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지은 법률사무소 중현 변호사

최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됐다. 그러나 실제로 괴롭힘에 해당하는지 모호한 경우가 많다.

몇 개의 사례를 들어보자. 상급자가 부하직원에게 업무지시를 할 때마다 “나, 이거 괴롭히는 거 아니다. 강요하는 거 아니야”라고 말한다. 업무만이 아니다. 퇴근 후 회식을 할 때도 꼭 괴롭히지 않는다는 확답을 받는다. 반대 경우도 있다. 상급자와 여러 번 다툰 부하직원이 자신과 친분 있는 직원들에게 상급자를 따돌릴 것을 부탁했고, 상급자는 이를 버티지 못해 직장을 떠나버렸다.

부하직원이 동의해도 괴롭힘 가능

‘괴롭힘 금지법’이라 불리는 근로기준법 제76조의 2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이 되기 위해서는 △직장에서의 지위 등의 우위를 이용하였을 것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은 행위일 것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일 것 등의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 사례의 경우, 부하직원이 상급자의 행위로 인해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받았음을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으면 동의를 받았다 하더라도 괴롭힘으로 인정될 수 있다.

두 번째 사례의 경우, 부하 직원이 직장 내 관계에 있어 상급자보다 ‘관계적으로 우위’가 있어야 괴롭힘으로 인정될 수 있다. 이때는 당사자 간의 관계, 행위·장소·상황, 행위에 대한 피해자의 반응, 행위의 내용·정도, 일회성·계속성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볼 때 일반인 기준에서 괴롭힘이라고 판단돼야 한다.

그렇다면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조치는 무엇일까. 피해자가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하면, 회사는 즉시 사실 확인 조사를 해야 한다. 조사기간 동안 피해자 보호 조치를 취해야 하며, 조사결과가 나오면 가해자에게 징계·근무장소 변경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런데 가해자에 대해 어떠한 조치를 취할지에 대한 가이드라인도 없지만, 조치 자체도 피해자와 가해자를 완전히 분리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안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정직이나 감봉 정도에 그칠 것이다.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아도 처벌규정이 없다. 이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아킬레스로 지적되는 부분이다. 회사 내부조사의 공정성에 대한 우려도 있다. 이런 이유가 근로자의 신고를 어렵게 만든다. 법규의 시행 자체가 회사에 경종을 울리긴 하지만 실효성 면에서 의문이 남는 이유다.

고용노동부는 본 제도가 처벌보다는 회사가 자율적으로 예방,조치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고 설명하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괴롭힘 방지법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자율적인 예방,조치 시스템을 통한 자정이 바람직하지만, 이를 위해 단기적으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그것이 미비될 경우 강제적 처벌이 반드시 따라야 한다. 그런데 본 제도는 장기적 목표만 제시하고 이에 도달하기 단기적 과정이 부족하다.

장기적으로 제도의 광범위 홍보 및 익명제보시스템 확보 필요

그렇다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직장 내 수평적인 상호 존중 문화가 확립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호주의 경우 팀 회의나 뉴스레터, 팸플릿, 급여명세서, 이메일이나 인트라넷 등의 고지를 통해 제도를 광범위하게 홍보하고 있다. 미국의 평균고용추진위원회에서는 문제가 피해자와 가해자만의 것이 아니라 모두가 문제해결에 동참해야 함을 강조하며, 아울러 피해자를 지지하는 문화 조성 캠페인도 동시에 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사내 사이트의 익명게시판을 통해 상급자의 부당한 행위를 제보하게 하고, 이를 확인,조사하여 인사 조치를 하는 모범사례가 있다.

괴롭힘 방지법은 바람직한 직장문화를 위한 첫 발자국을 디뎠다는 점에서 분명 의미가 있다. 그러나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해도 이에 어떠한 조치를 취할지에 대한 제시가 없으며, 회사가 조치를 취하지 않는 데 대한 처벌규정이 없다는 문제가 남아 있다. 먼저 처벌규정을 통해 회사에 가해자에게 필요한 조치를 취할 강제성을 부여해야 회사 내부의 예방 시스템을 구축할 유인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