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영 골판지조합이사장

‘하석상대’(下石上臺)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아랫돌을 꺼내 윗돌을 괸다’는 뜻이다. 탑을 쌓을 때 돌이 부족하다고 아랫돌을 빼서 위에 올려봐야 결국 무너지고 마는 것처럼 임시방편은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2018년, 전 세계 폐지의 60%를 수입하던 중국정부가 환경보전시책을 강화하면서 저급 폐지수입에 대한 전면적인 금지조치를 내렸다. 중국의 수입금지로 폐지물량 대다수를 수출하던 국내에서는 공급과잉현상이 발생했다. 2018년 기준 kg당 평균 150원이었던 국내 폐지가격은 2020년 65원까지 급락했다.

폐지 활용 공급사슬체계 이해해야

수익성이 악화된 폐지업체들은 수입규제를 포함한 폐지수급 안정대책을 강도 높게 요구해왔다. 정부는 문제해결을 위해 2월부터 수입폐지 신고제를 도입하고, 상황이 개선되지 않을 경우 국내에서 대체 가능한 폐지는 수입제한 등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폐지업계가 요구하는 ‘폐지의 수입제한’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공급과잉 현상은 우리나라만 겪고 있는 문제가 아니다. 수입을 제한할 경우 국가 간 통상문제로 비화될 수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또한 국내에서 수거되는 폐지 대부분은 오염도가 심하고 반복 재활용으로 골판지 품질을 결정하는 섬유길이가 극단적으로 짧다. 강도보완을 위해 미국 폐골판상자(AOCC)와 혼합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현재 거론되는 폐지수급 불균형 대응책은 폐지업계와 폐지사용업계만을 대상으로 한 반쪽짜리 대책이다. 이 산업의 공급사슬체계는 ‘폐지→골판지원지→골판지→골판지상자’ 과정으로 이어진다. 국산폐지 사용은 골판지원지 제조단계에서 이루어지지만 궁극적으로는 골판지상자 시장상황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골판지상자 수요가 활발해지는 농산물 집중 출하기에는 골판지원지 및 국산폐지 수요가 늘어 가격강세가 이어진다. 동절기에는 골판지상자 수요가 줄어 국산폐지 가격도 저가로 형성된다.

골판지상자시장 커져야 수급불균형 해소

국산폐지 수요를 늘리려면 새로운 시장을 키워내는 것이 근원적 해결책이다. 2019년도에는 포장하지 않고 출하하던 수박이 골판지상자로 개별포장하자 수요가 증가됐던 사례가 있다. 사과 감귤 복숭아 등 과일상자 크기도 10kg 단위에서 3~5kg 단위로 소포장하면서 골판지상자 생산량은 30% 이상 증가했다. 현재 무포장 또는 그물망으로 포장 유통되는 배추나 총각무가 골판지포장화 된다면 골판지원지 사용량이 연간 약 15만톤 증가되고 국산폐지는 20만톤 신규수요 창출로 이어질 것이다.

골판지상자 포장은 생산자실명제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배추 무 등 국민 먹거리 안전과 농산물 유통구조개선에 기여할 것이다. 환경부 산업부 농식품부 등이 연계돼 풀어내야 할 과제라고 본다.

당장 폐지대란이 문제가 된다면, 골판지원지를 사용하는 골판지포장업계의 협력을 얻어 골판지원지 환매조건부 비축 지원사업을 진행한다면 어떤가. 6개월 또는 1년 후의 골판지원지를 당겨 사용하는 효과가 있는 만큼 폐지공급 초과상황을 해소할 효과적 정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골판지포장업계는 같은 공급체계 선상에 놓인 국내 폐지업계의 애로를 해결하는 데 이러한 정책제안에 대해 적극 협력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