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마케터 89명, 라이나생명 상대 패소

유연근무제 방식으로 보험사 텔레마케터로 근무했다면 근로자로 보기 어렵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텔레마케터들의 근무 방식이 회사의 지배를 받을 정도로 종속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48부(최형표 부장판사)는 강 모씨 등 89명이 라이나생명을 상대로 제기한 임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고 9일 밝혔다.

강씨 등은 라이나생명과 텔레마케터 위촉 계약을 체결하거나, 보험계약 체결 업무를 위탁받은 홈쇼핑이나 금융업체·보험 대리점 사이에 위촉 계약을 맺고 라이나생명으로부터 보험가입을 권유하는 업무를 맡아왔다.

이들은 자신들이 실질적으로 정규직이나 다름없다며 주휴수당이나 퇴직금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라이나생명은 강씨 등이 개인사업자라고 맞섰다.

강씨 등은 라이나생명 종로 본사에서, 회사 측이 만든 프로그램을 이용해 보험고객 모집 업무를 해왔다. 회사가 수집한 고객 데이터베이스를 기본으로 한 보험계약 체결 권유 업무다. 데이터베이스의 관리나 저장, 전산정비, 전화시스템, 녹음시스템 등은 회사 측이 제공했다. 강씨 등은 이러한 조건이 사실상 근로자로 인정한 것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재판부는 "회사가 제공한 프로그램과 장소를 이용했다는 것만으로 회사의 구체적 지휘·감독이 있었다거나 근로관계가 형성됐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강씨 등은 종일팀과 유연팀 오전반, 유연팀 오후반으로 나눠 근무했다.

종일팀의 경우 오전 9시 20분부터, 오후 6시 20분까지, 유연팀 오전반은 오전 9시20분부터 오후 1시 50분, 유연팀 오후반은 오후 2시 5분부터 6시 35분까지 근무하는 방식이었다.

근로관계라면 출근 자체나 출퇴근 시간 준수가 강제돼야 한다. 재판부는 또 강씨 등의 근무방식을 따져봤다.

당시 100명이 조금 넘는 텔레마케터가 근무를 했는데, 2일 이상 근무하지 않은 경우가 52회(40명)에 달했다. 한명이 여러날을 쉬기도 했다는 의미다. 또 4일 이상 근무하지 않은 경우도 24차례나 됐다. 일부 텔레마케터는 정해진 출근 시간 이후 회사에 모습을 드러냈고, 심한 경우 점심시간이 다 된 시간에 출근하는 경우도 있었다.

강씨 등은 "출근 시간을 지키지 않은 경우, DB물량이 줄어드는 불이익을 입었다"고 주장했지만, 결근 다음날 평소와 같은 데이터베이스를 배정 받은 경우도 상당수 됐다.

재판부는 "출퇴근 시간 미준수에 대해 불이익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할 증거가 없고, 회사가 출퇴근 시간을 실적 장려를 위한 데이터로 활용한 경우는 있지만 이를 출퇴근 시간 강제 증거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콜타임(고객과 전화통화를 한 시간)이나 업무 매뉴얼 등을 회사가 강제했다는 강씨 등의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특히 일부 텔레마케터는 26개 회사에 보험설계사로 등록된 점이 드러났고, 재판부는 강씨 등이 라이나생명에 종속되지 않았다고 봤다.

재판부는 "라이나생명이 강씨 등에게 정규직 등에게 적용되는 취업규칙, 복무규정 등이 적용되지 않았고, 개인사업자로 수수료를 받아 사업소득세를 납부했다"며 "강씨 등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오승완 기자 osw@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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