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보수 상승 우려에 규모 작은 곳으로 '하향 신청' … 일정 규모 이하로는 못 낮춰

금융당국으로부터 중대형 회계법인을 외부감사인(회계법인)으로 지정받은 기업들이 감사인을 교체해달라는 요구가 전체 재지정 신청의 42%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빅4회계법인(삼일 삼정 한영 안진)을 포함한 중대형 회계법인으로 지정을 받으면 감사보수가 급상승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른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기업과 회계법인에 2020년 감사인 지정을 지난달 14일 사전 통지한 후 재지정 요청을 받았고 의견을 반영해 12일 기업과 감사인의 지정을 확정했다. 13일부터 본통지를 실시할 예정이며 기업과 회계법인은 14~15일에 결과를 받아보게 된다.

감사인 지정은 금융당국이 기업의 외부감사인을 정해주는 것으로 '주기적 지정제'와 '직권 지정제'로 나뉜다. 주기적 지정제는 올해 처음 시행되는 제도로 기업과 감사인이 6년간 자유선임으로 계약을 체결했다면 이후 3년은 금융당국이 지정해준 회계법인과 감사계약을 체결하는 것을 말한다. 직권 지정은 △상장예정법인 △감리조치 △감사인미선임 △재무기준 요건(부채비율 200% 초과 등 해당) △내부회계관리제도 미비 △횡령·배임 발생 기업 등을 대상으로 금융당국이 감사인을 지정해주는 것이다.

회계업계와 금융당국에 따르면 사전 통지를 받은 기업 855사 중 340여곳이 지정된 회계법인 보다 규모가 작은 곳으로 감사인을 재지정 해달라는 '하향 재지정'을 요청했다. 주기적 지정대상 220사 중 70여곳(약 32%), 직권 지정대상 635사 중 280여곳(약 45%)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금융당국은 재지정 신청 사유 중 지정된 회계법인 보다 규모가 큰 회계법인으로 재지정 해달라는 '상향 재지정'만 인정했지만 감사보수 상승 우려에 따른 재계의 불만이 커지자 요건을 완화했다.

하지만 '하향 재지정'이라고 해도 한계가 있다. 일정 규모 이하로는 낮출 수 없다. 금융당국은 기업을 규모에 따라 5개 그룹(가~라)으로 나누고 회계법인 역시 5개 그룹(가~라)으로 구분했다. 기업이 '하향 재지정'을 요청하면 동일한 그룹에 속한 회계법인이 최하한선이다. 나군에 속한 기업이 가군에 속한 회계법인(빅4)을 지정받아 '하향 재지정'을 요청하면 최하한은 나군에 속한 회계법인(중견회계법인)이고 다군에 속한 회계법인을 지정받지는 못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자산 4000억원 미만의 기업들이 소위 빅4를 지정받으면 대부분 재지정을 요청했다"며 "재지정을 받는다고 해도 금융당국의 상장사 감사인등록심사를 통과한 20개 회계법인 중 하나"라고 말했다.

30여개 기업은 '상향 재지정'을 요청하기도 했다. 자산 5조원을 넘지 못해 나군에 속한 기업들 중 해외증권 발행이 많은 곳은 외국투자자들과의 문제 등으로 대형회계법인의 감사가 필요한 곳들이다.

이밖에도 감시인 독립성 훼손 문제로 재지정을 신청하는 등 재지정 요청은 전체 지정건수의 50%를 넘은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이 감사인지정 본통지를 실시하면 기업과 회계법인은 통지를 받은 후 2주 이내에 감사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올해는 시행 첫 해라는 점을 고려해 연장사유를 적시해 요청을 하면 2주 내외로 추가기한이 부여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이제부터 기업과 회계법인이 감사보수를 놓고 갈등이 본격적으로 벌어질 것"이라며 "기업은 가급적 적게 내려하고 회계법인 과거보다 많이 받으려고 해서 시장이 시끄러울 수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과도한 지정감사보수에 대해 '지정감사보수 신고센터' 등을 통해 지원활동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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