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보 "미측 입장 유지" … 전문가들 "미국, 몇 달러 위해 동맹 포기 말아야"

3∼4일 워싱턴DC에서 진행된 제11차 한미방위비분담 특별협정(SMA) 체결을 위한 4차 회의에서도 양측은 기존 입장차를 해소하지 못한 채 끝이 났다. 연내 타결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정은보 방위비분담협상대사는 5일(현지시간) "한미가 이번 협상에서 구체적 결과에 도달한 것은 아니다"면서 "한국의 분담금 대폭 증액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 유지되고 있다"고 밝혔다.

정은보 방위비분담협상 대사(왼쪽)가 5일(현지시간) 미 워싱턴DC 인근 덜레스 국제공항에서 특파원들과 문답을 하고 있다. 정 대사는 지난 3~4일 미국 측과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4차 회의를 진행한 뒤 이날 귀국길에 올랐다. 워싱턴=연합뉴스 백나리 특파원


그는 이날 워싱턴DC 인근 덜레스공항에서 귀국길에 오르다 취재진과 만나 "계속적으로 이견을 좁혀나가야 할 상황이고 구체적으로 결과에 도달한 것은 아니다"라며 "상호 간의 이해의 정도는 계속 넓혀가고 있다"고 말했다. 또 '미국이 계속 SMA 틀을 벗어난 요구를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미국 입장에서는 아직 구체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기까지에는 미측 입장대로 유지되고 있다고 보시는 것이 맞을 것 같다"고 답한 뒤 "저희 입장에서는 '기존 SMA 틀 속에서의 협상이 진행돼야 한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양측 이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음을 내비친 대목이다.

이를 입증하듯 정 대사는 "어떤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이슈가 동시에 진행되기 때문에 어떤 분야에 대해서만 특별히 어떤 진전이 있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며 말을 아꼈다.

다만 그는 "무역이나 늘 언급이 됩니다만 주한미군 문제라든지 이런 거는 협상 테이블에서 전혀 논의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한미 방위비 협상장에서 무역과 주한미군 문제는 거론되지 않았다는 취지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주한미군이 전부 주둔하려면 한국이 방위비를 더 내야 한다고 발언한 데 이어 나토 회원국을 상대로 방위비를 증액하지 않으면 무역 부문에서 조치를 할 것처럼 압박하고 있어 한국과의 방위비 협상에도 무역과 주한미군이 지렛대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 바 있다.

정 대사는 '연내 타결이 어렵지 않겠느냐'는 질문에는 "그런 부분과 관련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일 미국으로 출국할 당시 정 대사는 "원칙적으로는 연말까지 협상 타결을 위해 노력해 나가겠다"고 말한 바 있다.

한미는 내년부터 적용될 제11차 SMA 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을 진행 중이며 미국은 현행보다 5배 이상 증액된 50억달러에 육박하는 금액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져 우리정부가 좀처럼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의 분담금 증액 요구는 미국사회 내부에서도 적잖은 논란이 되고 있다.

각계 전문가들이나 전직 관료들은 수십년을 지켜온 동맹의 가치를 돈으로 따지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더구나 한국정부는 주한미군에 대해 지금까지도 상당한 비용지불을 해 온 터라 무리한 요구는 자칫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는 실정이다.

월터 샤프 전 주한미군사령관도 5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한미경제연구소가 개최한 방위비 분담금 관련 대담에 참석해 "몇 달러를 위해 동맹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면서 "동맹이 가장 중요한 것이 돼야 한다. 동맹의 가치가 이 (방위비 협상) 전체 논의에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방위비 지출이 2.7~2.8%에 달한다"고 소개한 뒤 "우리의 어느 동맹보다 더 높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2배, 3배, 4배든 5배든 증액이 생긴다면 그 돈은 한국 정부 어딘가에서 나오는 것임을 고려해야 한다"며 "나는 그 돈이 국방비에서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그 돈은 한국이 자국 방어에 얼마나 지출하고 해외 무기 구매에서 우리 물건을 사는 데 얼마나 쓸 지와 직접 관련이 있다"며 "이러한 부분도 저울질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분담금 인상이 결국 미국산 무기구입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날 대담에 참석한 다른 미국 전문가들도 트럼프 행정부가 주장하는 50억달러 요구는 지나치다는 입장을 보였다.

스콧 해럴드 랜드연구소 연구원은 "평택 미군기지 건설비용 110억달러 중 한국이 약 90%를 부담한 것도 한국 기여분에 포함해야 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깊은 연구를 통해 50억달러라는 숫자를 찾아냈다고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케일 페리어 한미경제연구소 국장은 "미국이 '눈에 보이는' 돈을 추구하다 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더 광범위한 것을 놓칠 수 있다"며 "결국 재정적으로 훨씬 더 많은 돈을 잃을 수 있어 일종의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재철 기자 · 한면택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