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0여개 공공기관 도입 전망

노사간 소통·합의가 전제조건


#. A사는 노동자 140여명이 근무하는 서울 소재 IT 부품제조 중소기업이다. 이 회사 임금구조는 기본급과 5개 수당으로 구성된 연공서열형이었다. 그런 A사가 최근 노사발전재단 컨설팅을 받아 직무가치에 따라 기본급과 직무수당, 성과급 등으로 단순화한 직무급제를 도입했다.

회사는 직원들의 직무를 64개로 분류하고 업무 중요성과 난이도 등을 기준으로 직무등급을 매겼다. 등급에 따라 직원들은 최저 5만원에서 최고 60만원까지 차등적인 직무수당을 받는다. A사는 제도 도입과정에서 기존 임금수준을 유지해 직원들의 반발을 완화했다.

회사 관계자는 “과거에는 숙련기술(기능)에 의존해 시장경쟁력을 유지해 왔다”면서 “최근 숙련된 기존 노동자들이 고령화돼 생산성 대비 비용이 상승한 반면, 근속에 따른 보상체계로 인해 젊은 우수인력 확보가 어렵다”고 직무급 도입 배경을 설명했다.

‘직무의 특성에 따라 공정하게 급여를 받는다’는 개념의 직무급제가 확산되고 있다. 직무급제는 근속연수에 따라 자동으로 임금이 올라가는 연공급적 성격의 호봉제와 달리 직무특성을 고려해 임금을 책정하는 제도다.

자신이 일한 만큼의 합리적인 보상과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의 가치를 중시하는 젊은 세대의 직장 내 비율이 증가하면서 그동안 ‘철옹성’처럼 여겨지던 호봉제가 깨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코트라(KOTRA)가 58년 만에 호봉제를 완화하기로 했다. 대신 올 상반기 중 전 직원에 대해 직무급제를 도입한다. 제도가 반영되면 새로운 해외시장 개척이나 중소기업의 지원 요청이 많은 해외무역관 근무자는 같은 직급 이라도 더 많은 급여를 받는다.

반면 이른바 ‘꽃보직’이라 불렸던 자리는 임금이 줄어들 수 있다. 코트라 관계자는 “하는 일에 따라 평가를 받으니 자신의 직무에만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코트라는 1000명 이상 공공기관 중 직무급제를 도입한 첫 사례다. 지난해 석유관리원(7월) 새만금개발공사(8월) 산림복지진흥원(12월) 재정정보원(12월) 등 소규모 공공기관들이 앞서 직무급제를 도입했다. 올해 10여개 공공기관들이 추가로 직무급제를 도입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40여개 기관은 직무급제 도입을 위한 첫 단계인 직무평가 작업을 했거나 진행 중으로 알려졌다. 정부도 직무급제 도입을 위한 연구용역을 진행했다.

고용노동부는 13일 ‘직무·능력중심 임금체계 개편 확산 지원’ 발표에 대해 박근혜정부 때 일방적으로 추진했던 공공기관 ‘성과연봉제’와 다르다고 설명했다.

성과연봉제는 매해 직원을 상대로 성과평가를 해 연봉을 차등지급한다. 물론 공정한 평가가 이뤄진다면 업무성과에 대한 동기부여 효과가 클 수 있다. 하지만 공정성과 대상자의 수용성이 전제되지 않으면 역효과를 낼 수 있다. 특히 경영진 의도에 맞춰 평가를 설계해 ‘사내 줄 세우기’ 등 전횡 우려가 크다. 이는 노동계가 일방적인 성과연봉제 도입에 반대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반면 직무급제는 객관적인 직무에 따라 임금을 차등지급하기 때문에 체계적인 직무관리나 조직운영이 가능하다는 것이 고용부의 설명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도 부합한다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공공기관들이 잇달아 직무급제를 도입하고 있지만 민간기업에서는 일찍이 직무급제를 도입했다.

삼양사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도 1980년대까지 연공서열에 따라 매년 임금이 올라가는 인사시스템을 운영했다. 삼양사는 1998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연공급 호봉제를 성과연봉제로 변화를 주기 시작해 2002년 직무 중심의 인사관리를 기본으로 하는 직무급체계로 전환했다. 직무평가를 통해 경영자·팀장·팀원은 직무를 중심으로, 연구직·생산직은 역량을 중심으로 개편했다.

보상체계 역시 기존 연봉과 각종 수당이 혼재돼 있던 것을 기본연봉으로 통합하고 성과목표 달성 정도에 따른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평가는 업적평가와 역량평가로 이뤄지고 경영자·팀장·팀원의 임금인상률과 인센티브 지급의 기준이 된다.

삼양사의 직무중심 인사관리체계는 직원들의 성과에 대한 동기부여를 높이고 성과 등 합리적 사유에 따른 임금인상, 직무승진 등을 통해 인력운영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다.

"연공서열식 낡은 임금체계 바꿔야" 로 이어짐

한남진 장세풍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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