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법안 논의조차 않는 국회에 쓴 소리

지방분권은 쟁취 대상, 시민역량 강화해야

지역맞춤형 인재양성도 지자체에 맏겨야

"지방에 권한은 주지 않고 선거만 해서 단체장 지방의원 뽑아봐야 결국은 벼슬자리만 늘리는 결과만 낳습니다. 지방에 실질적인 재정·조직·입법 권한을 줘야 진짜 지방자치를 할 수 있습니다."

지난 7월부터 1년간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장을 맡고 있는 권영진(사진) 대구시장은 여전히 중앙집권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국회와 중앙정부를 향해 쓴 소리를 서슴지 않았다.


특히 국회가 지방분권 관련 법안들을 논의조차 하지 않는데 대해서는 "국회의원들이 지방행정, 지방살림을 해보지 않아 지방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고 꼬집었다. 권 회장은 결국 지방분권을 '쟁취해야 할 문제'라고 규정했다.

그는 "국회가 (지방분권 관련) 법안을 처리하지 않으면 유권자들이 안 찍어준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며 "결국 제대로 된 지방분권을 위해서는 시민사회의 분권 역량을 강화하는 일부터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5년 지방자치를 전반적으로 평가한다면.

우리는 지방의 힘이 곧 국가의 힘이 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1995년 민선 1기 지방자치 실시 이후 지방자치단체의 노력으로 중앙집권적 정책에서 주민과 지역발전을 위한 정책으로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지방자치권이 중앙정부의 통제 아래서 제한적으로 인정되고 있어 진정한 의미의 지방자치라고 보기는 힘든 게 현실이다. 지방자치법은 법령의 위임이 없으면 주민의 권리제한 의무부과 벌칙규정 등을 조례로 정할 수 없다. 재정 면에서 보면 지방은 일은 많이 하고 있지만 재정은 국가에 의존하고 있다. 자치조직 측면에서도 지금의 자치법령은 지방자치단체는 부단체장 정수는 물론 사무분장, 실·국·본부의 수 등을 인구기준에 의해 세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한마디로 지역의 특색에 맞는 자치를 할 수 없는 상태다.

■20대 국회에서 자치분권 관련 법안이 처리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지방은 절박한데 국회와 정당은 민생의 문제, 국가의 문제로 보지 않는 것 같다. 지금 국회는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에 대해 말로만 떠들고 있는 셈이다. 국회가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해 생긴 문제이지만, 그렇다고 국회만 쳐다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 이젠 국민들이 자치분권·균형발전을 자기의 운명, 자기의 삶의 문제와 직접 잇닿아 있다고 인식하고 강력하게 요구해야 한다. 내년 1~2월 임시국회가 열리면 시도지사들은 물론 기초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들까지 모두 국회를 향해, 그리고 국민들을 향해 한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준비할 것이다.

■지방분권이 시대의 요구라고 강조하는데 이유가 뭔가.

그동안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경영 시스템을 오랫동안 유지해오면서 지방은 고사 위기에 내몰렸다. 지방자치를 한다고 선거를 도입한지 25년이 됐지만 변화가 많지 않다. 지방자치란 저마다 자기 지역의 운명을 특색 있게 개척하고 발전시키라고 도입한 제도인데 실상은 거꾸로 가고 있다. 지방에 권한은 주지 않고 선거만 치뤄 지방 벼슬자리만 늘어나는 결과를 낳는다. 이는 지방의 발전과는 관계없는 일이다. 지방에 실질적으로 재정 조직 입법 권한을 줘야 진짜 지방자치다. 이젠 이 길로 성큼성큼 나아가야 한다. 특히 이 일은 당장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야 그 다음 과제인 통일한국으로 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지방분권이 효과가 있다고 보여줄 만한 사례가 있나.

지방분권이 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보여줄 수 있겠나. 그나마 대구시가 추진 중인 스타기업 정책을 보면 분권의 필요성을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스타기업 정책은 내가 시작한게 아니라 전임 시장 때 정책이다. 기업을 맞춤형으로 지원해주는 사업인데 효과가 좋다. 정부가 중소기업 육성한다고 수도 없이 돈 뿌렸지만 잘 안되잖나. 지역 혁신역량들이 머리를 맞대야 하는데 지자체가 핵심 주체가 아니라 잘 안 되는 거다.

대구는 프리스타기업에 이어 스타기업 글로벌강소기업 월드클래스300 등 상황과 시기에 맞는 유연한 정책들을 펴고 있다. 이렇게 하니 실제 대상 기업들의 매출이 스타기업이 아닌 기업보다 6배 더 많아졌다. 고용도 3배나 많다. 정부는 우리처럼 이렇게 맞춤형으로 지원해주지 못한다. 그래서 지역에서 해야 한다는 거다.

■지방분권을 위해 국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있나.

대구가 이미 좋은 본보기를 보였다. 대구는 이미 2005년부터 시민사회와 연대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8개 구군에 각각 지방분권 협의회를 만들고 시민사회 역량을 모아왔다. 지금 대구가 지방분권 운동의 중심에 설 수 있는 것도 시민사회와의 연대를 원동력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분권운동은 활동가들, 전문가들은 있지만 시민운동으로 확산되지는 못한 단계다. 이 단계로 넘어야 진정한 자치분권이 실현된다. 시도지사협의회도 당장 20대 국회에서 초보적인 수준이지만 자치분권 관련 법안들이 통과될 수 있도록 국민들의 뜻을 모아나갈 생각이다.

■지금 국회에 계류 중인 자치분권 관련 법안들이 지방의 요구에 미치지 못한다는 얘긴가.

우선 재정분권부터 보자. 우리 목표는 소비세율을 기존 11%에서 21%까지 확대하는 건데 당장은 5%밖에 올리지 못했다. 그래봐야 중앙과 지방의 예산 비율이 8대 2에서 7.6대 2.4로 되는 수준이다. 우리가 목표로 하는 6대 4까지 가려면 가야할 길이 멀다.

제2국무회의도 마찬가지다. 대통령 공약으로 시작했지만 이름부터 지방중앙협력회의로 바뀌었다. 협력회의에서 다를 수 있는 내용도 극히 제한적이다. 자치입법권은 또 어떤가. 이번 법안에는 제대로 언급조차 되어있지 않다. 지금의 조례 제도로 지방에 입법권이 있다고 보기 어렵지 않나. 이는 분권개헌으로 완성할 수 있는데 이번 정부에서는 이미 기회를 놓쳤으니, 다음 대선을 계기로 본격적인 분권개헌 운동을 펼쳐야 한다.

■자치분권 추진 과정에서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이 더 있나.

현재 국회에 계류된 법안들이 낮은 단계이긴 하지만 이 수준으로라도 통과시키면 자치분권을 제도적으로 한 단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논의에서 꼭 필요하지만 빠져있는 게 하나 있다. 바로 고등교육, 즉 대학교육 영역이다.

대학교육 관련해서는 교육부가 모든 걸 관장한다. 지역을 발전시키기 위해 지역에 맞는 인재를 키워야 한다. 지역 대학과 지자체 협력 없이는 안 되는 일이다. 그런데 이 대학교육과 관련한 정책 예산 등이 모두 지자체와는 무관하게 논의되고 운영된다. 지금이라도 대학교육과 관련한 권한 상당부분을 지방정부로 이양해줘야 한다. 그래야 당장 닥친 지방대학 고사도 막을 수 있다.

■고등교육 자치라는 말이 그리 익숙하지는 않다.

지금은 교육부가 대학 관련 정책을 만들고, 예산을 편성해 대학에 직접 준다. 그 중 상당부분을 지방정부에 달라는 것, 즉 지방정부에 대학지원 예산을 편성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의미다. 이런 예산이 있어야 대구시가 추진 중인 혁신인재양성프로젝트 '휴스타' 같은 사업을 할 수 있다. 휴스타는 대학과 지자체가 손잡고 지역 산업을 이끌어갈 인재를 키우는 사업이다. 정부도 이 사업의 성과를 인정해 내년 시범사업을 추진하려 한다. 다만 이 사업을 기존 대학 정책들처럼 교육부가 연구재단에 돈 줘서 주관대학으로 보내고 이 주관대학 주도로 협력체제 만들고 하는 방식으로 추진하면 반드시 실패한다. 대구의 휴스타 사업처럼 지방정부 주도여야 성공할 수 있다.

■지방소멸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고민하는 대책이 있나.

그렇다. 전체 인구의 49.5%, 지역총생산의 49.4%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 현실에서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는 날로 심화될 경우 전국 지자체의 1/3인 85개 지자체가 소멸될 수 있는 위기 상황이 눈앞에 와 있다. 특히 수도권으로의 청년유출과 저출산 고령화 문제까지 겹쳐있다. 지방분권이 절실한 이유 중 하나다. 당장 저출산 고령화 문제만 놓고 보자. 그동안 정부가 이를 막겠다고 쓴 예산이 수십조원이다. 그런데 출산율은 계속해 떨어지고 있고, 고령화율은 더 가팔라졌다. 왜 그렇겠나. 지역마다 제각각 특색이 있는데 정부가 천편일률적으로 정책을 추진해서 안되는 거다. 지방으로 돈을 내려주고 각자가 자율적, 창의적으로 관련 정책을 펴도록 하면 된다. 그러면 지방간 엄청나게 경쟁하고 또 협업도 한다. 그렇게 좋은 사례들이 만들어지고, 그 힘으로 나라 전체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된다.

■17개 시도지사 가운데 3명뿐인 야권 단체장 중 한 사람이다. 어려움은 없나.

여당 단체장은 정부 정책에 강하게 반대하기 어렵다. 중앙의 권력을 뺏어오는 제도를 만드는데도 적극적이기 어렵다. 대통령과 청와대 정부와 대립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반대로 야당 단체장은 더 나가자고 목소리를 높일 수 있다. 이는 과거 여야 입장이 바뀌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시도지사협의회가 임기 1년인 회장을 여야가 교대로 맡아오는 관행은 의미가 있다. 특히 자치분권을 위한 중요한 시기에 야당 소속으로 협의회장을 맡은 만큼 좀 더 역할을 높여야겠다고 생각한다. 보다 진전된 성과를 내도록 노력하겠다.

■정치인 권영진에 대해서도 궁금하다. 대구에서 정치하기 어떤가.

정당정치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속한 한나라당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도전해 실패하더라도 경쟁 무풍지대였던 대구·경북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키면 소명을 다 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운이 좋았다.

1999년 운명처럼 정치에 입문해 서울시 정무부시장과 국회의원을 거쳐 대구시장을 두 번째 하고 있다. 벼슬자리로 치면 적지않게 했다. 그런데 내가 벼슬자리 차지하고 있는 동안 정치가 좋아졌느냐고 물으면, 대한민국이 희망공동체로 가고 있느냐고 물으면 부끄럽다. 내가 만약 현재 20대 국회의원이었다면 불출마를 선언했을 것이다. 사퇴를 고민했을 것이다.

벌써부터 사람들이 3선에 도전해라, 대선에 나가라 하는데 지금처럼 정치에 희망이 없는 상태라면 3선 해서 뭐 하겠나. 대선에 도전한들 의미가 있겠나. 그래서 다른 길을 고민하기에 앞서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는 정치를 하려 한다.

김신일 최세호 기자 ddhn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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