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비 별도계좌 지급으로 '착복' 방지 … 노동계 "지자체·업체 압력에 굴복"

공공기관이 업무를 민간업체에 위탁할 경우 계약금 중 노무비는 별도 전용계좌로 지급하고 노동자에게 임금으로 제대로 지급됐는지 확인해야 한다. 고용노동부는 국무조정실·기획재정부·행정안전부 등과 논의를 거쳐 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민간위탁 노동자 근로조건 보호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가이드라인은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정책의 마지막 3단계 대책으로 지난 2월 민간위탁 노동자의 일률적인 정규직화 대신 처우개선을 하겠다며 내놓은 방안이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일제히 "비정규직의 정규직 정책 포기선언"이라며 반발했다.

민간위탁이란 공공부문이 제공하던 공공서비스 중 환경미화, 시설관리, 아이돌봄 등을 민간업체가 대행하도록 한 업무를 말한다. 고용부의 공공부문 민간위탁 실태조사(2018년 7∼11월)에 따르면 공공기관의 민간위탁 업무는 1만99개로, 예산 규모는 7조9613억원에 이른다. 수탁업체는 2만2743곳이고 소속 노동자는 19만5736명이다. 민간위탁 업무는 지자체 업무가 87.2%(8807개)를 차지했다. 업무 분야별로 보면 사회복지관과 아이 돌봄 등 사회복지 업무가 47.2%(4769개)로 가장 많았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공공기관이 수탁업체(민간위탁업체)에 지급하는 계약금 가운데 노무비를 별도로 관리하고 수탁업체의 전용계좌로 노동자에게 노무비를 지급해야 한다. 고용부는 "수탁업체에 지급된 노무비가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사업주에게 착복된다는 지적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또한 수탁업체 노동자의 고용안정을 위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고용을 유지한다'는 내용을 계약서에 명시하도록 했다. 근로계약 기간을 설정할 경우 수탁업체는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근로계약 기간을 공공기관과 맺은 수탁기간과 동일하게 설정해야 한다.

공공기관은 수탁업체로부터 노동자 임금·퇴직금 지급, 근로기준법 등 노동법령 준수 등을 담은 '민간위탁 노동자 근로조건 보호 관련 확약서'를 제출받고 업체가 이를 어길 경우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공공기관은 민간위탁 업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10명 이내의 내·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민간위탁 관리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 위원에는 노조가 추천하는 전문가를 포함시키도록 했다.

이에 노동계는 정규직화 방안을 외면했다며 반발했다. 한국노총은 "열악한 처지에 있는 민간위탁 노동자들에 대한 정책은 실질적이고 구체적이어야 하는데, 가이드라인은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에 형식적일 뿐만 아니라 강제성이 결여돼 이행의 담보에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은 "그동안 민간위탁업체 비리를 적발해 부당 횡령한 비용을 국고에 환수시켜온 노동자와 노조의 민간위탁위원회 참가가 막혔다. 이윤추구와 행정편의로 결탁한 민간업체와 지자체의 민간위탁 유지 압력에 굴복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은 그동안 △관리위원회 노조참여 △완전한 노무비 계좌제 △위·수탁 3자 교섭구조 △인건비에 대한 낙찰률 적용 △업체변경 시 단협 승계와 단체교섭 의무화 △재하도급·파견 금지 등을 요구해 왔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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