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영 지음 / 문예출판사 / 1만8000원

현대인은 매일 무언가를 소비한다. 친구를 만나 커피를 마시고 영화를 보는 등 모든 행위는 소비로 시작해 소비로 끝난다. 현대인에게 소비는 단순히 '재화'를 소비하는 행위에 머물지 않는다. BTS의 음악이나 클래식 같은 문화를 소비하거나 다양한 종류의 와인이나 커피를 감별할 수 있는 취향을 소비하기도 한다. 어떤 물건, 어떤 공간, 어떤 문화를 소비하느냐에 따라 자기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바야흐로 소비가 모든 것이 된 시대다.

20세기, 대중은 소비자가 됐다

대학에서 '현대 소비사회의 이해'라는 강의를 맡고 있는 윤태영 겸임교수는 '소비 수업'이라는 책을 펴냈다. '우리는 왜 소비하고, 어떻게 소비하며, 무엇을 소비하는가?'라는 부제가 붙었다. 소비라는 관점을 통해 유행 공간 장소 문화 광고 육체 사치 젠더 패션 취향 등 현대 사회의 11가지 풍광을 살펴보는 책이다. 유행은 현대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왜 현대인은 새롭게 등장하는 핫플레이스에 열광하며 공간 소비에 몰입하는지, 현대 사회에서 교양과 매너는 어떻게 구별짓기를 위한 기제가 됐는지, 현대인들이 몸 가꾸기의 고단함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지 등 소비를 통해 저자는 현대인의 욕망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것이 무엇인지 탐색한다.

저자는 지금까지 중요성에 비해 소비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제한적이었다고 말한다. 초기 자본주의의 사상적 바탕을 제공한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프로테스탄티즘의 금욕정신이 자본주의 발전에 밑바탕이 됐다고 봤다.

금욕을 강조한 프로테스탄티즘에서 소비는 부정적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소비의 중요성은 점점 커진다. 장 보드리야르의 지적처럼 19세기 대중이 노동자가 됨으로써 근대인이 됐듯, 20세기 이후 대중은 소비자가 됨으로써 현대인이 됐다. '소비 수업'은 소비가 점차 중요하게 부각되는 과정을 분석하기 위해 19세기 프랑스 파리의 봉 마르셰 백화점 성공 과정 등 역사적 측면을 살펴보고 점차 커지는 소비의 의미를 분석하기 위해 벤야민 보드리야르 부르디외 등 학자들의 연구 성과를 인용한다.

새로운 소비시장 만들어

"현대 자본주의의 지속적인 발전과 유지를 위해서는 끊임없는 소비가 전제되어야 한다."

소비 사회를 살고 있는 현대인은 유행에 민감하다. 새로운 브랜드가 등장하면 누구보다 발 빠르게 소비하고 경험담을 경쟁하듯 SNS에 올린다. 현대인에게 유행에 뒤진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경험이다. 삶의 양식과 존재 방식이 현재형이 아닌 과거형에 머문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에서 가장 먼저 유행에 대해 말하며 소비자본주의 사회에서 유행의 역할은 생각 이상으로 크다고 말한다. 유행은 낡은 것을 폐기하고 새로운 것을 소비하게 함으로써 자본주의를 유지하는 것은 물론 소비를 습관화한다.

그리고 이미 포화 상태에 도달한 소비시장을 해체하고 그곳에 새로운 소비시장을 만들어낸다. 연남동이나 익선동과 같은 핫플레이스로 대표되는 공간의 유행 역시, 오래된 도시 구역을 해체하고 새로운 소비시장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한다. 유행은 지난해 구입한 제품을 낡고 트렌드에 뒤지는 것으로 만듦으로써 그 자리를 최신의 제품으로 대체한다.

현대인들은 해마다 새롭게 출시되는 최신 스마트폰을 구입하느라 아직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스마트폰을 처분하고 100만원이 넘는 돈을 쓴다. 이처럼 유행은 끊임없는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거듭하며 현대인이 소비하고 또 소비하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유행은 자본주의 사회를 지탱하는 수많은 원동력 중 하나로 작동한다.

공유와 경험을 소비하다

"명품은 돈을 주고 살 수 있지만, 고급 예술을 감상할 수 있는 안목이나 취향은 돈으로 살 수 없다." 현대사회에서 소비는 단순히 사물이나 서비스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와 기호를 소비하는 과정이다. 저자는 형식적으로 계급이 없어진 현대사회에서 소비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계급적 차이와 질서를 설명하기 위해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의 분석을 끌어온다. 부르디외는 특별한 취향과 소비에 대한 선호, 나아가 삶의 방식을 계급의 영향력이라는 측면에서 분석했다. 부르디외는 계급이 자신의 지위를 나타내기 위해 특정 생활양식을 채택하고 이를 통해 다른 계급과 구별짓기를 끊임없이 시도한다고 강조했다.

문화 취향의 차이는 주로 개인의 타고난 본성으로 설명되면서 취향의 차이는 당연하고 자연적인 것으로 이해됐다.

그러나 부르디외의 연구 결과가 나오자 가장 개인적인 것이라 여겨졌던 취향에도 계급적 문화적 차이가 은폐돼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된다. 저자는 구별짓기를 위한 현대인의 욕망이 분출되는 통로로 소비를 바라본다. 자기 과시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는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SNS 역시, 소비를 통해 타인과 자신을 구별짓기 위한 욕망의 표현이다.

저자는 최근 구별짓기를 위한 소비가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물질적 소유 보다는 공유와 경험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비가 확산되고 있다. 이처럼 공유와 경험이 소비의 최대 화두로 자리잡은 지금, 저자는 과시적이고 중독적 소비에서 벗어나 지속가능하고 깨어있는 소비로 한 걸음 나아가자고 제안한다.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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