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구 대한상공회의소 산업정책팀장

“소부장님! 경자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지난해 여름 큰 사고 당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다친 곳 없다하니 다행입니다. 평소 건장해 보이셨는데 많이 놀라셨을 겁니다. 그동안 바쁘시다는 핑계로 체력 기르실 여유 없으셨는데 새해에는 더욱 강건했으면 합니다.”

지인에 대한 새해 인사가 아니다. 우리나라 소재부품장비 이른바 ‘소부장’ 산업의 현실에 대한 얘기다. 지난해 7월 일본 정부가 수출규제 조치를 취했다. 우리나라 반도체, 디스플레이 제조공정에 쓰는 포토레지스트 불화수소 폴리이미드 등 3개 품목에 대해서 수출포괄허가에서 개별허가로 바꿨다. 이어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했다. 일본의 기습공격에 한때 우왕좌왕했으나 이후 우리 대응은 질서 있고 전광석화와 같았다. 수출규제 조치 한달 만에 정부 대책이 마련됐고, 국가 R&D전략 틀도 바꿨다. 민관합동 대응팀도 구축했다. 위기 앞에서 나라 전체가 힘을 모으면서 지난해는 비교적 잘 넘긴 것 같다.

그러나 위기가 완전히 해소됐다고 보기 어렵다. 여전히 진행형이다. 시간이 많지 않지만 우리 소부장 산업 체력을 길러야 한다. 방법은 3가지다. 일본제품을 대체할 자체기술을 개발하거나, 해외에서 기술을 사오거나, 일본 외 다른 나라로 공급선을 바꾸는 것이다.

한국 산학연 협력수준, 10년전보다 퇴보

첫번째 방법은 시간과 돈이 많이 들고 성공도 보장하기 어렵다. 두번째는 시간을 절약하고 비교적 확실하지만 M&A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고 괜찮은 곳은 다른 나라 기업들이 웃돈을 쳐서라도 사겠다고 하면 난망하다. 세번째는 안타깝게도 일본 외 공급처를 찾기가 쉽지 않은 품목들이 많다.

지난 20년간 정부가 소부장 산업 육성을 위해 힘썼으나 핵심 분야는 일본 의존도가 높다. 소부장 산업은 시간, 규모, 협력이라는 3대 장벽을 넘어야 한다. 시간의 벽은 핵심소재의 경우 원천기술 개발에서 상용화까지 20년 이상 소요된다고 한다. 일반적으로도 4~5년은 걸린다.

규모의 벽은 좀 아쉬운 부분이 많다. 우리나라 산업생태계 상 허리에 해당하는 중견기업이 약하고, 중소기업도 소기업 비중이 다른 나라에 비해 높다. 1등 반도체산업 위상에 맞는 1등 소재부품사가 짝을 맞춰야 초격차를 유지할 수 있다.

그동안 위 3개 품목을 한국에 공급해온 일본기업들은 중소기업이 아니다. 매출이 10조원이 넘고 연간 R&D 금액도 1조원이 넘어 세계 2500대 R&D기업에 포함된 대기업들이다. 소재부품의 안정적 공급과 대규모 R&D를 견딜만한 체력을 갖췄다는 얘기인데 우리 입장에서는 부러울 따름이다. 협력의 벽도 높다. 우리나라 산학연 협력수준은 세계 140개국 중 31위다. 10년 전 24위에서 퇴보했다.

소부장 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정부 정책이 기존 트랙을 따라서는 곤란하다. 지난 20년간 정부가 팔을 걷어붙였지만 일본만 좋은 일 시켜준다는 이른바 ‘가마우지 경제’라는 비아냥도 들어야 했다. 이제 R&D, M&A, 상생협력 대책은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과감했으면 한다.

기존방식으로는 따라잡기 어려워

대한상의가 지난해 말 소부장 산업 육성을 위해 4대 부문 14개 건의과제를 정부에 제안했다. 새로운 내용도 있지만 정부가 이래서 안된다, 저래서 어렵다고 해서 덮어 두었던 과제도 많다. 이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경제 전환기인 만큼 기존의 방식으로는 따라잡기 어렵다. 우리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반도체 자동차 조선 등 주력 산업도 상식을 쫓았다면 이 자리에 오르지 못했다. 이번 사태로 자존심이 상했지만 희망을 본다. 오랜만에 국민의 힘을 모으는 기회가 됐다. 이제 한번 해보자.

소부장님!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