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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

[내일의 눈]

'총독형 외교관'과 흔들리는 동맹

외통팀

정재철 기자

등록 : 2020-01-17 10:59:35

이젠 놀랍지도 않다.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의 언행에 관한 이야기다. 역대 주한미국대사 가운데 이처럼 논란을 자초한 인물은 찾기 힘들다. 외신보도에 따르면 해리스 대사는 16일 외신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현 정부가 추진하려는 개별관관 등 남북협력구상에 대해 제동을 걸었다.

"향후 제재를 촉발할 수 있는 오해를 피하려면 한미 워킹그룹을 통해서 다루는 것이 낫다"고 본인이 가르마를 탔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의 지속적인 낙관론은 고무적이며 그의 낙관주의는 희망을 만들어내고 이는 긍정적인 일"이라면서도 "그 낙관론에 따라 움직이는 것에 있어서는 미국과 협의를 통해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주권연대, 청년당 관계자들이 지난달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KT 광화문지사 앞에서 열린 '해리스 대사 참수 경연대회'에서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규탄하며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의 수염을 때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임화영 기자


앞서 해리스 대사는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밝힌 구상에 대해서도 '미국과의 사전협의'를 촉구한 바 있다. 보다 못한 통일부가 나서서 해리스 대사의 발언을 반박할 정도였다. 청와대 역시 "일일이 대응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면서도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한미 현안에 대해서도 해리스 대사는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다. 상식을 벗어난 증액으로 미국 내에서조차 반론이 일고 있는 방위비 분담금 증액, 한국군의 호르무즈 파병을 공개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더욱이 방위비 문제에 대해서는 한국 국회의원들을 관저로 따로 불러 압박해 "무례하다"는 느낌을 줄 정도였다. 이것만이 아니다. 부임 후 1년6개월여 동안 '종북좌파' 발언,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 관련 발언 등 그의 언사로 인해 논란이 증폭된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를 두고 외교관이 아니라 식민지 총독 행세를 한다는 비난 여론이 커지는 이?눼? 오죽하면 지난해 연말 영국 텔레그래프에서도 조선을 지배했던 일본 총독 8명 모두 콧수염을 길렀던 사실을 언급하며 해리스 대사의 콧수염이 이를 상기시키고 있다고 기사화하기도 했다. 일부 진보단체에서는 사진에서 콧수염을 뜯어내는 퍼포먼스를 하며 "식민지 총독 행세를 하는 해리스를 추방하라"고 주장했다.

새해 첫날 해리스 대사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신년구상을 밝혔다. 일종의 버킷리스트로 올 해 하고 싶은 10가지 목록을 영문과 한글 버전으로 동시에 공개했다. 여기에는 △아직 가보지 못한 충청북도 방문 △잡채 만드는 법 배우기 △아직 못해본 플라이 낚시하기 △맛있는 한국 야구장 간식 맛보기 △광장시장에서 길거리 음식들 맛보기 등이 우선순위에 놓였다. 식민지 문화를 구석구석 즐기는 총독의 여유로움을 보는 듯하다. 그 리스트 마지막에 겨우 '굳건한 한미동맹 이어가기'가 올라 있다.

방위비협상, 파병논란, 한일지소미아 종료 등을 거치면서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는 70년 한미동맹의 이면에는 해리스 대사의 언행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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