창업시장의 주인공이 될 ‘90년대생’들은 SNS를 사용한 영업, 1인 마켓 솔루션 등에 익숙한 만큼, 이러한 세대 특징을 강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정책도 진화해야 할 것이다.

마리아나 마추카토는 “기업 혁신을 일으키는 것은 정부의 보이는 손”이라고 말한다. 특히 창업 생태계 지원은 꾸준한 시간과 공이 필요하다. 환경 창업의 씨를 뿌리는 기업가적 정부의 인내자본을 토양 삼아, 환경 분야에서도 세계적 스타 창업기업이 등장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