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봉규 서울테크노파크 원장

우리가 살아가면서 매순간 처리해야 하는 일이 두 종류가 있다. 급한 일과 중요한 일이다. 성공적인 삶을 위해서는 급한 일보다 중요한 일에 시간과 노력을 더 쏟아야 한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발등의 급한 불을 끄기 위해 허둥대면서 정말 중요한 일을 뒷전으로 미루다가 나중에 후회하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다.

국가경영도 예외가 아니다. 세계가 하나가 된 오늘의 사회는 해결을 기다리는 새로운 일들이 끊임없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지금처럼 코로나19로 국민생명이 위협받으면 다른 것은 쳐다볼 겨를이 없게 된다. 현안을 해결하면서 동시에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을 예측하고 준비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일상의 삶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시민들과는 달리 정부라면 마땅히 병행해야 할 사명이다. 정부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국정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나 기득권 집단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권력의 속성과 변화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제도개선의 필요성에 눈을 감는다. 피해를 보는 계층이나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는 모순이 더 쉽게 보이지만 이들에게는 현실을 바꿀 힘이 없다.

표를 의식해야 하는 정치인에게 더욱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소를 잃고 난 뒤라도 외양간을 고치면 다행이지만 이마저 주저하다가 나중에 ‘그때 그렇게 했더라면’ 하고 땅을 치는 것이 현실이다. 세월이 흐르면 잘한 일이었다고 평가받을 수도 있지만 지금 당장 내 손에 흙탕물을 묻혀야 하는 일에 선뜻 나서기는 쉽지 않다.

정부, 현안해결 미래대비 병행해야

오늘 독일경제는 슈뢰더 총리에게 빚진 바 크다. 노동유연성을 강화하는 개혁으로 그는 다음 선거에서 정권을 내주고 말았다. 인기없는 개혁정책 때문에 재집권에 실패할 수 있다는데 왜 두려움이 없었을까.

설사 의욕이 있다고 해도 문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선제적으로 제도의 틀을 마련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현실의 폐단을 인식하는 문제에서부터 개혁의 방향과 절차를 정하는 일, 구체적인 대안과 제도를 설계하는 일, 개혁을 추진하고 제도를 운영해나갈 조직을 만들고 사람을 양성하는 일, 이해관계자를 설득하여 국민역량을 한 방향으로 모으는 일들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모두 어려운 과제들이다.

우리나라에서 합계 출산율 2.1이 무너진 때는 1982년이다. 그러나 산아제한 중심의 가족계획정책은 그로부터 무려 15년이 지난 1997년까지 이어졌다. 필자는 위로 딸 둘과 1989년생 아들이 있다. 1가구 2자녀 원칙에 의해 막내를 낳을 때는 의료보험의 적용을 받지 못했다. 1990년대 초반 해외공관 근무를 나갈 때는 막내의 비행기표를 자비로 구입해야 했다. 만약 1982년 시점부터 가족계획정책을 재검토하고 출산장려로 방향을 틀었더라면 어땠을까. 엄청난 돈을 쏟아붓고도 저출산 극복에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지금의 재앙이 상당부분 완화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노동개혁 교육개혁은 우리의 책임

내일을 위해 지금 우리가 팔을 걷어붙여야 할 개혁과제는 무엇이 있을까. 노동유연성 강화를 중심으로 한 노동시장 개혁, 개인의 창의성을 증진할 수 있는 교육개혁, 진정한 경쟁이 꽃필 수 있는 공정거래질서의 확립 등이 될 것이다. 지금 발등에 떨어진 현안을 해결함과 동시에 내일을 위해 제도설계에 나서야 하는 것은 다음 세대에 대한 우리의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