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시아 세인트 클레어 지음 / 안진이 옮김 / 월북 / 1만7800원원
바이킹족이 해협을 건너 대륙을 정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양모로 만든 돛’이었다. 물에 잘 젖지 않는 양모를 사용해 더 멀리 나아갈 수 있었다.

중세 잉글랜드 왕국이 유럽 대륙의 중심이 될 수 있었던 큰 이유는 양모 때문이라고 해도 놀랍지 않다. 중세 잉글랜드 재정의 엔진과 다름없었던 양모를 통해 잉글랜드의 경제가 움직였다. 양모를 사고팔면서 축적된 부가 없었다면 리처드 왕이 십자군 전쟁에서 중심 역할을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우리는 산업혁명이 철이나 석탄과 관련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직물이 변화의 중요한 동력을 제공했다. 이처럼 실과 직물은 기술 진보를 이루는 하나의 도구로서, 혹은 산업의 중심으로서, 세계를 움직여왔다. 실이 총보다 강했던 이유다.

이 책은 인류의 시작부터 함께한 실에 대한 13가지 이야기로 구성돼 있다. 저자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 숨겨진 역사와 조명되지 않았던 인간의 모습을 찾아낸다.

인류 최초의 실을 찾아낸 줏주아나 동굴의 발견을 시작으로 실을 사용하는 최초의 인류를 탐색하기도 하고, 고대 중국 여류 시인의 한시 속에서 고대 중국의 비단 생산의 비밀을 찾아보기도 한다.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레이스 뜨는 여인'에 등장하는 놀라운 레이스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추적한다. 남극대륙과 에베레스트를 정복하기 위해 도전하는 인간들과 그들이 선택한 특별한 직물들, 우주에 한발 내딛기 위해 우주비행사만큼 고군분투한 우주복 제작자들, 인간 속도의 한계를 넘기 위한 전신 수영복 논란까지.

13가지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몰랐던 인류의 과거, 현재, 미래와 만난다. 그 시간들은 이제껏 우리가 알았던 모습과는 다르다. 동굴 속에서, 안방에서, 공방에서, 공장에서 여성들의 손으로 만들어진 그 모든 직물은, 우리가 매일 옷을 입듯 당연하지만 소홀했던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다.

고성수 기자 ssg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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