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해운산업 새지평

한국선주상호보험조합(KP&I·회장 박영안)이 국내 선주들뿐만 아니라 해외선주와 선박들도 상호보험에 유치해 한국해운산업의 지평을 확대했다.

2000년 설립한 한국선주상호보험조합은 올해 상반기까지 베트남 등 7개국 49개선사 149척 이상의 외국선박을 가입 유치했다. 2010년 국내 시장은 물론 해외 선주상호보험시장을 적극 개척한 성과다.

한국선주상호보험조합(KP&I)은 국제그룹(IG)에 포함된 영국 브리타니아(Britannia) P&I클럽과 5일 공동인수제휴를 맺었다. 사진 KP&I 제공


◆영국 브리타니아 P&I와도 제휴 = KP&I는 지난 5일 영국의 브리타니아(Britannia) P&I클럽과 공동인수제휴를 맺었다. 2017년 영국의 스탠다드클럽과 공동인수제휴를 맺은 후 선주상호보험시장에서 국제그룹(IG)을 형성하고 있는 클럽과 제휴를 확대한 것이다.

선주상호보험(Protection and Indemnity)은 선박의 운항과 관련해 발생한 사고로 제3자가 피해를 당했을 때 선주의 배상책임을 선주들이 서로 담보하는 보험이다. KP&I는 국내 최초의 선주상호보험(P&I) 전문보험자로 국내 선사들이 외국 P&I에 가입해 국부가 유출되는 것을 막아보겠다는 의지로 출범했다.

하지만 세계 해운시장에서 오랜 전통을 가진 외국 P&I사들의 장벽은 높았다. 전통적인 선주상호보험은 국제그룹(IG)에 포함된 영국 노르웨이 미국 일본 스웨덴 등이 주도하고 있다. 영국은 8개사, 노르웨이는 2개사, 미국 일본 스웨덴은 각 1개사가 IG에 가입해 있다. 선주가 새 배를 짓거나(신조 발주)나 화물운송을 위한 용선계약을 맺을 때 선주상호보험은 국제그룹과 맺도록 할 정도로 이들의 영향력은 강했다.

KP&I와 한국해양진흥공사는 2일 '해운 및 연관산업의 동반성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사진 KP&I 제공


하지만 KP&I는 선주상호보험 시장에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2017년 이후 국제그룹에 포함된 유수의 선주상호보험조합 2곳과 상호협약을 통해 이런 카르텔을 풀었다. 배를 새로 건조하거나 용선을 할 때 KP&I에도 선주상호보험을 들 수 있게 한 것이다.

국제그룹에 가입하지 않은 P&I사 중 중국과 한국은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성장했다. 한국해운산업의 잠재력이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병일 KP&I 전무이사는 11일 "한국선주상호보험조합이 설립된 후 국제그룹에 포함된 유수의 P&I클럽들은 한국시장을 한꺼번에 잃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우리를 무시하지 못한다"며 "한국의 선주들이 KP&I로 옮겨갈지 모른다고 보고 국제그룹에 포함된 클럽들도 우리와 제휴해 한국시장을 계속 유지하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KP&I에 따르면 한국은 보유선박 기준 세계 7위권이다. 선대규모가 큰 중국의 선주상호보험조합들도 국제그룹 소속 6개사와 제휴를 맺고 있다.

◆선체보험도 가능하게 제도개선 검토 = 한국선주상호보험조합은 설립 당시 보험료 규모가 108만달러에서 올해 상반기 2840만달러로, 자본총액은 73만달러에서 5100만달러로 꾸준히 성장했다. 국내 선사들이 해외 P&I사에 지불하던 보험료들도 국내로 돌아오면서 19년간 약 3억7000만달러의 국부유출을 방지한 것으로 분석된다.

11월말 기준 회원사는 선주협회 소속 외항선사 199개, 외국선사 49개사 등 258개다. 가입선박은 외국선 149척을 포함 1059척이다. 여기엔 해양대 실습선 등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무분별하게 덩치를 키우는 것은 경계하고 있다. 문 전무는 "해외선박을 유치하는 노력을 계속 하고 있지만 사고위험이 높은 선박을 유치하는 데는 신중할 수밖에 없다"며 "현재 KP&I는 570억원의 비상기금이 있는데, 국내 선주와 정부가 만든 이 돈을 해외에서 허투루 쓰면 안 되니까 선박의 사고내력 등을 잘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KP&I는 올해 홍콩 선적 솔로몬트레이드호가 적도 가까운 솔로몬에서 좌초하며 배상책임을 맡게 됐다. 최대 3300만달러 배상금을 지급할 수도 있다고 추정한다. KP&I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사고다.

KP&I는 사고 후 선박이 보험료가 높아지니까 다른 클럽으로 이탈할 가능성을 막기 위해 보험인수 방식을 뮤추얼(상호) 방식으로 바꾸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다른 클럽으로 옮길 때는 벌금(패널티)을 내고 나가게 하는 것이다.

KP&I는 국내 선사와 선박들의 유치를 확대하기 위한 노력도 계속하고 있다. 지난 2일엔 한국선주상호보험조합과 한국해양진흥공사가 '해운 및 연관산업의 동반성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선주의 배상책임 및 보험 자문 △해상법 및 해상보험 등 해상관련법제 정보 교환 △해상보험 인프라 강화 노력 등을 상호 협력키로 했다. 국내 해운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해운과 선주상호보험업계의 산업간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의지다.

한 해 평균 650건의 보험사고를 처리하며 국내 최대 해상보험전문가 집단으로 성장하고 있는 KP&I는 국내 선사들에게 동일언어 동일시간대 서비스를 바탕으로 선제적인 보험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일정 선령을 초과하는 선박들에 대해 서비스하는 선박상태조사는 최근 5년간 연평균 118척 실시했다.

선박의 전반적인 상태는 물론 항행안전장비, 소화설비, 유류설비 등에 대한 검사로 선박사고 예방과 선원안전의식 고취에 도움을 주고 있다. 극지운항에 투입하는 아라온호와 해양조사선 이사부호도 KP&I에 가입해 전 세계 해역을 항해 중이다.

한편, KP&I는 선체보험을 다룰 수 있게 제도개선을 검토 중이다. 국제그룹에 가입한 13개 클럽 중 7곳은 선체보험도 하고 있지만 한국은 손해보험사들과 이해관계가 충돌해 제도개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문 전무는 "한국의 해상보험 중 선체보험 비중은 손보사 전체 매출의 0.3%밖에 안 돼 전문성을 키우기 어렵다"며 "선박사고가 나면 선주만 손해를 보는 구조를 바꿔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회원사들은 선박이 좌초하는 등 사고가 나면 환경오염 등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배에서 빨리 기름을 빼는 등 조치를 해야 하는데, 선체보험과 선주상호보험이 따로 돼 있으면 선체보험에서 전손처리를 하지 않으면 상호보험에서 들어가지 못한다. 선박손상이 더 커지면 2차 피해는 더 확산된다.

문 전무는 "국내 선체보험 규모는 2000억원 정도인데, 손보사와 선주상호보험사 입장이 아니라 선주 입장에서 보고 선주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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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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