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지자체가 중앙정부 지청 역할

"국회, 자치분권 방기하면 국민 심판"

염태영(사진)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대표회장은 "국회가 입법활동을 하지 않고 정쟁으로 자치분권 관련법을 비롯한 민생법안을 발목잡는다면 내년 총선에서 국민들에게 철저히 심판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번 정기국회에서 자치분권 관련법안들이 통과되지 못할 경우 내년 초 임시 국회에서라도 통과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염태영 회장은 "복지는 확대됐지만 여전히 사회환경에 대응하지 못하고 중앙집권적 실행체제가 유지된다면 중앙정부가 복지정책을 늘릴수록 지방의 재정은 점점 악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염 대표회장은 해법으로 지역에서 효과를 검증받은 성공사례를 전국으로 확산하는 모델을 제시했다. 염 회장은 또 "기초지자체들이 지속가능한 복지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시작한 '복지대타협특별위원회'가 중앙과 광역, 기초정부간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공공성을 확충하고 맞춤형 복지정책을 펴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지난 7월 '기초지방정부 위기극복을 위한 5대 선언'을 발표했는데, 기초지방정부가 위기라고 진단한 배경은 무엇인가.

사실 '지방정부'라고 일컬어질 수 있는 분권의 내용이 없다. 철저히 중앙정부의 '행정 전달자' 입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광역시의 구청들은 70% 수준의 복지비 지출 예산구조를 갖고 있다. 그래서 자조적으로 '보건복지부 ○○광역시 ○○구 지청'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보건복지부 부산광역시 부산북구지청' 이런 식으로 부르는 게 맞지 않느냐는 것이다.

사회복지비 지출이 높아지고 있는데 전부 다 광역과 기초지자체의 매칭사업으로 이뤄지고 있다. 정책설계는 중앙정부나 광역단체가 하고 예산은 기초지자체가 다 같이 부담하도록 하면서 재정구조가 왜곡되고 점점 더 자율권, 자치를 할 수 있는 예산이 줄고 있다. 복지비 비중이 70%가량 되면 직원들 월급도 못줄 형편인 것이다.

연방제수준의 지방분권을 하겠다면서 중앙-지방 예산구조를 8대 2에서 7대 3으로 조정하기로 하고 지방소비세 10% 인상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그것도 광역단체를 위주로 하고 있다. 기초단체들은 더 어려워지고 있다. 첫 번째가 '재정위기'다.

둘째 중앙정부가 중앙집권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방분권'도 광역 위주로 추진하다보니 현장의 목소리가 전달되지 못한다. 기초정부에 대해서는 여전히 '너희들은 시키는 일이나 하라'는 식이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 경기북부에서 발생해 전국적으로 비상이 걸렸는데 모든 책임은 기초단체에 있다. 살처분 업무를 하는 공무원들은 트라우마가 엄청 심하다. 이에 대한 대책은 없고 시키는 일만 하라고 한다. '메르스' '세월호' 때 겪었지만 기초단체는 현장대응 권한이 없다. 큰 재난재해에 대처할 수 없는 문제 때문에 제도개선을 계속 요구하지만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내년부터 도시공원 일몰제가 시행되는데 대책은.

자치분권은 보충성의 원칙에 따라 기초정부가 할 수 있는 건 다 넘겨야 되는데 일만 넘기고 조직, 재정은 넘기지 않는다. 당장 도시공원 일몰제가 내년에 시행되는데, 시한폭탄과 같다. 원래 공원지정은 국가가 해놓은 것이다. 재정은 없이 관리기능만 다 지자체로 넘겼다. 적어도 도시공원으로 지정된 국유지는 다 지자체에 소유권을 넘겨줘야 한다. 지방재정으로 해결이 불가능한 현실에서 대책을 중앙정부가 근본적으로 만들어야지 언제까지 지자체에만 떠넘길 것인가. 국회에서 전국 4대 협의체와 시민단체 등이 토론회를 열어 제도시행을 3년 만이라도 미뤄달라는 요구를 했다. 지자체들에게는 뜨거운 감자다. 도시공원이 내년에 일제히 풀린다면 어떤 개발계획이 들어와도 사유지는 모두 풀어줄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지자체들이 쓰지 못하고 남긴 잉여금이 너무 많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대한 생각은.

최근에 지자체들이 갖고 있는 예산을 안써서 잉여금이 69조 발생해 경제성장률이 낮아진 원인인 것처럼 매도하기도 했는데 현실을 전혀 모르는 얘기다. 책임 전가다. 지금 하반기에도 추경이나 교부세가 내려온다. 어떻게 예산을 쓰겠나? 조기집행이 불가능한 것들이 많다. 대표적인 문제는 포괄적으로 예산집행할 권한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예산을 정해진 몫으로만 써야 하고 특별회계를 일반회계로 전환할 수도 없다. 예비비를 임의로 쓸 수도 없다. 그러면서 중앙정부는 10월말까지 90% 집행, 광역은 80% 집행했는데 기초는 60%밖에 집행하지 않았다고 한다. 정말 무책임하고 현실을 왜곡하는 얘기다. 중앙정부와 광역단체는 돈을 넘겨주기만 하면 된다. 기초지자체는 실제 집행을 해야 한다. 이런 문제가 있으면 중앙정부는 책임을 기초단체로 전가한다. 포괄적 행정행위(예산집행)가 가능하도록 권한을 줘 본 적이 있나? 특히 지금은 4차산업, 융복합 등 끊임없이 세상이 바뀌는데 과거의 낡은 틀, 행정절차로 꽉 옭매고 있어 현장에서 동맥경화가 심각해지고 있다. 개선방안을 제시해도 중앙정부는 귀를 닫아버리기 일쑤다.

최근 대통령이 수도권 광역단체장들을 참여시켜 미세먼지 대책을 논의했다. 미세먼지대책은 중앙정부나 광역단체도 나서야 하지만 정작 중요한 일은 기초단체에서 다 해야 한다. 이를테면 5등급 경유차량 운행제한을 누가 하겠나. 기초단체가 한다. 그런데 경유차 5등급 운행중지 시키면 어떻게 될까. 대부분 영세자영업자들이다. 수원시만 해도 3만대가 넘는 5등급 경유차량이 있는데 그 중에 2만5000대 가량이 대기오염정화장치가 없다. 이걸 다 부착하려면 1대당 440만원씩, 총 1000억원이 든다. 대책 없이 중지시킬까? 그들에겐 생존권 문제다. 정책의 큰 방향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장의 목소리, 디테일이 정책에 반영이 안된다는 점이 문제다.

■'지방분권 전도사'로서 요즘 강연을 많이 하던데, 주로 어떤 점을 강조하고 있나.

최근 전국을 다니며 강연을 5~6번 했다. 중앙정부의 경우 한 번의 정책실패가 큰 충격을 줄 수 있지만 기초단체에서 '스몰 베팅'을 통해 성공시킨 사례를 확대하면 안전하게 정책을 펼 수 있다. 자치를 통해 일자리 복지 안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사례를 만들고 이렇게 검증된 사례를 중앙정부가 전국으로 확산시켜가는 방향으로 정책을 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문제를 강연에서 '로켓 발사'에 비유한다. 1단계 엔진을 다 썼으면 떼어 버리고 2단계 엔진을 점화해야 한다. 1단계 엔진, 즉 중앙집권적 정책으로 고도성장을 이끌었고 소득 2만달러 시대에 도달했다면 이제 3만 달러, 4만 달러 시대로 가려면 선진국처럼 자치분권을 통해 2단계 엔진을 점화시켜야 하는데 타이밍을 계속 놓치고 있다. 자율적, 자립적 발전을 다 막고 있다. 아직도 중앙이 기획하고 추진하면 다 될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그런 시대는 이미 지났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힘든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겪고 있다. 중앙의 저출산 대책이 성공한 게 뭐가 있나. 지방에선 다양한 모델들이 나온다. 수원시는 무주택 다자녀가구에 집을 얻어주는 사업을 한다. 지금은 6자녀에서 4자녀가구로 확대하고 있고 앞으로 3자녀가구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적어도 아이를 둘, 셋 키우는 집은 집걱정 없이 살 수 있게 해주는 정책이 필요하다.

■얼마 전 수원시와 용인시가 행정경계 조정을 이뤄낸 사례가 주목받았는데.

지자체 간에 형편없이 불합리하게 되어 있는 경계를 조정하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가 하나도 없다. 예전부터 내려온 경계에 대한 관습이 있어 몇몇 이해당사자의 반대에 부딪히면 경계조정은 어렵다. 그런 불합리한 경계지역이 전국에 굉장히 많은데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수원시와 용인시 경계조정은 피해자인 청명센트레빌 주민들의 절절한 요구가 있었고 용인시장이 용단을 내려줘 가능했다.

■'지방소멸 위기'에서 벗어날 대책은.

11월 말 공동회장단 회의에서 한 군수가 소멸위기에 처한 23곳 군수들이 별도회의를 한다면서 특별대책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정말 중요한 얘기다. 중앙정부가 볼 때 226개 기초단체에 모두 동일한 기준을 적용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광역은 수원보다 적은 곳도 있고. 기초는 인구 3만도 안되는 군에서부터 50만 넘는 자치구, 시도 10만~125만명까지 다양하다. 다양한 구조에 적합한 행정권한을 주고 재정지원계획을 달리해야 한다.

어느 지역에서 도로망·철도망을 요구하면 중앙집권적 시각에서 왜곡된 정치권 목소리가 더해져 지역발전을 촉진하는 양 공약화되고 많은 예산이 투입된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지역을 살리기 위해서는 그 지역이 '패싱'되지 않고 특징을 살려 발전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 교통망 좋아지면 패싱되는 군이 상당수 발생한다. 그 지역의 소멸을 막을 자생적 발전의 핵심적 내용이 뭔지 평가하고 대안을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

■복지대타협특위와 지방분권개헌특위를 두고 있는데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복지대타협특위는 중앙정부의 사회보장예산(기초연금, 아동수당 등)에 기초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예산을 덧붙여서 차별을 만들어선 안된다는 생각에 이를 자율조정해보자는 취지로 시작했다. 하지만 특위에서 들여다보니 복지비 매칭사업들이 국가에서 기획한 것도, 광역에서 기획한 것도 기초단체가 부담하는 한 지역에 맞춤형 복지를 할 수 없다는 게 더 중요한 문제임을 인식했다. 따라서 앞으로는 설계·제안자가 복지사업을 다 책임지지 않는 사업은 불가능하게 해야 한다. 그런 원칙이 없으면 일은 중앙이나 광역이 벌여놓고 예산은 기초단체가 허리 휘어가며 감당해야 한다. 현재 기초연금만 해도 24%를 기초단체인 수원시가 부담한다. 내년에는 600억원이 든다. 결정하는데 아무 관여도 하지 않았는데 가만히 앉아서 가용재원이 그만큼 줄어든 것이다. 선거 때마다 복지비 매칭하는 공약은 못하게 해야 한다, 복지는 확대해야 하지만 책임지는 복지를 해야 한다.

지방분권개헌특위도 다시 구성해 활성화할 계획이다. 총선 때 지방분권과 권력구조를 포함한 다양한 논의가 있을 것이다. 민선 7기에 지방분권 개헌의 불씨를 다시 살리기 위해 특위위원 추천을 받아 다시 구성하는 등 재편에 나설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자치분권은 자치단체장들이 자기영역을 확대하기 위한 요구가 아니다. 꽉 막힌 중앙집권적 권력구조를 깨기 위해서는 권한이 분산돼야 한다. 촛불로 권력의 정점은 바꿨지만 시스템은 못 바꿨다. 지금 청와대와 검찰이 충돌하고 있는 것도 견제 받지 않는 권력 탓이다. 국회도 마찬가지다. 철저히 국민들의 눈 밖에 난 의원은 언제든 끌어내릴 수 있어야 한다. 권력의 분산을 통해 균형을 잡는 것이 '자치분권'이다. 검찰도 그래서 공수처가 필요한 것이고, 재벌에 대해서도 노동자의 힘으로 균형을 맞추는 게 우리사회의 과제이듯 자치분권은 우리사회의 필수과제다.

곽태영 기자 tykwak@naeil.com

곽태영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