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정인 대한상의 지속성장 이니셔티브(SGI) 연구위원

중국은 옛 명의 ‘화타’를 AI(인공지능)기술로 되살리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의료 데이터와 AI기술을 토대로, 진단에서 맞춤형 건강관리 서비스까지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올해 완료될 이 프로젝트는 의료시장의 수급불균형 해소와 동시에 신산업 이니셔티브를 확보하려는 중국의 의지로 해석된다. 반면 우리나라는 20년 가까이 원격진료에 대한 사회적·법적 합의에도 이르지 못했다.

기존 규제개혁 접근법으론 신산업 어려워

이미 주요 경쟁국은 아이디어와 기술력을 무기로 신사업 개척에 사활을 거는데, 우리 기업들은 각종 규제에 발목이 잡힌 형국이다. 지난해 12월 기준 기업가치 1조원 이상 성과를 낸 스타트업 기업 (유니콘 기업) 수를 비교해 보면, 미국은 201개, 중국은 101개인데 반해 한국은 11개에 불과하다. 통계적으로 보아도 한국의 혁신시스템이 신산업에 친화적이라 보기 어렵다.

여러 산업을 융·복합하는 신산업은 여러 부처의 규제가 얽혀 있어 기존의 규제개혁 접근방법으로는 쉽게 실마리가 풀리지 않는다. 지난달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는 신산업 분야의 복잡한 규제체계를 한눈에 파악하고, 보다 효과적인 규제개혁을 위한 ‘규제트리’를 작성하여 발표했다. 바이오·헬스, 드론 등 4대 신산업을 둘러싼 규제법령을 이해하기 쉽게 도식화한 것이 특징이다.

규제트리 분석에 따르면, ‘데이터 3법’이 4대 신산업의 모든 분야에 걸쳐 데이터 수집과 활용을 가로막는 이른바 ‘핵심규제’로 드러났다. 또한 여러 부처의 규제를 한꺼번에 적용받는 ‘복합규제’도 문제였다. 예컨대 건강관리앱을 통한 원격의료서비스 도입은 개인정보보호법, 의료법 등에 제한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지난 1년여 우여곡절 끝에 ‘데이터 3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것은 ‘핵심규제’ 해소와 신산업 발전의 시작을 알리는 반가운 신호탄으로 보인다. 그간 데이터 수집과 활용에 골머리를 앓던 국내 기업들뿐만 아니라 과학기술계도 빅데이터, AI 관련 신산업 발전 및 연구개발 활성화를 기대하며 오랜만에 고무된 분위기이다.

부처간 협력 인센티브도 정비 필요

개인정보와 가명정보의 개념 명확화 등 데이터 개방과 수집에 대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으니, 이제 후속작업을 위해 달릴 일만 남았다. 과학적 연구, 공익적 기록보존 목적뿐만 아니라 ‘상업목적’에 대한 판단기준을 구체화하는 등 ‘데이터 이용 활성화와 신산업 육성’이라는 법 개정 취지를 충실히 반영하려는 뒷심이 필요하다.

어렵게 회생된 신산업 성장모멘텀이 사업화 단계에서 좌절하는 일이 없도록 ‘복합규제’ 개혁도 동반해야 한다. 개별 부처 중심의 규제개혁 프로세스 대신 일관된 업무평가 기준을 마련하고 부처간 협력 인센티브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또한 컨트롤타워로서 국무조정실의 부처 간 상시협력채널기능을 강화하여 다부처 규제를 중점 관리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할 때이다.

2020년은 경자년으로 ‘흰 쥐의 해’다. 흰색은 시작을, 쥐는 기회와 번영을 상징한다. 올해는 보다 적극적이고 통합적인 규제개혁을 통해, 현재의 어려움을 도약의 기회로 바꾸는 ‘신산업 발전의 원년’이 되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