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파이낸셜타임스

마이너스금리는 현 시대 가장 거대한 통화정책 실험이다. 경제학자, 중앙은행장, 정치인을 찬반으로 양분시킨 실험이다. 하지만 스웨덴은 지난해 12월 5년 간의 마이너스금리 실험을 중단하고 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고정했다. 그 여파에 전 세계 촉각이 쏠려 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23일 전했다.

전 세계 가장 오래된 중앙은행 스웨덴 릭스방크는 2015년 초 레포 금리를 마이너스로 끌어내린 첫 번째 중앙은행이었다. 디플레이션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랬던 스웨덴이 제로금리로 복귀한 것.

릭스방크의 실험 중단은 전 세계 관심을 불렀다. 여전히 마이너스금리를 운용하는 유럽중앙은행(ECB)이나 일본중앙은행(BOJ)뿐 아니라 전 세계 중앙은행들과 경제학자들도 그렇다. 향후 경제침체 시 써야 할 통화정책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은 마이너스금리가 효과를 발휘했는지, 또는 실물경제와 금융에 지속적인 피해를 끼쳤는지 여부를 판단하기엔 여전히 너무 이르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스웨덴 생명보험사 '란스포사킹예'의 CEO 야콥 칼손은 단호하다. 그는 마이너스금리가 '실책'이라며 사람들이 더 저축하게, 덜 소비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그는 FT에 "조만간 우리는 인위적으로 마이너스금리를 만든 실험에 대해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로존 시중은행들은 2014년 6월 ECB가 마이너스금리를 채택한 이후 현재까지 약 250억유로의 보관료를 ECB에 내고 있다. 이미 수익성이 하락한 은행들에게 고통을 가중시켰다는 의미다. 금융의 다른 영역에서도 마이너스금리의 고통을 느끼고 있다. 네덜란드 연기금들은 지난해 약속한 지급액을 가까스로 유지했다. 정부가 개입해 관련 규제를 완화해준 덕분이다.

벨기에 싱크탱크인 '브뤼헐' 소장 군트람 볼프는 "ECB,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전체 중앙은행 그룹들은 스웨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주목하고 있다"며 "스웨덴은 흥미로운 실증사례"라고 말했다.

그는 "진짜 궁금한 건 마이너스금리에서 제로금리로 바꾼 것이 인플레이션과 경제성장률에 어떤 충격을 줄지 여부"라고 덧붙였다.

금융의 기본을 뒤바꾸다

마이너스금리는 금융의 원리를 뒤바꾼 것이다. 시중은행들이 중앙은행에 돈을 맡길 경우 이자를 얻는 게 아니라 보관료를 내야 한다. 동시에 일부 국가와 기업들은 대출을 받으면 이자를 내는 게 아니라 돈을 받는다. 가장 최근에는 유럽 전역의 일부 개인들은 은행에 예금한 거액에 돈을 내기 시작했다. 반면 덴마크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사람들은 이자가 아니라 돈을 받고 있다.


이같은 뒤죽박죽 정책의 배경은, 은행들이 돈을 중앙은행에 맡겨두지 말고 기업이나 가계 등 시중에 적극적으로 대출하라는 취지다. 그래서 실물경제를 살리자는 것이다. 덴마크와 유로존, 일본, 스위스가 마이너스 기준금리를 시행하지만 이 정책의 효과가 있는지, 부작용은 없는지 등에 대한 증거는 여전히 취합중이다.

ECB는 지난해 마이너스 0.5%까지 기준금리를 내렸다. ECB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는 이달 유럽의회에 출석해 "마이너스금리를 도입하지 않았다면 유로존 경제성장률은 현재보다 3% 더 낮았을 것이고 200만개 일자리가 더 사라졌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라가르드 총재는 통화정책의 전략적 재검토의 일환으로 마이너스금리의 부작용을 연구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완화적 통화정책이 오래 유지될수록 부작용이 보다 두드러질 위험이 커진다"고 인정했다.

릭스방크 총재 스테판 잉베스도 스웨덴의 마이너스금리 실험이 성공적이었다고 주장하면서도 이를 무한정 지속할 경우 '중앙은행의 미래가치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등 치명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릭스방크는 2015년 마이너스금리를 도입했다. 경제성장률이 낮아서가 아니었다. 같은 해 유럽연합 회원국 중 4.4% GDP 성장률로, 매우 준수한 성적이었다. 디플레이션 위험 때문이었다. 2014년 인플레이션이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2017년말 릭스방크가 레포(환매조건부채권·repo) 금리를 사상 최저인 마이너스 0.5%로 낮추고서야 2% 목표에 근접했다.

잉베스 총재는 "인플레이션이 정상 수준으로 돌아왔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마이너스금리가 효과를 발휘한 것"이라며 "국채를 사들이는 양적완화 조치도 마찬가지로 도움이 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후 우리의 이슈는 필요한 기간 이상으로 마이너스금리를 지속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릭스방크는 선례를 갖고 있다. 릭스방크는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를 면밀히 지켜본 뒤 2010~2011년 기준금리를 올렸다. 하지만 다시 금리를 내려야 했다. 디플레이션 위험이 커졌기 때문. 이에 대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가학적 통화정책'(sadomonetarism)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조롱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은 스웨덴 사례를 보고 당초 예정된 통화긴축 도입을 늦췄다.

현재 스웨덴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인플레이션은 떨어지는 상황이다. 이런 때 릭스방크는 과거처럼 기준금리를 올렸다. 잉베스 총재는 "경제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제로금리냐 약간의 마이너스금리냐를 놓고 선택해야 한다면, 제로금리가 더 좋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스웨덴 경제성장률은 최근 수년 동안 유로존보다 높았다"며 "우리가 통화정책에서 유로존과 약간 멀어지려는 것이 그리 이상한 건 아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일부 경제학자는 스웨덴 실물경제 둔화세가 가팔라지거나 인플레이션이 급격히 떨어질 경우 릭스방크가 또 다시 유턴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국제유가 하락 등으로 지난달 스웨덴 경제성장률은 직전월 1.7%에서 1.2%(연율 환산)로 하락했다.

릭스방크가 마이너스금리를 도입했던 기간은 5년이었다. 이를 지속할 경우 몇몇 영역에서 장기간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게 잉베스 총재의 판단이었다. 우려가 가장 큰 부문은 은행시스템이다. 일각에선 핀테크 등으로 수익률이 나빠진 은행들에게 마이너스금리는 '설상가상'이라고 주장한다. 은행들이 대출에 의욕을 갖기보다 기피하려 하고, 기업과 가계는 은행에 예금하느니 장판 밑이나 장롱 속에 현금을 보관하려 한다는 것.

독일 최대 금고 제조업체인 '부르크-뵈히터' 영업국장 디트마르 샤케는 "ECB가 마이너스금리를 도입한 이후 매출이 1/3 증가했다"며 "고객들은 보관료를 내고 은행에 예금하느니 차라리 금고를 사 개인적으로 보관하려 한다"고 말했다.

스웨덴 최대 은행 중 하나인 '스칸디나비아 기업은행' CEO 요한 토르비는 "은행들의 채권 투자는 수년 동안 고통스러웠다"며 "마이너스금리 탈피는 좋은 소식"이라고 말했다. 그는 "마이너스금리가 소비를 촉진하는 데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그만의 의견은 아니다. 릭스방크가 통화실험을 끝낸 이유 중 하나는 대중들이 마이너스금리의 취지를 납득하지 못했고 '이상하다'는 반응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유럽 기업과 가계에 대출의 80%를 할당하고 있다. 이는 중앙은행의 금리정책을 실물경제에 전달하는 주요 경로다. 독일은행연합은 최근 보고서에서 "마이너스금리가 도입된 이래 은행들이 ECB에 낸 총비용은 250억유로(약 32조8000억원)에 달한다"며 "이런 부담은 은행 수익성을 악화시키고 결국 대출여력을 갉아먹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마이너스금리에 관한 논쟁은 대체적으로 은행의 대출이 하락하기 시작하는 '금리효과의 반전'(reversal rate) 시점에 달렸다.

프린스턴대 경제학자인 마르쿠스 브루너마이어와 얀 코비 팀이 지난해 공개한 연구에 따르면 마이너스금리의 장점은 은행 보유자산의 가격이 상승하는 것처럼 선집행되지만, 그 파괴적인 부작용은 훗날 더 오래 은행권을 괴롭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유로존의 은행 대출은 ECB가 2014년 마이너스금리를 도입한 때 줄어들고 있다가 도입 이후 반등했다. 가계대출은 2014년 이후 현재까지 12%, 기업대출은 3% 늘었다. ECB는 또 '2단계 분리 정책'으로 금융권 타격을 완화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은행들이 돈을 빌려갈 땐 마이너스금리를 적용해 웃돈을 주는 반면 은행들이 ECB에 보관하는 돈의 일부엔 마이너스금리 적용을 면제하고 있다. 은행 대출을 독려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측은 금리생활자다. 현재 마이너스 수익률을 달고 거래되는 글로벌 채권 총액은 13조달러를 넘는다. 점차 많은 연기금, 보험사, 은행들이 금리생활자에게 약속한 금액을 내어줄 만큼 충분한 수익을 내지 못하게 만드는 요소다. 이들의 사업모델 전반에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릭스방크는 스웨덴 보험사들이 다른 나라와 달리 증시에 과도하게 투자하고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그는 "주가가 오를 땐 보험사 수익이 커져 좋다. 하지만 증시가 미래 어느 시점에 침체할 경우 보험사가 안게 될 리스크가 확대된다. 금융시스템 전반에 확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ECB 이사회에 합류한 독일 경제학자 이사베 슈나벨은 "ECB의 통화완화정책에 대한 독일 내 비판이 때로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주장과 혐의를 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독일의 금리생활자들은 마이너스금리 때문에 1인당 평균 500유로를 손해보고 있다"며 "반면 돈을 빌리는 사람은 1인당 평균 2000유로의 혜택을 보고 있다. 전반적으로는 이익이 불이익을 압도한다"고 말했다.

마이너스금리의 또 다른 리스크는 자산가격에 거품을 주입한다는 것, 수익으로 이자도 못내는 '좀비기업'에 산소호흡기를 대주고 있다는 것 등이다. 스웨덴의 경우 큰 걱정 중 하나는 주택시장이다. 잉베스 총재는 "가계부채가 기록적 수준"이라며 계속 경고하고 있다. 그에 따라 주택담보대출 자격을 강화하는 일련의 조치를 마련했다.

릭스방크는 최근 금리경로에 대한 전망을 바꿨다. 마이너스금리 시행 때는 늘 '향후 금리가 오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지만 지난해 12월 제로금리로 상향한 뒤엔 "안개가 걷힐 때까지, 즉 글로벌 경제에 대한 보다 확실한 예측이 가능해질 때까지 향후 수년 동안 제로금리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스웨덴 스톡홀름 중심가에서 부동산 매매업을 하는 가브리엘 블리는 시장이 최고점에 달한 2016년 450만스웨덴크로나(약 5억6000만원)를 주고 아파트를 매입했다. 하지만 이후 2년 동안 이 아파트를 판매하는 데 애를 먹었다. 아무리 찾아 봐도 420만크로나 이상을 주겠다는 매수인이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릭스방크가 기준금리를 수년 동안 제로 수준으로 동결하겠다는 발언이 나오고 나서 이번달에야 445만크로나에 아파트를 처분할 수 있었다. 그는 "금리가 수년 동안 낮게 유지된다는 확신이 있어야 부동산 매입자들은 안심을 한다"고 말했다.

그같은 걱정은 마이너스금리의 효과에 대한 논쟁을 부채질하고 있다. 은행과 경제정책, 공공투자를 연구하는 영국 런던 소재 민간 싱크탱크 '공적통화금융기구포럼'(OMFIF)은 "마이너스금리의 부작용이 보다 두드러지고 있다는 인식이 늘고 있다. 반면 중앙은행이 설정한 인플레이션 타깃의 효과는 실현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ECB는 인플레이션을 올리려는 목표를 고수하는 분위기다. 핀란드중앙은행 올리 렌 총재는 "비전통적 통화정책의 거시적 효과는 여전히 긍정적이다. 아직 '금리효과의 반전' 시점에 근접하지는 않았지만 마이너스금리로 인한 효과는 줄어들고 있을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그는 "만약 필요하다면, 금리를 더 낮출 여력이 있다"고 말했다.

잉베스 총재는 실물경제가 악화된다면 마이너스금리를 재도입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도 "침체시 다른 추가적인 정책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준금리에는 하방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마이너스 5% 기준금리는 상상하기 어렵다"며 "릭스방크의 경우 국채를 매입하는 양적완화 조치가 있고 정부의 경우 재정정책이 있다. 스웨덴은 올해 GDP 대비 정부부채가 30% 수준으로 하락할 전망이다. 유럽 기준에서 보면 낮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는 ECB 라가르드 총재도 동의하는 대목이다. 그는 이달 "통화정책만으로 위기에 대처할 수도, 대처해서도 안된다"고 강조했다.

전 세계 중앙은행들은 마이너스금리에서 제로금리로 선회한 릭스방크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경제성장률, 인플레이션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큰 관심사다. ECB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필립 라네는 "우리도 마이너스금리를 탈출할 날을 고대하고 있다"며 "언젠가 비용 대비 효과 분석이 바뀔 것이다. 인플레이션이 목표치인 2%에 접근한다면, 스웨덴처럼 결정을 내리기 쉽다. 하지만 유로존의 경우 아직 스웨덴과 상황이 많이 다르다"고 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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