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헌영 지음 / 소명출판 / 2만3000원

"거대담론이 완전히 사라진 시대가 됐습니다. 문학은 일상적이 됐고 인문학은 미세화가 돼 역사 사회와 같은 문제들이 밀려났습니다. 산업 사회가 깊어질수록 사회 문제는 깊어집니다. 그런데 거꾸로 문학은 이에서 멀어집니다. 단적인 예가 지난해 3.1운동 100주년입니다.

예전에는 그런 행사에 시인 소설가 평론가 등 문단 전체가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우리 문학이 언제부터 사회 문제, 시민들, 독자들을 외면했을까요. 거대담론만 다루는 작가들을 다룬 책이 이번에 제가 펴낸 책입니다. 정치적인, 비판 의식을 갖고 있는 작가들을 다룹니다. 남북문제와 북미문제를 다룬 남정현, 한일관계 국제정세를 다룬 최인훈, 박정희를 평가하는 이병주 등이 그들입니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사진 소명출판 제공

24일 서울 광화문 한 식당에서 열린 '한국소설, 정치를 통매하다'의 출간 간담회에서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의 일성이다. 한국 문학에서 거대 담론이 점점 사라지면서 평론에서도 거대 담론이 사라지는 시대, 그는 여전히 "거대담론은 중요하다"고 말한다.

올해는 최인훈의 '광장' 발표 60주년이자 남정현의 '분지' 필화 55주년이다. '분지' 필화 사건이란 1965년 작가 남정현이 소설 '분지'로 인해 반공법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건을 뜻한다.

임 소장은 최인훈 남정현을 포함해 이병주 조정래 장용학 이호철 박완서 등 11명의 작가들을 살핀다. 각 시대를 대표하는 지성인인 작가들은 한국 사회의 질곡을 고스란히 작품에 담아냈다.

그는 "이번 평론집은 평론이 아니라 평론적 에세이를 묶었기 때문에 문학을 모르는 독자들이 읽어도 재미있다"고 말했다.

한일관계·북핵문제 다룬 작가들

'헤겔리언, 한국 정치를 통매하다'라는 글에서는 최인훈을 다룬다. 최인훈은 '한국이 아직까지 일본의 식민지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적인 관점에서 소설을 쓴다. 그의 관점은 소설 '총독의 소리'에 잘 드러난다.

임 소장은 "'총독의 소리'는 매우 중요한 작품으로 지금도 한일관계를 문학에서 이만큼 다룬 작가가 없다"면서 "또 소설 '화두'에서 미국을 제국주의 세력으로 다루는데 미국 문제를 최인훈만큼 심각하게 비판한 작가가 없다"고 말했다.

남정현은 '분지'로 잘 알려져 있지만 '오늘의 북핵문제를 예견한 작가'로도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 임 소장의 주장이다. 남정현은 소설 '편지 한 통; 미 제국주의 전상서'에서 "미국이 진정으로 제국주의 정책을 포기하고 북과 행동으로 실질적인 관계 정상화를 도모하지 않는 한" 해결하기 어려운 것이 북핵문제라고 밝힌다.

박정희 전 대통령 비판

임 소장은 이병주에 대해서는 "70년대에 가장 지식인 독자가 많았던 대단한 작가"라고 말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알려졌듯 이병주에 대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어용 작가로 알았다"면서 "나중에 이병주의 아들을 만나 다시 연구를 해 보니 이병주는 박 전 대통령을 도와주지 않으려고 했고 박 전 대통령 사후에 박 전 대통령의 정책에 대해 비판하고 나섰다"고 말했다. 이어 "어떤 정치학자의 논문도 이병주의 소설보다 못하다"고 덧붙였다.

이병주는 장편소설 ''그'를 버린 여인'에서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박 전 대통령을 쏜 심리적 배경을 여순사건이라고 썼다. 여순사건은 1948년 군인들이 제주 4.3 사건의 진압을 거부하며 시작한 사건으로 좌익과 우익의 대립 속 현대사의 비극적 사건 중 하나다. 소설에서는 박정희의 밀고로 처형당했던 군 장교의 자식들이 '박정희 암살단'을 조직하고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이들을 취조하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해명을 듣게 된다. "내가 노리는 자는 첫째 민족의 적입니다. 일본제국의 용병이었으니까요. 둘째 민주주의의 적입니다. 쿠데타로서 합헌 민주정부를 전복한 자니까요."

임 소장은 4월 총선을 앞두고 소설에 등장하는 국회의원 비판이 의미심장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병주 소설에서 독립운동가 출신 국회의원 후보자는 '국회에 가면 낮잠을 자겠다'고 한다"면서 "'족제비처럼 부지런히 돈을 버는 의원보다 낮잠을 자는 내가 더 위신을 높일 것'이라고 말하는데 인문학적인 소양을 갖추고 민족의식이 있는 사람이 국회의원이 돼야 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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