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정년연장 말하는데" … 은행원 57세에 내보내기 골몰

국책은행 "명퇴금 올려달라"

"인사적체·고임금에 불가피"

사회적으로 정년 연장에 대한 논의가 확산되는 가운데 금융권 노사가 장기근속자 내보내기에 골몰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일부 국책은행 노사가 한 목소리로 명예퇴직금 상한선을 올려 임금피크제 대상 직원을 퇴직시키려는 움직임이 나오면서 논란이 커질 전망이다. 현행 고령자고용법에는 정년을 60세로 하고, 정부와 사용자는 이를 지켜야할 의무를 지우고 있다.

IBK기업은행과 KDB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등 3개 국책은행 노사 대표자는 19일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장 주재로 모임을 가졌다. 이 자리에는 정부측에서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관계자도 참석했다. 이날 만남은 국책은행에 종사하는 임금피크제 대상 직원에 대해 명예퇴직금의 상한을 시중은행 수준으로 끌어올려 퇴직을 원활하게 해달라는 노사의 요구에 따라 이뤄졌다.
국책은행 '명퇴' 놓고 다시 머리 맞대는 노사정 | 방문규 수출입은행장(왼쪽부터), 윤종원 기업은행장, 이동걸 KDB산업은행장이 19일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열린 국책은행의 '명예(희망)퇴직' 문제 관련 노사정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국책은행은 명예퇴직금 상한선이 임금피크제 기간 임금의 45% 수준이다. 따라서 국책은행 직원의 경우 임금피크제 시작 전 받던 임금의 사실상 1/4 수준인 명퇴금을 받고 자발적으로 퇴직할 수 없어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한 국책은행 노조 관계자는 "후선으로 밀려난 임피제 대상 선배들이 조직 내에서 융화가 안되고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다"면서 "조합원들이 희망퇴직을 통해서라도 갈등을 줄이고, 그만큼 신입직원을 더 뽑자는 데 동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내부적인 사정에도 불구하고 노조가 앞장서 법적으로 보장된 정년을 어기는 것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

현행 고령자고용법에 따르면, 합리적 이유없이 연령에 따른 차별을 할 수 없도록 했다. 차별에는 임금과 고용, 퇴직 등을 포함하고 있다. 현 임금피크제가 법을 정면으로 위배하고 있는 셈이다. 다만, 이 법에서도 차별금지 예외조항으로 노사간 단체협약 등을 두고 있기는 하다.

한 노동계 관계자는 "노사가 단체협약으로 별도의 정년을 둘 수 있도록 했지만 법의 목적과 취지는 분명하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고용과 퇴직, 임금 등에서 차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며 "노조가 언제라도 임피제와 관련한 단체협약을 해지하면 임금과 근로조건의 저하없이 은행원의 정년은 보장된다"고 말했다.

더구나 최근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사실상 정년연장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당부하는 상황에서 국책은행 노사가 이러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에 우려가 나온다.

문 대통령은 지난 11일 고용노동부 업무보고에서 "본격적으로 '고용연장'에 대해 검토를 시작할 때"라고 말했다. 고용부가 대통령 발언의 진의가 정년연장이 아니라고 강조했지만, 근로자가 좀 더 오랫동안 직장에서 일할 수 있는 법적인 제도개선의 운을 띄운 셈이다.

다만 국책은행 등의 사정이 무작정 정년을 늘리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기획재정부가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국책은행의 2022년 임피제 직원의 비중은 산업은행이 18.2%, 기업은행 12.3%, 수출입은행 7.0%로 급증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조직의 인력구조가 연령별로 기형적인 구조로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고령자고용법에서 정년 60세 연장과 함께 '임금체계' 개편을 의무화한 취지를 살려 직무급제 도입 등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임금피크제가 나온 배경이 연공서열식 호봉제의 임금체계에서 근속기간이 길면 임금이 자연스럽게 올라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임금체계를 좀 더 유연하게 조정하고, 조직의 구조도 승진에 목을 매는 관료제적 시스템을 고쳐야 한다"며 "앞으로 다가올 정년연장의 사회적 논의를 위해서는 금융권이 먼저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말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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