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기소결정해도 검사 공소유지로 무력화

"공소유지변호사 부활하고 보완수사권 줘야"

기소권을 독점한 검찰이 불기소처분을 해도, 법원에 직접 기소를 신청할 수 있다.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시 도입한 재정신청제도 때문이다. 이승만대통령의 거부권행사에도 불구하고 당시 입법자들은 검찰의 기소독점과 기소편의주의 견제장치로 이를 도입했다. 법원이 직접 기소를 결정하면 공소유지변호사를 지정하도록 했다.

하지만 재정신청제도는 2007년 형사소송법 개정과정에서 공소유지변호사를 폐지하고, 검사가 공소유지를 하도록 함으로써 사실상 무력화됐다. 법원이 기소결정을 해도 검사가 공소유지를 제대로 하지 않아 실효성이 크게 약화된 것이다.
부천서 문귀동 경장의 성고문 사실이 알려진 이후에도 검찰은 불기소처분했다. 피해자와 변호사들이 재정신청을 했지만 서울고등법원은 기각했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대법원은 재정신청을 받아들였다. 사진은 재정신청을 인용한 대법원 판결을 보도한 당시 신문 1면.


◆형소법 제정시 도입된 재정신청 = "똑같은 선거사범이 있는데 한쪽은 검거하고 한쪽은 내버려 둔다면, 이것은 공평성 원칙에 위반되고 정치적으로 형사소송법이 이용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만일 (검찰이) 불기소처분을 할 적에는 이 항고를 다시 종래와 같이 검찰기관 고위층에다가 해보았자 검사동일체 원칙에 의해서 불기소처분을 받기가 쉽다. 이런 폐단을 막기 위해 그런 때에는 고등법원에다가 항소를 하게 했다."

형사정책연구원이 펴낸 '형사소송법 제정자료집' 중, 1954년 2월 16일 제2대국회 본회의에서 염상섭 의원이 한 말이다. 이승만정부가 발의한 형사소송법 초안에는 재정신청제도가 없었다. 국회가 이를 수정해 검찰의 기소독점에 대한 견제장치를 도입한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국회를 통과한 형사소송법 제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했다. '국가기관인 검사에게 형사소추권이 전속돼 있는 우리나라 형사소송제도의 원칙에 위반된다'는 게 이유다.

같은해 3월 19일 국회본회의에서 김정실 법제사법위원장은 이승만의 거부권 행사를 강하게 비판했다. 김 의원은 "기소를 당연히 해야 될 것인데도 기소를 안하는 데에는 어떻게 취급하느냐 해서, 이번 형사소송법은 획기적인 규정을 한 것이다. 이 규정을 두어서는 안된다고 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라고 말했다. 국회는 149명 투표에 120명의 압도적 찬성으로 재정신청제도를 포함한 형사소송법 제정안을 확정했다. 이로써 재정신청제도는 모든 고소·고발사건을 대상으로 검사의 불기소처분에 대한 사법적 통제장치가 됐다.

◆박정희정권, 재정신청 대상범죄 축소 = 하지만 박정희대통령은 반민주적인 유신헌법 제정후 재정신청제도를 크게 위축시켰다. 유신헌법으로 국회를 해산하고 입법부를 대신한 비상국무회의는 1973년 형사소송법을 개정했다. 재정신청 대상범죄를 모든 범죄사건에서 직권남용 등 3개의 범죄로 대폭 축소했다.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한영수 교수는 2016년 '재정신청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에서 "이 개정의 핵심내용은 검사의 불기소처분에 대한 법원의 통제권을 배제하고 검찰권을 강화하는데 있었다"고 지적했다.

대구대 박기석 교수는 "검사의 권력행사를 아성으로 만들어 견제없는 권력으로 만들겠다는 독재정권의 발상이었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대상범죄가 크게 축소되자, 1974년부터 1987년까지 재정신청이 받아들여진 사례가 하나도 없을 만큼 재정신청제도는 무력화됐다.

◆6월항쟁으로 되살아난 재정신청 = 재정신청제도를 되살린 것은 6월항쟁이었다. 1986년 부천서 성고문사건이 알려져 국민적 공분이 터져나왔다. 피해자가 고소하고 변호사 9명이 고발했지만 검찰은 고문경관 문귀동을 불기소처분했다. 대한변호사협회 소속 변호사 166명이 재정신청을 했지만 서울고등법원은 기각했다. 1986년 11월 대법원에 즉시항고를 했다. 대법원은 시간만 끌 뿐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1987년 6월항쟁이 터졌다. 독재정권을 연장하려던 전두환정권이 시민저항에 굴복해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했다. 대법원은 그 후에 움직였다. 1988년 2월 비로소 대법원은 재정신청을 받아들여 고문경관 기소를 결정했다. 조영황 변호사가 최초의 특별검사격인 '공소유지담당 변호사'로 임명됐다. 결국 문귀동은 유죄가 인정돼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재정신청제도에 대한 재조명이 되며 대상범죄를 확대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노무현정부 시절인 2004년 사법개혁위원회는 재정신청 대상범죄의 전면 확대를 포함한 개선방향을 제시했다. 2005년 정부는 모든 범죄에 대해 고소인과 고발인에게 재정신청을 허용하는 전면 확대방안을 담은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검사출신 의원이 제도 왜곡 주도 = 그러나 국회 법안심의과정에서 원안이 크게 왜곡돼 통과됐다. 재정신청 대상범죄를 고발사건을 제외하고 고소사건에 한정해 확대하는 대신, 공소유지변호사를 폐지하고 검사가 공소유지를 맡도록 했다.

이런 왜곡은 당시 한나라당 검사출신 의원인 최병국 주성영 의원이 주도했다. 2007년 3월 2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 속기록에 따르면 주 의원은 "사개추위안은 법원이 재정신청을 받아들였을 경우에 변호사를 기소 내지 공소유지 담당자로 지정하고 있지만, 만일 전 사건에 대해서 우리가 재정신청을 허용하면 그런 사건이 좀 확대가 될 테니까 독일 법제에 따라서 검찰에다가 기소하고 공소유지명령을 하자, 이런 것이 우리 2안의 핵심이다"라고 주장했다. 독일 사례를 들며 검사가 공소유지를 해야 한다고 제기하자, 아무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됐다.

아주대 로스쿨 한영수 교수에 따르면, 독일의 경우 피해자가 검사와 공동원고가 돼 재판절차에 직접 참여하는 이른바 부대공소(공소참여)제도가 오래전부터 시행돼 왔다. 한 교수는 앞의 글에서 "법원에서 기소결정이 있으면 재정신청인은 검사와 함께 공소수행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으므로, 검사의 공소수행 공정성 시비가 제기될 여지는 애초부터 없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완수사권도 부여한 재정담당변호사 = 최근 한 고위 법관은 "고등법원에서 재정신청을 받아들여 공소제기 결정을 해도, 공소유지 검사가 제 역할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법관들이 재정신청사건을 인용할 의욕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실제 재정신청사건 공소유지 검사가 구형의견을 제출하지 않거나 무죄를 구형하는 경우도 있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제도 개선을 위해 2015년 8월, 한국형사법학회 추천 교수 3인, 한국형사정책연구원 1인, 협회소속 변호사 8인으로 재정신청제도 개선TF를 만들었다. 1년여 동안 총 14차례 회의를 하며 개정안을 마련했고, 박영선 의원이 2017년 1월 발의했다.

개정안 주요내용은 △재정신청 대상범죄를 고발사건까지 전면 확대하고 △법원이 재정신청이 이유 있는지 판단하기 어려운 때에는 보완수사를 명할 수 있게 하며 △변호사가 보완수사와 공소를 수행하는 제도를 부활하고 △재정신청사건 관할 법원을 고등법원에서 지방법원으로 변경하고 △검찰항고를 임의적 전치주의로 전환하는 것 등이다.

법제사법위원회 박수철 수석전문위원은 법안 검토보고에서 "기소독점주의 및 기소편의주의에 대한 견제장치로서 기능하는 재정신청제도의 취지에서 볼 때, 재정담당변호사제도를 도입하려는 개정안은 재정신청제도의 실효성 제고에 기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장병호 기자 bh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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