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호 지음 / 소명출판 / 2만2000원

어떤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느냐에 따라 세상은 달리 보인다. 사물은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그 형상이나 의미가 다를 수 있다. 한국에서 루쉰은 식민과 냉전이라는 안경을 통해 해석돼 왔다.

마오쩌둥이 루쉰을 '중국 혁명'의 상징으로 호명한 순간 한국에서 상상할 수 있는 루쉰이란 고작 '계몽주의자'로서의 면모였을 뿐이다. 이 책의 제목 '상상된 루쉰'이란 이러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한국의 루쉰상이 중국에서만큼 대중적이거나 전면적인 관심을 갖지 못했음에도 루쉰은 1920년대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번역된 유일한 중국문학가이자 사상가이다.

이 때문에 한국이 상상하고 있는 루쉰은 지금의 중국을 낳은, 또는 중국을 이해하는 통로로서의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 한국의 지식인들은 루쉰을 통해 중국의 현대성을 가늠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사실은 번역이 단순히 언어에서 언어로 옮겨가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호명되는 가치들을 재발견하고 배치하는 것임을 말해준다. 이 책이 '아Q정전', '광인일기', '고향'의 작가 루쉰이나 루쉰 문학의 한국 번역사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도 이 같은 까닭 때문이다.

혹자는 루쉰의 번역을 '지도 찾기'라고 말했다. 루쉰 스스로가 해온 번역을 축자적이고 딱딱한 번역, 즉 경역(硬譯)이라며 조롱하는 투다. 루쉰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번역을 '지도 찾기'라고 한 것은 원문에 대응하는 사상이 중국에 부재하는 현실을 가리키기 위해서였다. 매끄러운 번역은 중국이 직면해야 하는 경계를 가릴 뿐이므로 생각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낯설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책 역시 루쉰의 번역에 대한 사고를 토대로 삼고 있다. 번역을 통해 낯선 것을 낯설게 받아들일 때 본래 의미에 부가되는 새로운 의미들이 꽃핀다. 이 책은 중국의 문학가와 사상가로서 작품들, 그가 번역한 글을 한국어로 중역하면서 만개한 현대중국을 상상하게끔 하는 루쉰이라는 존재를 되살리고자 한다.

중국에서는 지성인으로 추앙받는 루쉰이지만 타이완에서 루쉰은 억압의 상징일 뿐이었다. 중국을 참조항으로 할 때 루쉰 수용 역시 재맥락화를 거칠 수밖에 없다. 식민지와 냉전을 거치며 각국의 이해관계만큼이나 동아시아 각국이 바라보는 루쉰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시대가 요구하는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루쉰의 문학과 사상이 수용되었던 맥락을 탐구한다.

김기수 기자 k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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