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 일변도로 고립 자초

'실력있는 정당' 이미지 상실

자유한국당의 '패스트트랙 정국' 성적은 낙제점이라는 데 당 안팎의 평가가 거의 일치한다. 지도부 책임을 묻는 쪽과 불가피론을 펴며 방어하는 쪽으로 의견이 나뉘는 정도다.

선거제·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법안은 황교안 대표가 지난해 내내 "목숨 걸고 막겠다"고 했지만 보란 듯이 통과됐다. 검경수사권 조정 법안과 유치원3법 처리 과정에서도 한국당은 소외됐다. 범여권이 4+1 체제로 원내 과반을 차지했다는 게 직접적인 이유다.

그러나 고립을 자초한 것은 한국당 자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스스로 퇴로를 막고 투쟁에만 몰두했기 때문이다.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잇따라 패배한 한국당은 2018년까지만 해도 협상테이블에서 실력발휘를 했다.

정부 추가경정 예산안을 '드루킹 특검'과 교환, 문재인 대통령의 후계자로 떠오르던 김경수 경남지사를 가라앉히는가 하면 연말 예산안에서는 소수야당들로부터 '더불어한국당'이라는 비난을 받아가며 실리를 챙기기도 했다.

선거제 개편과 관련해서도 "국민 대표성과 비례성을 확대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며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 '거대양당 대 소수당' 구도를 이어갔다.

그러나 황교안 대표 체제가 들어선 지난해부터 기류가 급격히 바뀌었다.

한국당은 지난해 3월 의원정수 270명에 비례대표를 폐지하는 선거제 안을 당론으로 채택하면서 나머지 5당과의 타협 여지를 차단했다. 이는 '4+1' 체제 복원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됐다.

지도부는 당원들이 대거 동원되는 장외투쟁을 상시적으로 벌였다. 국회 선진화법 위반을 무릅쓰고 패스트트랙 지정을 물리적으로 막아섰다.

황 대표는 직접 나서서 삭발, 혹한 단식농성에 들어가며 당 구성원들과 지지층을 독려했다. 지난해 말에는 태극기부대가 뒤섞인 지지층이 국회 본관 앞을 점거, 진입을 시도하다 물리적인 충돌사태까지 빚기도 했다.

투쟁일변도가 한국당의 외연 확대에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게 중론이다. 극렬지지층만 뭉칠 뿐 중도층은 오히려 외면하는 추세라는 것.

당내에서는 공수처안 타협을 통해 '패스트트랙 충돌사건'을 중재하자는 주장, 민주당과 공수처안 절충점을 찾고 기존 선거제를 유지하는 방안 등이 제시되기도 했지만 강경기류에 곧 묻혔다.

한 중진 의원은 "협상을 통해 얻을 것은 얻어야 했는데 지도부가 대여관계를 선악대결 구도로 몰고 가는 바람에 명분·실리 아무것도 챙기지 못했다"며 "4+1 체제에 대해서도 안일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선거제 개편안이 누더기가 되는 데 한국당의 압력이 작용했다는 점, 결국 보수통합의 물꼬를 텄다는 점이 성과라면 성과"라면서도 "가치판단을 떠나 실력있는 정치정당 이미지가 한국당에서 민주당으로 넘어가 버렸다는 사실은 한동안 바꾸기 어려울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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