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탄핵수렁에서 탈출한 후 11월 3일 치러지는 미국대선에서 재선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화 협상에서 자신의 재선에 도움이 될 만한 합의를 이끌어내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선거 때까지 수개월간 조용한 휴지기를 갖자는 신호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향해 잇따라 보내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미국과의 협상을 완전 포기할 수 없는 처지에서 트럼프 대통령 재선 여부를 지켜봐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1년간의 휴지기에 동의하고 조용한 1년을 보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미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뉴햄프셔 유세에서 연설하는 트럼프│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2차 경선을 하루 앞둔 10일(현지시간) 뉴햄프셔 주 맨체스터에서 열린 유세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맨체스터 AP=연합뉴스


그러나 김정은 정권은 겉으로는 수개월간 미국의 금지선인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와 같은 고강도 도발행동은 피하면서도 속으로는 핵미사일 능력을 대폭 향상시켜 보다 더 유리한 입지를 구축하는 시기로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행정부로서는 조용한 1년 휴지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금지선만 넘지 않는다면 제재회피 행동을 하더라도 초강경 대응만큼은 자재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의 전문가들은 앞으로 1년간 조용한 휴지기를 가진 후 2021년 봄에나 비핵화 협상이 재개되고 3차 북미정상회담도 개최돼 실질적인 협상이 모색될 것으로 전망했다.

◆트럼프 대선에 전념, 조용한 1년 희망 = 트럼프 대통령은 모든 시계의 초점을 11월 3일 대통령 선거에 맞춰 놓고 있다. 재선에 성공하는 것보다 우선순위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11월 대선 때까지 앞으로 1년간 조용한 휴지기를 갖자"는 신호를 잇따라 보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고위 참모들에게 "대선 이전에는 김정은 위원장과 또 다른 정상회담을 원하지는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는 CNN 등 보도가 나온 후에도 미 관리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그런 메시지와 신호를 잇따라 보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세 번째 새해 국정연설에서 북한에 대한 언급을 일절 하지 않은데 이어 대북협상팀을 대부분 인사 이동시킨데 대해 대다수 워싱턴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11월 대선 때까지는 조용하게 현상유지하고 자신이 재선되면 2021년 봄에나 실질적인 비핵화 협상을 재개하자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해석했다. 에이브라험 덴마크 윌슨센터 아시아국장은 VOA(미국의 소리)와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새해 국정연설에서 처음으로 북한을 언급하지 않고 국무부 대북협상팀을 대거 인사 이동시킨 것은 북한 핵문제의 외교적 해결이 올해 진전될 것이라는 기대를 낮춘 것이라고 분석했다.

제임스 쇼프 카네기재단 선임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은 잘 되지 않을 일을 구태여 끄집어 내지 않으려 한 것 같다"며 대선에 집중해야 하는 올해 비핵화 협상이 큰 진전을 보기 어렵다고 보고 후순위로 미룬 것으로 풀이했다.

이에 따라 미국과 북한은 적어도 11월 미국대선 때까지, 실질적으로는 2021년 봄까지 앞으로 1년간은 교착상태일지라도 현재와 같이 조용한 휴지기를 가지려 시도할 것으로 워싱턴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스콧 스나이더 미 외교협회 선임연구원은 "재선에 집중해야 하는 트럼프 대통령이나 미국선거 결과를 지켜볼 필요가 있는 김정은 위원장은 조용한 1년을 선호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김정은, 금수산태양궁전 참배│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부친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광명성절·2월 16일)을 맞아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다고 북한 매체들이 16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미국 고위관리 상황관리 나서 = 미국의 고위 외교안보 관리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11월 재선에 전념하는 사이에 한반도에서 조용한 1년을 보내기 위해서는 북한이 돌발행동을 하지 않고 일부 도전행동을 하더라도 금지선을 넘지 않도록 상황을 관리하는 조용한 1년 전략을 펴고 있다. 이를 위한 듯 트럼프 행정부 고위 관리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때문에 북한과 협상을 중단하려는 게 아니며 북미 정상회담을 비롯한 비핵화 협상을 가질 준비태세는 갖추고 있음을 강조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인들에게 대단히 좋은 협상이 이뤄질 것으로 확신할 때에만 3차 북미정상회담에 나설수 있다는 새로운 조건을 슬쩍 내걸었다.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11일 애틀랜틱 카운슬 초청 강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또 다른 정상회담을 가질 수 있으나 미국민들에게 매우 좋은 합의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이 들 때에 나서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미국이 3차 북미정상회담이나 비핵화 협상의 문을 완전히 닫아 놓고 있는 게 아니지만 제재완화 등 어떠한 양보도 할 수 없고 북한의 획기적인 비핵화조치가 아니라면 또 다른 정상회담은 물론 비핵화 실무협상까지 장기간 교착될 수밖에 없다는 신호라고 워싱턴 전문가들은 해석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1년간의 조용한 휴지기를 위해 미국에 좋은 협상이어야만 실무협상을 재개하고 결국 3차 북미정상회담도 개최할 수 있다는 명분과 전략을 선보이고 있다.

◆김정은의 '충격적 실제 행동'에 관심 고조 = 트럼프 대통령의 새 대북정책과 전략에 과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심전심으로 동의하고 도전과 도발 행동을 1년간이나 참을지가 관건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다급해진 국내 경제, 정치 상황만 고려하면 1년간 참기는 어렵고 그가 지난 연말에 공언했던 '충격적인 행동', '새로운 전략무기 공개' 등을 실행하고 나서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킬 우려는 남아 있다.

하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미국대선 결과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되는지를 보고 실질적인 협상을 벌일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 조용한 1년을 선호하고 있을 것으로 미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스콧 스나이더 미 외교협회 선임연구원은 "김정은 위원장도 트럼프 대통령이 새해 국정연설에서 북한을 언급하지 않은데 대해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스나이더 연구원은 "김정은 위원장 도 트럼프 대통령이 11월 대선에서 재선되어야 실질적인 협상을 재개할 수 있다고 보고 2021년 봄까지 조용히 기다리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스나이더 연구원은 "김정은 위원장은 이미 지난 연말 미국으로부터 제재완화를 이끌어낼 기대를 낮추고 이를 장기간 견뎌내야 한다는 입장을 선택한 것을 시사했다"고 분석했다.

에이브라험 덴마크 윌슨센터 아시아국장은 "김정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과는 달리 보다 시끄럽고 혼란스런 상황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라며 도발행동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미국의 강경대응을 불러올 고강도 도발행동은 피할 것으로 예상했다.

북한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잠수함 발사 미사일(SLBM)이나 고체연료 이용 중거리 미사일 시험발사 등으로 핵미사일 능력의 향상을 과시하는 도전행동을 취할 것으로 보이나 트럼프 대통령이 설정해 놓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금지선인 핵실험이나 미 본토까지 타격할 ICBM(대륙간 탄도미사일) 발사만큼은 피할 것으로 미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북한 핵미사일 능력 대폭 향상 우려 = 비록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미국대선 결과를 지켜보기 위해 비교적 조용한 1년 휴지기를 갖게 되더라도 은밀하게 진행해 온 핵미사일 능력의 대폭 향상 작업에 매진하게 될 것이고 미국은 이를 막지 못할 것으로 미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오바마 시절 미 국방부 동아시아 담당 부차관보를 지낸 에이브라함 덴마크 윌슨센터 아시아국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바람대로 11월 대선 때까지 한반도에서 잠잠한 상황을 보낼 수 있더라고 북한이 정상회담 도중에서 박차를 가해온 핵미사일 능력 향상은 막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 했다. 스콧 스나이더 미 외교협회 선임연구원은 "북한은 핵미사일 능력 향상만 방해받지 않는다면 앞으로 수개월간 조용히 지낼 수 있다는 입장으로 보인다"며 "따라서 미국은 지금 수개월간 조용히 보낼수는 있어도 시간이 갈수록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이 대폭 향상돼 매우 불리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우려는 대북제재가 완화되지 않아 경제난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김정은 정권은 도발행동이나 제재회피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데, 금지선을 넘는 도발만큼은 자제하더라도 불법 환적과 같은 제재회피 행동은 더욱 노골화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북한과 중국, 러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밀거래, 불법환적이 크게 확대되고 미국의 대북제재, 대북압박은 실효성이 크게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 대북제재, 대규모 군사훈련 강행 어려워 = 미국도 북한이 레드라인만 넘지 않는다면 조용한 1년 휴지기를 갖기 위해선 북한이 비록 제재회피 행동을 노골화하더라도 대북제재 압박을 강화하는 조치를 취하기 어렵고 대규모 한미군사훈련을 재개하는 군사카드를 강행하기도 쉽지 않을 것으로 워싱턴의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북한이 밀무역, 불법 환적과 같은 제재회피 행동을 노골화할 경우 미국이 쓸 수 있는 제재압박 강화조치들로는 주로 중국을 겨냥한 세컨더리 보이콧이라는 제3자 제재를 본격화하는 것이다. 이는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이나 러시아 등 기업과 은행 등에도 미국과의 무역과 금융거래를 못하게 만드는 제재를 가하는 조치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재선을 위해 조용한 1년을 유지시키려면 경제와 금융전쟁의 전선을 북한뿐만 아니라 중국, 러시아 등으로 전면 확대해야 하기 때문에 극히 부담스런 카드로 꼽히고 있다.

스콧 스나이더 미 외교협회 선임연구원은 "세컨더리 보이콧을 단행하려면 미 재무부에서 전담팀을 꾸려 북한과 불법거래하고 있는 파트너들을 포착하고 정보와 증거들을 수집한 후 제3자 제재의 정당성과 그에 따른 보복 등 여파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조용한 1년 전략과는 맞지 않는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에이브라함 덴마크 전 미 국방부 부차관보는 "불법 환적 등을 막기 위해 미국이 해상차단에 나설 경우 외교해결 노력이 날아가고 군사대결로 급속 전환돼 한반도 긴장이 고조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러한 분석과 관측대로라면 올 한해 내내 한반도 안보에선 작은 소용돌이는 있을 수 있어도 외교협상판이 완전깨지고 전쟁위기로 급속히 전환되는 사태는 없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런 다음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되면 다소 빠르게 비핵화 협상이 재개돼 실질적인 주고받기 협상이 펼쳐지고 3차 북미정상회담도 2021년 봄에는 개최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새 대통령이 탄생하면 내년 여름으로 비핵화 협상 재개가 늦춰질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한면택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