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피겔 "차세대 원자로에 관심 집중"

원자로 가운데엔 핵폐기물이 가득하다. 핵폐기물을 처리하면서 전기를 생산한다. 원자로는 연료 교체 없이 60년 동안 운영할 수 있다. 미국 원전에서 나온 사용후 연료봉만으로 전 세계가 수백년 동안 쓸 수 있는 에너지를 충당할 수 있다.

미국 원자력 스타트업 테라파워가 개발중인 '이동파 원자로'라 불리는 고속 중성자로 이야기다. 과연 인류가 직면한 에너지 해법이 될 수 있을까. 이 회사 엔지니어 린지 볼스는 독일 주간지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그렇다"고 자신했다. 그는 "전 세계 그 어느 발전소보다 안전하고 믿음직하게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테라파워는 원자력 부문에 새로운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스타트업 중 한 곳이다. 이 회사의 본부는 미 워싱턴주 시애틀시 외곡 벨뷰에 있다. 빌 게이츠는 테라파워의 창립자이자 회장이다. 13년 전 이 회사가 창립할 당시 게이츠는 5억달러를 투자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최고기술책임자로 일했던 네이선 마이어볼드가 이사다. 마이어볼드가 세운 싱크탱크 '인텔렉추얼 벤처스'는 원자력 연구소와 같은 건물에 위치하고 있다.

빌 게이츠는 1년 전 공개편지에서 "원자력은 기후변화를 다루는 데 이상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런 주장은 광범위한 지지를 얻고 있다. 슈피겔은 "체르노빌 원전사고 이후 33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8년이 지난 현재 원자력이 다시 한 번 공감대를 얻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12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UN 기후변화회의가 열렸다. 각국 대표들은 계속 증가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 가뭄의 위험, 녹고 있는 빙하, 상승하는 해수면 등을 놓고 머리를 맞댔다. 결론은 매한가지다. 인류가 이산화탄소 배출을 급격히 줄여야 한다는 것.

인류는 기후변화의 위기를 점차 실감하고 있다. 슈피겔은 "핵에너지는 이산화탄소 배출 급감을 위한 방법이 될 수 있다. 핵분열은 이산화탄소를 전혀 배출하지 않기 때문이다. 원자로는 대개 탄소와 무관하다"고 지적했다.

다시 주목 받는 원자력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도 원자력에 대한 터부를 깬 바 있다. 그는 지난해 3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에 따르면 원자력은 탄소 없는 에너지 해법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글을 올렸다. 지지자들로부터 항의가 빗발치자 그는 "개인적으로는 원자력에 반대한다"며 물러섰다.

툰베리의 게시글과 입장 변화는 원자력이 직면한 딜레마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IPCC와 국제에너지기구, UN 지속가능한 해법 네트워크, MIT 교수들, 심지어 원전에 비판적이었던 미국의 '참여과학자 모임'도 "지구온난화를 섭씨 1.5도 이하로 제한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제는 원자력을 고려해야 할 때"라는 입장을 갖고 있다.

하지만 기술에 대한 대중의 불신은 여전하다. 적어도 독일에선 그렇다. 독일 정부는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목격한 이후 원자력을 단계적으로 폐쇄하기로 했다. 원전 비판가들은 "핵원자로는 지나치게 비싸고 복잡하며 현대 전력망과 관련해 융통성이 없다. 무엇보다 너무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반면 게이츠나 마이어볼드와 같은 옹호론자들은 반대 상황을 증명하고 싶어한다. 그러면서 거의 무한한 에너지 원천이라고 주장한다.

중국과 미국의 공학자들이 앞서가고 있다. 전통적 원전 기술을 혁신하는 과제에 착수했다. 최소 40곳의 기업과 연구소가 소형 모듈라원자로나 이상적인 핵발전소를 놓고 연구하고 있다. 이들은 기존 원전과는 거리가 먼 특성들을 끄집어 낸다. 즉 '깨끗하고' '경제적'이며 '안전한' 원전이다.

차세대 원자로는 토륨이나 우라늄염 등의 핵분열성 물질을 사용하고 용융염 또는 액화소듐으로 냉각하는 개념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폐기물을 발생시키지 않는다. 전통 원전에서 나온 사용후 핵연료봉을 활용해 운영할 수 있다"고도 주장한다.

보다 주목할 점은 전기를 생산하는 목적으로 국한하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이다. 미래 원자로에서 나오는 열은 차세대 자동차와 기차에 쓰일 수소를 생산할 수도 있고, 난방시스템용 열을 공급할 수도 있고, 에너지집중 산업인 화학과 석유부문 발전에도 쓰일 수 있다고 한다. 게다가 기후변화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환경친화적이다.

현재 온난화가스 배출원을 보면 교통과 건물, 산업 부문이 약 40%를 차지한다. 국제사회가 설정한 장기 목표는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을 90% 감축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전력부문뿐 아니라 전체 에너지부문에서 광범위한 탄소 줄이기가 진행돼야 한다.

신재생 에너지 도입과 관심이 크게 늘었다고는 하지만 풍력과 태양 에너지 공급 비중은 전체 글로벌 에너지의 2% 미만이다.

이런 현실을 고려하면 원자력을 경우의 수에 포함하는 게 현명할지 모른다.특히 2022년까지 원전을 완전 폐쇄키로 한 독일에겐 긴급한 질문이다. 독일은 올해말로 설정된 기후변화 목표치를 달성하는 데 이미 실패했다.

프랑스, 스웨덴과 비교하면 독일이 원전 폐쇄로 인해 짊어질 부담의 크기를 알 수 있다. 프랑스와 스웨덴은 원전을 지속 사용할 계획이다. 이들 나라 국민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독일 국민의 절반 수준이다.

미 하버드대 심리학 교수 스티븐 핑커, 스웨덴 에너지공학자 스테판 퀴비스트, 미국 정치학자 조슈아 골드스타인은 지난해 4월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원전을 버리고 모든 에너지를 신재생으로 바꾸겠다는 결정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탄소배출 저감에 별 다른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며 "신재생에너지만으로 전 세계를 탄소에서 구출하려면 1세기 이상 시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심리와 정치는 쉽게 변할 수 있다"며 "기후변화 위기의 막중함이 현실적으로 인식되는 상황에서 신재생에너지를 통해 탄소를 줄이겠다는 희망이 어긋날 때, 원자력이 새로운 녹색 희망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희망과 재앙 사이

1950년대 핵분열이 인류의 에너지 걱정을 해소해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월트 디즈니사는 1957년 '우리의 친구 아톰'에서 핵에너지가 선포한 대의명분을 적극 옹호했다. 하지만 그같은 희망은 오래가지 않았다. 1979년 미국 스리마일 섬, 1986년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2011년 일본 후쿠시마에서 재앙이 터졌다.

핵에너지 사용의 역사는 각종 사고와 재앙으로 점철됐다. 핵폐기물 최종 저장이라는 미해결 문제, 핵 확산의 위험, 원자력 물질의 군사 용도 전환 등은 핵에너지에 대한 회의론을 부추겼다.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문제점은 가격표다. 전통 원전은 비싸도 너무 비쌌다. 원자력은 정부 보조금 없이는 수익이 날 수 없다.

독일의 경우 핵에너지 1킬로와트시 생산 비용은 10센트 정도다. 반면 내륙 풍력터빈과 가스 또는 석탄 발전 비용은 4센트에서 8센트 정도다. 핵발전소 건설은 위험한 투자의 대명사다. 현재 전 세계에서 운영중인 원전은 약 449곳이다. 53곳은 건설중이다. 2018년 기준 원전의 평균 건설기간은 8년 반이나 된다.

영국 '힝클리 포인트 C'의 원자로 2기는 잘못된 원전 정책의 표본이다. 이 원자로는 역대 최고가 건설비용 기록을 세울 전망이다. 대략 260억유로(약 33조4400억원)가 투입됐다. 완공도 당초 계획보다 8년이나 늦어졌다. 영국과 프랑스 중국 등 3개국 정부와 에너지 기업 2곳이 참여했다. 정부의 '발전차액지원제도'(feed-in tariffs)가 없다면 수익은 절대 나지 않는다. 이는 생산한 전기의 거래가격이 정부가 고시한 가격보다 낮은 경우 그 차액을 정부가 지원해주는 제도다.

독일 '응용생태학연구소' 크리스토프 피스트너는 "원전 건설은 수지타산 측면에서 말이 안된다"며 "일부 원전은 계획된 운영 주기 이전에 퇴역시키고 있다. 저렴한 풍력이나 태양열 등과 경쟁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 보조금이 없다면, 원전 기술로 수익을 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새롭게 원전을 짓는 곳은 국가가 비용을 대거나 최소한 상당한 보조금을 주는 곳"이라며 "러시아와 중국 인도 등이 그렇다"고 덧붙였다.

"미·중 스타트업들은 왜 원자력에 집착하는가" 로 이어집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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