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스트지

회복탄력성 주목

전 세계 각국 정부와 경제학자들이 코로나19로 인한 피해 추산에 분주하다. 코로나 봉쇄로 경제규모가 얼마나 위축될지, 현재의 침체 국면이 얼마나 지속될지 등이다. 아무도 자신 있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얼마나 많은 현금을 쏟아부어야 할지, 현재의 자원만으로 생존할 수 있을지를 두고 경영진 회의에서 각종 시나리오를 분석하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최신호에서 "그럼에도 최소한 한 가지는 명확하다"며 "소수의 강한 기업들은 코로나19 이후에 보다 큰 영향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부 기업은 남다른 금융안정성을 자랑한다. 존슨앤드존슨 채권의 디폴트(채무불이행) 보험비용은 캐나다국채의 디폴트 보험비보다 저렴하다. 애플의 총 현금은 2070억달러로,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코로나19에 대비해 마련한 경제부양액보다 많다. 이런 그룹의 기업들은 선도기업 또는 승자(top dogs)라고 부르는데, 쇠약해진 경쟁 기업을 사들이거나 그런 기업보다 더 많이 투자하면서 시장지배력을 굳힌다.

주기적 경제침체는 자본주의가 승자와 패자 또는 강자와 약자를 걸러내는 메커니즘이다. 기업의 허약한 사업모델과 부실한 재무제표를 여지없이 드러낸다. 과거 세 번의 경기침체를 보면 미국 10개 산업부문에서 상위 25%에 속하는 기업들의 주가는 평균 6% 상승했다. 반면 하위 25%에 속하는 기업들의 주가는 평균 44% 하락했다. 올해 코로나19로 인해 각 기업의 매출과 이익은 이전의 침체 때보다 더 심각한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여행이나 쇼핑 금지로 타격을 받은 기업들은 추락세가 얼마나 가파른지 비명을 지르고 있다. 지난 23일(현지시간) 매출 11조원으로 '아일랜드 유니클로'로 불리는 패션기업 프라이마크는 12개국 376개 매장 전부를 닫는다고 선언했다. 한달 매출 7억7000만달러를 포기한다는 것. 운영비의 절반이나마 아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다.

대부분 기업들도 암울하긴 하지만 그보다는 덜하다. 일부 공장들은 여전히 돌아간다. 사무직 기업들은 부분적 또는 전면적인 원격근무로 전환했다. 현재까지 많은 기업들은 배당금과 자사주매입을 큰 폭으로 감축한다는 선언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하지만 기업들은 정확히 얼마나 많은 현금을 소진해야 할지 불확실하다. 대부분 기업에게 생각보다 많은 현금이 필요할 전망이다.

그렇다면, 누가 선도기업(top dogs)일까. 이코노미스트지는 기업의 회복탄력성을 알아보기 위해 미국과 유럽의 주요 상장기업 776곳을 조사했다. 자본조달비용과 유동성(현금), 레버리지, 운영마진 등 4가지의 평균 점수를 살폈다.

일부 중소규모 기업들은 좋은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시가총액과 이익 측면에서 덩치가 큰 기업들이 더 강해질 가능성이 크다. 상위 점수를 받은 100개의 기업들 가운데 중앙값(median)에 위치한 기업의 가치는 하위 점수 100대 기업보다 거의 2배 높았다. 영업이익 중앙값은 17% 높았다. 상위 100대 기업의 2월 주가는 평균 17% 하락했다. 반면 하위 100대 기업은 36% 하락했다.

상위 점수에는 실리콘밸리 기술기업과 대형 제약사들이 이름을 올렸다. 기술기업들은 상위 100대 기업 중 48곳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 10위, 애플 13위, 페이스북 14위, 구글 모회사 알파벳은 18위였다. 이들은 막대한 현금축적액을 자랑한다. 코로나19 위기국면에서 이들 기업의 일부 제품 수요가 치솟고 있다. 대표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의 팀협업 소프트웨어가 있다. 제약 등 건강의료 관련 기업들은 24곳이었다. 이들 기업 역시 많은 현금을 보유하고 있었고, 해당 시장을 지배하고 있었다. 반면 하위 100대 기업들은 주로 운수송이나 소매, 휴양·오락 산업부문에 속했다. 유통체인업체 마크스 앤드 스펜서나 미국 항공업체 등이 대표적이다.

같은 산업 부문 내에도 승자와 패자가 갈리고 있다. 기술분야에 속한 아마존은 전자상거래 수요가 폭증함에 따라 미국 내 10만명 직원을 충원했다. 반면 일본의 거대 기술기업인 소프트뱅크는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410억달러어치 주식매각을 발표했다. 매각 대상엔 수익성 높은, 중국 최대 상장기업 알리바바 주식도 포함돼 있다.

에너지 부문에선 엑슨모빌이나 로열더치셸, BP 등이 중소규모 업체를 압도한다. 중급 규모 석유기업인 옥시덴탈 페트롤리움은 그동안 공세적인 인수합병을 벌이며 메이저리그에 진입하려 노력했지만, 현재 부채만 400억달러에 달한다. 프랑스 화장품업체인 로레알은 미국 경쟁기업 코티에 비해 월등한 실적을 자랑한다. 전반적으로 타격이 큰 항공업계도 간극은 벌어지고 있다. 이달 23일 유럽 에어버스는 유동자금 320억달러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미국 보잉사는 정부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으려 동분서주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선도기업의 회복탄력성은 결국 오래 버티는 장점으로 해석돼야 한다"며 "시간이 지날수록 선도기업의 시장점유율은 더 확대되고 자본조달 비용은 더 낮아질 것"이라고 전했다. 대기업에 납품하는 공급업체들도 유동성 위기에 빠진 허약한 기업보다 선도기업을 우선할 수밖에 없다. 선도기업들은 높은 마진과 넉넉한 현금 보유를 자랑한다. 다른 기업들이 투자를 줄일 때 오히려 더 많은 투자를 단행할 수 있다. 일부 기업들은 위기에 빠진 알짜기업들을 골라 사냥할 것이다.

그리고 각국 정부는 독점 우려보다는 실패한 기업, 그곳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의 실직을 우려해 인수합병을 독려할 수도 있다. 틈새시장을 노려 선도기업의 이익을 조금씩 갉아먹던 스타트업들도 지속적인 손실 누적으로 자본조달 비용이 상승하면서 당분간 활동을 멈출 가능성이 크다.

물론 모든 상황이 선도기업이 주도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만은 아니다. 코로나19 위기가 잦아들면 새로운 사회계약에 대한 요구가 높아질 수 있다. 생활필수품을 보다 낮은 가격에 제공하라는, 노동자에게 보다 안정적 일자리를 제시하라는 압박이 기업들에게 가해질 것이다.

현대 자본주의는 막무가내로 적자생존법을 관철하진 않는다. 각국 정부는 허약한 기업들을 구제금융이나 각종 보조금, 대출보증 등으로 부양할 수 있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5개국이 기업에 대한 저렴한 대출에 할당한 예산만 최소 4조달러다. 이들 국가의 기업들이 진 부채 총량의 1/5 수준이다. 일부 산업부문에선 일시적이나마 카르텔을 공식 허용할 수 있다. 가격과 생산을 안정화하기 위한 목적에서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이런 상황은 강한 선도기업들이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시키는 걸 어렵게 할 수 있다"며 "코로나19는 사회나 사람들의 행동에만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다. 글로벌 기업의 구조 또한 바꿔놓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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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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