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번 동의도 못 얻은 청원 수두룩

1호 청원도 법사·과방·여가위에서 '쿨쿨'

"청원 문턱 낮춰야 … 의원 관심 필요"

청와대 청원이 문재인 대통령 탄핵과 응원으로 도배되며 뜨거운 여론경쟁에 들어가 있는 가운데 입법부의 국민동의청원은 찬바람만 불고 있다. 입법부의 전자청원인 국민동의청원이 문 연지 두 달 가까이 되지만 국민동의를 받기 위해 올라온 청원은 10여건에 그쳤다. 국민들로부터 전자입법청원이 외면받고 있는 셈이다.

28일 국회 사무처에 따르면 지난달 10일 개통된 이후 100명의 동의를 얻어 공개된 국민동의청원은 모두 13건이었다. 이중 청원이 성립된 것은 '한 달 안에 10만명 동의'라는 기준을 넘어선 1건 뿐이었다. 지난달 15일 국민동의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텔레그램에서 발생하는 디지털성범죄 해결에 관한 청원'이 26일만인 이달 10일 10만명의 동의를 얻어 처음으로 상임위로 넘어갔다.

출입통제 된 국회 | 지난 25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확진자가 다녀간 것으로 알려지자 국회가 폐쇄돼 출입이 철저히 통제되고 있다. 연합뉴스 안정원 기자


그러나 인터넷성범죄 강력처벌을 요구한 청원은 한달간 겨우 3772명의 동의를 받는데 그쳤고 첫 청원으로 등재된 오토바이에 대한 자동차 전용도로 통행금지 해제에 관한 청원은 2만4822명의 지지를 얻는 데 만족해야 했다.

지난달 28일에 나온 모병제 도입에 관한 청원은 697명, 같은날 올라온 '디지털성범죄 유형 및 신고포상금에 대한 법 개정의견에 관한 청원'은 915명의 동의를 받는 데 그쳤다. 청원 동의를 받을 수 있는 기간이 하루 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넘어서야 하는 기준의 1%에도 못미쳤다.

이달 5일에 나와 21일째 동의를 받고 있는 '우한폐렴의 추가적인 확산을 막기 위한 조치'엔 1012명이 호응했고 7일에 나온 '변호사 예비시험 도입에 관한 청원'에는 160명이 동의하는 데 그쳤다.

◆보이지 않는 청원절차 = 처음으로 상임위로 건너간 청원의 진행상황은 18일이 지난 현재까지 공개되지 않고 있다.

국회 사무처에 따르면 "법사위와 함께 연관상임위인 과방위, 여가위 등에 동시에 올라가 있다"면서 "새로운 법안을 만들기 보다는 기존 법안과 병합해 심사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박대출, 박광온, 이종걸, 민경욱 의원 등이 발의한 성폭력처벌방지법, 정보통신망법 등에서도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법적용을 강화하는 내용이 들어있는 만큼 이 법안들을 논의할 때 청원 내용을 포함해서 진행하겠다는 복안이다.

문제는 각 상임위에서 청원 관련한 법안 우선처리에 대한 의지가 없다는 점이다. 게다가 경선, 총선에 바쁜 데다 코로나19 탓에 법안심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 유럽 선진국의 경우 의회에서 상임위원장이 청원 관련 소개와 의지를 밝히고 청문회 등을 통해 여론을 환기시키는 사례 등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턱을 낮추자 = 국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실명확인과정이 국민들의 자유로운 참여를 꺼리게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개인정보를 입력해 본인 확인을 거쳐야 청원도 할 수 있고 동의도 가능하다는 게 문턱을 높인다는 얘기다.

두 번째는 청원 성립요건이 너무 높다는 얘기도 있다. 청원 자체를 게시판에 올리려면 100명의 동의를 얻어야 하고 다시 청원이 성립되려면 30일 내에 10만명의 동의가 필요하다.

애초 국회 사무처는 20명의 동의만 얻어도 공개가 가능하고 90일이내에 5만명의 동의를 얻으면 상임위로 직행하는 방안을 제시했으나 국회 운영위 제도개선소위 심사과정에서 문턱이 높아졌다.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관계자는 "실명인증이라는 조건을 감안해 90일 이내 5만명의 동의로 청원이 성립되도록 해 문턱을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 핵심관계자는 "국민동의청원 활성화를 위해 많은 홍보계획을 세워놨고 공개나 성립요건을 낮추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국회 상임위 등 의원들의 낮은 관심도 역시 문제다. 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가 "민주당은 국민입법청원 1호인 '텔레그램 n번방 사건'에 대한 국회입법을 약속드린다"며 "민주당은 다시는 이런 일이 있지 않도록 신속하게 디지털성범죄자 처벌 강화 방안과 관련한 입법을 끝마치겠다"고 한 바 있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회부된 청원이 2월 국회에서 논의돼 제20대 국회 중에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관련 위원회들이 심사에 박차를 가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상임위는 움직이지 않고 있다. 사무처 관계자는 "결국 국회의원들이 관심을 갖고 청원을 우선 처리해야 국민들이 그걸 보고 적극 청원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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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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