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YS계 수십년 계파정치 … 안철수계, 의원 이탈에 흔들

동교동계와 상도동계는 1980∼1990년대 한국정치를 상징한다. 김대중과 김영삼이라는 '정치적 주군'을 중심으로한 계파는 수십년 동안 생사고락을 함께 했다. 주군의 철학에 공감한 계파원들은 정치적 고난과 생계 위협도 불사하고 주군의 뜻을 따랐다. 물론 과거 주군은 공천과 돈(정치자금)으로 계파원의 충성도를 높이기도 했다.

주군을 중심으로한 계파정치 풍토도 세월과 함께 변하고 있다. 주군이 강력한 리더십으로 계파를 이끄는게 아니라, 거꾸로 계파원들의 이해에 따라 주군이 끌려가는 장면이 잇따르고 있다.
마스크 벗는 안철수 대표 |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24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제1차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을 위해 마스크를 벗고 있다. 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안철수 대표가 만든 국민의당이 의원들의 잇단 이탈로 흔들리고 있다. 지난달 귀국한 안 대표는 '옛 동지'를 규합해 독자노선을 걷겠다고 밝혔지만 4.15 총선을 앞두고 자신의 당선이 급한 의원들은 통합당 합류를 선호해왔다. 주군인 안 대표를 좇아 군소정당 공천을 받는 것보다 제1야당 공천으로 자신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겠다는 계산이었다. 안 대표가 독자노선을 고집하자 이미 김중로·이동섭 의원은 통합당으로 떠났고, 신용현·김수민·김삼화 의원도 이탈을 검토 중이다. 4년 전 사실상 안 대표 덕분에 금배지를 단 안철수계가 당선을 좇는 계보원들에 의해 해체될 위기에 직면한 것.

계보원들의 이탈에 떠밀린 안 대표는 26일 "(김형오 통합당 공관위원장을) 못 만날 이유는 없다"고 물러났다. 독자노선을 고집하던 안 대표가 통합당과의 선거연대 또는 통합 논의에 나설 가능성이 점쳐진다.

유승민 통합당 의원도 계보원들에게 이끌려 통합에 참여한 경우다. 유승민계는 2017년 1월 탄핵정국 속에서 바른정당을 만든 뒤 3년여동안 생사고락을 함께 했지만 4.15 총선을 앞두고 유 의원과 계파원들의 이해가 엇갈리는 장면이 연출됐다. 유 의원은 당초 혁신의지가 불투명한 옛 한국당과의 통합이 부적절하다고 봤지만 '제1야당 공천이 아니면 당선이 불가능하다'는 의원들의 이해에 떠밀려 통합선언을 했다는 관측. 유 의원은 통합 이후 사실상 칩거에 들어갔다.

2018년 지방선거 당시에도 바른정당 의원들이 자신을 좇는 지방의원들에 떠밀려 복당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부산 금정의 김세연 의원은 한국당을 탈당한 유승민계의 핵심이었지만, 지방선거를 앞두고 '제1야당 공천'이 급했던 지역구 지방의원들의 요구를 견디지 못하고 2018년 1월 한국당으로 복귀했다. 김 의원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오로지 지역의 동지들을 살려보고자 눈물을 머금고 복당을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주군이 계파를 이끄는게 아니라, 계파원들에게 거꾸로 끌려가는 장면을 놓고 정치권에서는 "철학과 원칙, 의리도 없이 오로지 배지만 좇는 정치인들의 행태가 일상화되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자신의 정치적 이상과 철학을 계파원들에게 설득시켜 이끌지 못한 주군들의 리더십도 한계로 지적된다. 과거와 달리 주군에게 계파원의 충성을 이끌어낼 공천과 돈이 부족하다는 점도 계파정치의 변화를 불렀다는 분석이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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