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이어진 진실공방 종지부 찍고

더 큰 화해와 통합으로 나아가야

5.18민주화운동이 올해 정확히 40돌이 됐다. 사람 나이 마흔은 불혹이다.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되었음을 뜻한다. 그럼 우리 사회는 5.18에 대해 올바른 판단을 하고 있을까. 아니라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아직도 진실이 규명되지 않은 중요한 일들이 많다. 발포명령자가 드러나지 않았고, 실종자 행방이 불분명하며, 헬기사격 여부도 논란이다. 더구나 국가가 지정하고, 유네스코 기록물로 등재까지 된 5.18에 대해 폄훼하고 훼손하는 일까지 여전하다. 40년이 지나도록 진실을 향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셈이다.

민주화를 외치던 40년 전 광주의 청년들 | 5·18 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제작된 관객 참여형 공연 '나는 광주에 없었다'가 12일 오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1에서 열리고 있다. 5·18 40주년 기념 창·제작 공연인 '나는 광주에 없었다'는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문 몰입형 연극(Immersive Theater)으로, 12∼18일까지 공연된다. 연합뉴스


◆왜곡이 만들어내는 침묵 = 40년은 긴 시간이다. 당장 우리 사회에서 10대부터 30대까지는 5.18 자체를 직접 경험하지 않은 세대다. 이들은 5.18민주화운동을 4.19나 6.25처럼 책에 나오는 역사의 한 장면으로만 인식할 뿐이다. 억지로 기억을 강요할 순 없다. 대신 올바른 교육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교육현장에서 5.18을 얼마나 비중 있게 다루고 있을까. 4.19나 6.25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보수성향이 강할 지역일수록 그 정도는 더 심하다.

대구 경혜여자중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차경호 교사(43)는 아이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그의 눈에 비친 대구지역의 5.18은 안타까움이다. 국가가 정한 기념일이자 역사적 판단이 끝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지역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는 이를 불편하게 여기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5.18 당시 광주의 상황은... |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관람객이 5.18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 특별전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전시를 살펴보고 있다. 5·18기념재단 등이 소장한 광주의 기록물을 서울에서 처음 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10월 31일까지 열리며 관람료는 무료다. 연합뉴스


차경호 교사는 "아이들은 백지상태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편견이 없다. 올바른 교육으로 접근하면 객관적으로 이해한다. 그런데 역사에 관심 있는 아이들이 집이나 주변 어른들과의 대화를 통해 배운 생각을 그대로 표현하는 경우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때론 학부모들로부터 항의성 전화를 받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4.3사건과 5.18민주화운동, 6월항쟁 등을 가르쳤다는 이유 때문이다. 교과서에 실려 있는 내용이라고 설명하면 대부분 깜짝 놀란다. 자신들이 듣고 배웠던 시절과 너무 많이 달라졌음을 그제야 깨닫기 때문이다.

차 교사는 "이제는 (대구에서도) 일부 극우세력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5.18이 민주화운동이 아니라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면서 "다만 아직도 5.18을 이야기하려는 것 자체를 정치적 편향으로 받아들여 침묵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고 설명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4월 27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린 형사재판에 피고인으로 출석하고 나서 기자 질문을 받으며 법원 청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명백한 역사적 사실이자 자랑스런 민주화 투쟁의 결실을 정치공방에 가둬버리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5.18인정교과서가 재탄생한다는 소식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5.18기념재단(이사장 이철우)이 광주광역시교육청과 공동으로 개발한 중·고등학생용 도서다.

이번 책은 5.18민주화운동의 발생배경이나 전개과정과 같은 역사적 사실은 물론이고, 주먹밥이나 영화 '택시운전사'와 관련된 흥미로운 내용, 그리고 역사 왜곡, 사회적 연대와 실천방안에 이르는 깊이 있는 주제까지 다양한 시각의 23가지 질문과 답변으로 구성됐다.

이철우 이사장은 "인정도서와 현장교육을 통해 5.18민주화운동을 잘 모르는 미래 세대가 5.18 역사와 정신을 알고 계승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현판식을 마치고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했다. 사진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제공


◆무지와 비이성의 차이 = 젊은 세대에게 5.18이 책에 나오는 한 장면이라면 60대 이상 고령층에게는 아직도 이념논쟁의 잔재로 가득하다. 80년대 초반까지는 권력을 잡은 자들이 의도적으로 진실을 왜곡했다.

신군부는 1980년 5월 21일 "광주사태는 빨갱이 김대중으로부터 사주를 받은 광주지역 불순분자들이 국가 전복을 목적으로 선동하여 일으킨 내란 폭동이며 김대중으로부터 거사자금을 받은 정동년이 광주에서 폭동을 일으켜 학원소요 사태를 민중봉기로 유도 발전시켰다"고 발표했다. 이른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이다.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진실을 왜곡하고 진상규명을 방해했다. 얼마 전 전두환 전 대통령이 광주법정에 나와서 다시 한 번 모르쇠로 일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진실을 영원히 어둠속에 가둘 수는 없는 법.

5.18민주화 운동을 계승한 대규모 민주화 투쟁은 뒤집혔던 진실을 바로 세웠다.

신군부 핵심들인 전두환, 노태우 등 92명이 내란·내란목적살인죄 등으로 처벌받은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이와는 달리 2000년대 이후로는 일부 극우세력이 의도적으로 5.18을 폄훼하고 왜곡하는 일이 잦아졌다. 이들에게 보수정권 10년이 자양분이 됐다. 5.18의 진실을 비틀고, 지역주의와 냉전이데올로기를 다시 부추기고 있다.

미국의 정치평론가 월터 리프먼은 "불충분하게 알고 있는 대중보다 더 안 좋은 것이 있으니 이는 잘못알고 있는 대중이다. 이는 무지와 비이성의 차이"라고 말했다. 또 "사실이 허구에 굴복한다면 그 결과는 정치적 불신과 양극화가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40주년을 맞는 5.18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혹시 무지와 비이성의 그 어디쯤에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은 성찰이 필요해 보인다.

◆기억은 기록으로, 공개는 진실로 = 어둡고 부정적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12일 외교부는 5.18 민주화 운동 관련 미측 기록물에 대해 추가 비밀해제가 됐다고 밝혔다. 비밀해제 된 기록물은 총 43건(약 140쪽 분량)으로 모두 미 국무부 문서(주한미국대사관 생산 문서 포함)다. 과거에도 이 문서들 가운데 일부내용이 삭제된 채로 비밀해제 된 적이 있지만 이번에는 완전 공개키로 했다. 진상규명에 도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같은 날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위원장 송선태)가 출범 다섯달만에 공식활동을 시작했다. 조사 대상은 △최초 발포와 집단발포 책임자 및 경위 △사망사건 △민간인 집단학살 사건 △행방불명자 조사 △북한군 개입 여부 및 북한군 침투조작 사건 △성폭력 사건 등을 우선적으로 다루게 된다.

송선태 위원장은 "5.18의 중요 핵심 정신은 불의에 대한 저항이었으며 이 정신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핵심 중 하나"라고 밝힌 뒤 "조사위는 처벌이 목적이 아닌 진실과 화해추구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것만이 아니다. 특별한 의미를 지닌 5.18관련 책들도 등장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외국인 시선에 비친 5.18이다. 한 권은 동화다. 광주항쟁을 세계로 알린 고 찰스 베츠 헌틀리(한국명 허철선) 목사의 막내딸 제니퍼 헌틀 리가 펴낸 '제니의 다락방'이다.

헌틀리 목사는 5·18 당시 광주기독병원 원목(院牧)으로 재직하며 참상을 사진에 담아 기록했고, 일부는 영화 '택시 운전사'에 등장하는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 등의 손을 거쳐 세계로 퍼졌다. 이번 동화는 당시 만 아홉 살이었던 제니의 눈에 비친 5.18이다. 그때의 생생한 기억이 동화의 모티브가 됐다. 제니퍼는 "역사란 완성되지 않은 책과 같아서 우리도 언젠가는 역사 속 한 장면에 서 있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한 권의 책은 회고록이다. 5.18 당시 평화봉사단원으로 한국 땅을 밟았던 폴 코트라이트(66)씨의 '5.18 푸른 눈의 증인'이다. 코트라이트는 당시 힌츠패터 기자 등 외신기자들의 통역과 희생자 주검 수습을 도왔다.

그는 지난해 "한국에서 5.18이 왜곡 폄훼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이를 바로 잡고자 경험담을 쓰게 됐다"고 집필 동기를 밝혔다. 당시를 기억하고 경험한 외국인들마저 진상규명과 진실을 알리는데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40돌을 맞는 5.18은 특정 지역에 한정된 것도, 좌우 이념의 문제도, 여야 정치공방의 대상도 아니다. 모두가 함께 직시하고 기억해야 할 진실의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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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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