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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

[기고]

개도국지위 논쟁, 진짜 문제는 상호 불신

등록 : 2019-11-08 10:00:00

이준원 전 농림축산식품부 차관

10월 25일 정부는 향후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에서 개발도상국 특혜를 더 이상 주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에 대해 농민단체는 개도국지위 포기는 농사를 그만두라는 것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국회 농해수위는 ‘WTO 개발도상국 지위유지 및 대책 마련 촉구결의안’을 채택하기도 했다. 이번 개도국지위 논쟁이 과거 농산물개방 협상 때처럼 정책결정 참여자간 상호 불신으로 인한 진영간 대결로 변질되어 소탐대실의 결과를 초래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정확한 진단과 소통 통해 농민들과 상호이해 및 상호신뢰하는 것이 중요

대표적인 사례로 쌀 관세화협상 때 ‘관세화는 전면개방’이라는 개방반대 진영의 주장에 휘둘려 쌀 관세화가 20년간 지연돼 쌀 의무수입량이 매년 20만톤에서 40만톤 수준으로 2배 확대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이런 사태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가장 중요한 과제는 정확한 진단과 소통을 통해 농민들과의 상호이해 및 상호신뢰가 관건이다.

먼저 한국의 개도국특혜 중단으로 도하아젠다(DDA)협상이나 미래 WTO협상에서 실제 피해가 있는지에 대한 상호이해가 필요하다. 2001년 출범한 DDA 의장텍스트에는 과거 우루과이라운드협상보다 개도국에게 유리한 내용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어 관세감축에서 선진국은 평균 54% 이상 감축해야 하지만 개도국은 평균 36% 이하로 감축 가능하다. 특히 개도국은 선진국에 없는 특별품목을 전체의 12%까지 지정할 수 있고, 그중 5%는 아예 관세감축이 면제된다.

한국 농산물의 전체 세번(tariff lines)은 1600여개로 그중 5%는 80여개 세번에 해당되는 데 쌀 관련 세번이 16개이므로 쌀을 포함한 핵심품목을 관세감축에서 제외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DDA협상이 타결되어도 한국이 개도국지위를 유지한다면 쌀 등 핵심품목의 관세감축을 면할 수 있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정부는 현재 진행중인 DDA협상까지는 개도국지위를 유지하고, 새로운 라운드 출범 때부터 개도국특혜 주장을 포기한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향후 WTO협상부터 농업피해를 우려하는 농민들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향후 협상은 현재와 같은 선진국과 개도국의 이분법이 아닌 무역비중 등 새로운 형태의 논의구조가 예상되기 때문에 개도국 여부가 농업피해의 절대적 기준이 되지 않을 전망이다.

또한 한국의 개도국지위가 164개 WTO 회원국들로부터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상호이해도 중요하다. 국내정치가 보수와 진보 진영간 대결이라면 WTO협상은 선진국과 개도국 진영간 대결이다. WTO협상에서 미국 EU 일본 등 선진국은 개별적으로 활동하지만 개도국들은 협상력 강화를 위해 협상그룹을 결성해 대응한다.

한국은 2001년부터 시작된 DDA협상에서 개도국우대를 주장하는 G-33그룹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국은 한국을 비롯하여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필리핀 터키 등 40여국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의 1인당 국민소득(GNI)은 2018년 5300달러에 불과한 데 한국은 6배 수준 많은 3만600달러에 달한다. 2008년 DDA 협상이 한창일 때 EU 대표가 EU 회원국들보다 훨씬 부자인 국가가 개도국 특혜만 누리려 한다고 불만을 제기한 적이 있다. EU 28개 회원국 중 루마니아의 국민소득은 1만1290달러, 불가리아는 8860달러 등 한국의 국민소득에 비해 1/3에 불과하지만 모두 선진국으로 분류된다. 1995년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 때 선진국으로 분류된 일본 국민소득도 4만1340달러로 한국과 차가 점점 축소되고 있다. 우리는 전체 국민소득은 높으나 농민소득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농업만은 개도국이라는 논리를 전개하나 회원국들의 공감을 얻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쌀 등 품목에 대해서는 관세 등에서 예외 관철한다는 의지 갖고 협상에 임해야

그러나 과거의 모든 다자 및 양자 협상사례를 보면 국가적으로 중요한 핵심품목에 대해서는 항상 예외가 존재했다. 따라서 정부는 향후 WTO협상에서 개도국지위를 주장하지 못하더라도 국민의 생존권이 걸린 쌀 등 품목에 대해서는 관세나 보조금 협상에서 예외를 관철한다는 의지를 갖고 협상에 임해야 한다. 또한 당장의 농민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실익도 없는 대책을 남발할 것이 아니라 직불금 대폭 확대 등 실질적인 대책을 하나라도 제대로 추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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