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토 실라스마 지음 /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 2만3000원

"2016년 세모(歲暮)의 노키아는 2012년의 노키아와는 말할 것도 없고, 불과 1년 전의 노키아와도 근본적으로 달라진 회사였다. 내가 노키아의 회장이 되었을 때,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는 일개 휴대폰 제조업체였다. 우리는 2016년을 주로 모바일 네트워크와 특허 라이선싱 회사로서 출발했다. 그런데 무선, 유선, 케이블, 라우팅, 광케이블, 자립형 소프트웨어, 서비스, 디지털 헬스케어, 가상현실, 게다가 특허, 브랜드 테크놀로지 등의 라이선싱 작업을 아우르는 완벽한 포트폴리오를 갖춘 세계 텔레콤 인프라 업계의 3대 주요 기업 가운데 하나로서 그 해를 마무리했다."

저자는 노키아의 현 회장 리스토 실라스마다. 그가 최연소로 이사회에 합류한 2008년만 해도 회사는 전 세계 휴대폰 업계 1위 업체였다. 더 나아가 핀란드의 상징이자 자부심의 원천이었다.

노키아의 역사는 한마디로 변화와 혁신 그 자체였다. 노키아는 1865년 핀란드 남서부 탐페레의 작은 펄프공장으로 출발한다. 수많은 부침 끝에 회사는 핀란드고무회사, 핀란드전선회사와 합병해 노키아로 공식 출범한다. 합병 노키아는 타이어 신발 케이블 TV 등 가전 PC 전력 로봇 콘덴서 군 통신장비 플라스틱 알루미늄 화학 등 당시 떠오르는 첨단산업에 참여한다.

개방·혁신으로 세계 1위

1980년대 경영악화오 어려움을 겪자 노키아는 고무 제지 케이블 가전 등 기존 사업을 모두 정리한다. 그리고 통신분야에만 집중하는 사업구조조정을 단행한다. 인수합병을 통해 1990년대 대세로 떠오른 휴대폰 사업에 진출한 것이다. 그리고 1992년 유럽 디지털 이동통신 표준으로 제시된 GSM 방식을 채택한 휴대전화를 출시해 성공한다. 덕분에 노키아는 1998년 모토로라를 제치고 세계 휴대전화 판매량 1위를 차지한다. 최고 전성기로 꼽히는 2007년의 경우 전 세계에서 판매된 휴대폰 중 40% 이상에 그들의 상표가 붙었다.

하지만 영광도 잠시였다. 2010년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노키아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소비자들은 노키아 제품을 외면하고 스마트폰을 구매했다. 2012년에는 삼성전자에게 전 세계 휴대폰(스마트폰 포함) 판매량 1위 자리를 내줘야만 했다. 위기에 봉착한 노키아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제휴를 맺고 자체 모바일 운영체제인 '심비안' 대신 '윈도우폰OS'를 채택한 스마트폰을 시장에 내놨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저자는 소프트웨어 공급자로 노키아와 관계를 맺었다 결국 이사가 됐다. 그리고 2012년 5월 침몰하는 거함의 키를 넘겨받은 저자는 초대형 거래들을 연거푸 성공시키며 노키아를 되살려 낸다. △노키아지멘스네트웍스(NSN) 소유권 완전 매입(네트워크분야) △휴대폰 부문 매각 △알카텔-루슨트 인수(통신분야) 등이다. 노키아는 그저 살아남은 데 그친 게 아니라 이제 세계 디지털통신인프라 시장의 선두주자로 세계시장을 이끌어 가고 있다.

성공의 달콤함에 취하다

노키아는 무선 통신이라는 새로운 산업을 창출해 선도하며 승승장구했다. 이런 회사가 애플이나 구글에 맞설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노키아가 스스로 거둔 성공의 제물로 전락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2000년대 말에서 2010년대 초 성공의 달콤함에 취한 노키아는 자신들의 강점이었던 위험을 감수하는 개방적이고 혁신적인 문화를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대신 그 자리에 현실안주와 무사안일이 스며들었다. 특히 실패의 징후를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알아차리고도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는 리더와 지도부 태도가 문제였다. 여기에 문제점과 위기 그리고 나쁜 소식을 무능력과 동일시하고 비판하는 대응방식이 더해지면서 위기에 무감각해졌다. 그 결과 노키아 경영진은 자신들이 손쓰기에 너무 늦어서야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깨달았다. 성공을 맛본 사람이 몰락의 기미를 간파하고 실패 가능성에 미리 대비하기란 매우 어렵다. 실패의 씨앗이 서서히 싹트고 있을 때에도 여러 측정지표들은 아직 충분히 괜찮다고 말해주기 때문이다.

빠르고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

노키아처럼 극적인 성공, 처참한 몰락, 화려한 재기를 짧은 시간에 순차적으로 보여준 사례는 흔치 않다. 저자는 책에서 노키아가 왜 성공의 정점에서 이례적으로 빠른 속도로 몰락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지 들려준다. 그 과정을 총지휘한 저자는 △편집증적 낙관주의 △기업가적 리더십 △나쁜 소식에 대해 들려주기를 권장하는 열린 기업문화 △조직 구성원 간의 신뢰 △각고의 연습에 수반된 행운 등을 재기의 비결로 꼽는다.

저자는 현재의 노키아를 이렇게 표현한다. "알카텔-루슨트 인수 거래가 마무리된 직후 나는 중국에서 개최된 한 위원회에 유명한 중국의 기업가 마윈 마화텅 리옌홍과 함께 참가했다. 나는 청중들에게 참가 기업인 알리바바 텐센트 바이두와 비교해볼 때 노키아는 가장 오래되고 그러면서도 가장 젊은 회사라고 소개했다. 최근에 150주년 기념식을 치렀으니만큼 가장 오래되었고, 또 우리의 재탄생 결과 그들보다 더 새로운 스타트업이라는 점에서 가장 젊다고 말이다. …… 우리는 새로 태어난 기업이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자긍심과 겸손함을 동시에 심어준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재치 있는 말로 책을 마무리했다. "모름지기 좋은 책이란 끝이 적절해야 한다. 하지만 노키아의 이야기는 현재진행형이므로 끝이 따로 없다. 오직 새로운 시작만이 있을 뿐이다. 나는 언젠가 노키아의 다음번 변신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 하지만 그 순간이 그리 빨리 오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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