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 패트도 강행? 후폭풍 커

야, 명분·실리 다 놓칠수도

"패트법 충분히 절충 가능"

여야가 새해 예산안에 이어 패스트트랙 법안을 놓고도 극한대치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결국 일방처리와 결사항전의 종착점은 공멸 뿐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모두가 패자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정치권에서도 "여야가 충분히 절충이 가능한데도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민주당은 13일 본회의를 열고 패스트트랙 법안을 일괄상정해 이르면 16일 선거제 개정안을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한국당과의 막판 대화 가능성을 닫은 건 아니지만, 기대하지 않는 눈치다.

만약 민주당이 4+1 협의체를 앞세워 선거제 개정안마저 한국당을 배제한 채 통과시킨다면 후폭풍이 거셀 수밖에 없다. 예산안을 제1야당을 '패싱'하고 처리한 것도 이례적인데, 선거제 개정마저 제1야당 동의없이 강행한다면 아무리 좋은 명분(양당체제 타파를 통한 정치개혁)을 내세운다고 해도 '절차적 하자'라는 생채기가 불가피한 것이다.

민주당이 선거제마저 일방처리한다면 한국당은 분명 "날치기"라고 비판할 것이다. 날치기의 대표사례로는 1996년 12월 26일 새벽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이 소속의원 154명을 버스로 실어날라 노동법 개정안을 일방처리한 게 꼽힌다.

민주당에서는 선거제 처리가 △국회법에 명시된 패스트트랙 제도를 인용하고 △민주당 뿐 아니라 군소야당들이 참여하고 △제1야당 몰래 통과시키는게 아니라는 점에서 '노동법 날치기'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항변할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제1야당의 동의없이 예산안에 이어 선거제까지 바꾼다면 "집권세력의 정치적 무능력과 독선적 행태가 확인된 것"이라는 여론의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김영삼정부는 노동법 날치기 뒤 급격한 레임덕을 맞았고 이듬해 대선에서 정권을 내줬다.

한국당도 강경목소리가 크다. 황교안 대표는 국회 로텐더홀에서 철야농성에 들어갔고, '결사항전'이란 표현까지 썼다. 패스트트랙 법안을 무조건 막을 뿐 타협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한국당이 패스트트랙 법안을 실제 저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미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한국당은 숫적열세라는 현실을 넘어설 수 없었다. 만약 패스트트랙 법안마저 한국당의 '입장'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 4+1 협의체의 합의안으로 통과된다면 한국당으로선 명분과 실리 모두를 놓쳤다는 당안팎의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선거제·검찰개혁이 필요하다"는 여권의 논리를 확실히 무너뜨릴만큼 여론을 만들어내지 못했고 한국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공수처 신설을 통해 입을 피해 가능성을 최대한 줄이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당 지도부를 겨냥한 책임론이 불거질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특히 황교안 대표는 아무리 정치신인이고 원외라지만 장외집회와 삭발, 단식, 농성 등 '정치 외 문법'으로만 정치를 고수하면서 '공멸'을 자초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정치권에서는 여야 지도부가 명분에만 사로잡혀 정치의 본령인 대화와 협상을 소홀히 한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패스트트랙 법안조차 충분히 절충이 가능한데도 지지층을 의식해 자기 의견만 고집한다는 것이다.

이명박정부 고위직 출신의 한 정치권 인사는 "민주당은 연동형 비율을 낮추는 등 제1야당에게 함께할 명분을 좀 더 주고, 한국당도 패스트트랙 법안에 자신의 의견을 좀 더 넣는 선에서 충분히 합의할 수 있다"며 "여야 지도부가 공생보다 공멸의 길로 치닫고 있다"고 비판했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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