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법, 자치발전 임계점

"서울시의회가 잘되는 이유는 법을 자주 어기기 때문입니다."

열악한 지방의회 현실에서도 다양한 혁신 사례를 만들고 있는 서울시의회 성공 비결을 묻자 서윤기(사진) 운영위원장에게 돌아온 답변이다. 법 준수에 앞장서야할 의회, 그 의회의 운영을 총괄하는 사람이 이같은 대답을 한 이유는 뭘까.

서울시의회는 의회 차원의 정책위원회를 운영하고 정책 수립을 위한 연구용역과 여론조사를 실시한다. 교섭단체 운영비도 지급한다. 하지만 이는 현행 지방자치법에 위배되는 것은 물론 행정안전부의 지방의회 예산편성운영지침에도 어긋난다.상위법 위반에도 불구하고 서울시의회가 이같은 일들을 할 수 있던 건 '조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서 위원장은 "시민들은 2019년을 살고 있는데 그들의 삶을 대변하고 제도를 만드는 일은 30년 전 기준을 따라야 하는 상황"이라며 "적극적 지방자치를 실현하려면 현행법과 충돌이 불가피하고 서울시의회는 조례를 만들어 돌파해온 것"이라고 말했다.

행안부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단속·감독 책임을 맡은 상위기관이 모른척 하는 것은 현재 기준이 지나치게 현실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서 위원장은 "자치와 분권은 침체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강력한 성장동력이지만 현 제도로는 한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며 "국회에 발의된 지방자치 관련 법안들이 신속히 통과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 위원장이 법 개정과 함께 강조하는 자치 발전 과제는 지방의원 역량 강화다. 그는 "지방의원이 유능해야 시민이 행복해진다"고 말했다. 공무원과 행정관료에게 정책적 상상력이나 창의적 행정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정해진 법·제도·규정에 따라 움직이는 철로 위의 기차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시의원들은 시민들이 안고 있는 고민과 요구를 해결하기 위해 '제도'를 만드는 일을 해야 한다. 꽉 짜여진 틀 안에서 움직이려는 공무원과 행정 관료를 설득하려면 이를 실현할 능력을 갖춰야 한다.

문제는 어디에도 국회의원이나 지방의원 역량 강화를 도울 제대로 된 교육 프로그램이 없다는 것이다. 정책의 빈틈을 날카롭게 찾아내거나 공무원을 휘어잡을 능력을 갖춘 의원들이 있지만 이를 개인기에 맡겨놓는 것은 지방자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서 위원장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지방의원 역량강화 프로그램 개발에 나섰다. 서 위원장은 "일반적으로 '의원'하면 떠오르는 것은 선거 능력이지만 실제 더 필요한 것은 당선된 후의 직무 수행능력"이라며 "정책 개발·질의·이해 조정·조례 재개정 등 의원들이 필요로 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원하는 모든 지방의회에 무료로 제공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서 위원장은 지방의회에 대한 접근법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서 위원장에 따르면 의회에 대한 평가 중 가장 잘못된 것은 학력과 간판 위주로 지방의원을 뽑고 평가하는 것이다. 그는 "의회의 본질은 민의를 대변하는 것이다. 얼마나 다양한 세대·계층·직업을 대변하는 이들이 진출해 있느냐가 의회의 진짜 수준을 규정한다"면서 "다양성이야말로 의회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 결정하는 요소"라고 말했다.

서 위원장은 혼자사는 청년과 소외계층을 위한 1인가구 조례를 만든 장본인이다. 1인가구 조례는 조례는 서울시를 넘어 정부정책에 반영됐으며 이후 급증하는 1인가구 실태가 다양한 정책 수립에 주요 고려사항이 되는 길을 닦았다. 서 위원장은 "지방의회에서 만든 조례가 중앙정부 정책까지 바꿔놓은 사례"라며 "자치분권 강화로 지방의회가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앞장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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