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고립과 왜곡에 맞선 생존전략

진실규명과 명예회복, 세계 관심 끌어내

교육·문화·경제 분야로 5.18 가치 확장해야

40주년을 맞은 5.18민주화운동이 잊힌 역사로 남지 않고 미래 세대에게 숭고한 가치를 온전히 전달하기 위해선 '전국화와 세계화'가 여전히 중요한 것으로 평가됐다. 특히 5.18에 대한 왜곡과 폄훼가 심각하고, 경험하지 못한 세대마저 늘면서 '미래 지향적 전국화 세계화 전략'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5.18의 가치를 전국, 세계라는 공간적 영역과 함께 교육 문화 경제 분야로 확장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생존 방안으로 시도 = 5.18 전국화 세계화는 고립된 광주를 살리기 위한 방도로 채택됐다. 권력을 잡은 신군부는 무력으로 광주를 봉쇄하고, 언론을 장악했다. 이를 통해 5.18을 불순분자 폭동으로 매도했다. 심지어 북한 고정 간첩이 폭동을 일으켰다고 왜곡했다. 실제 이희성 계엄사령관은 1980년 5월 21일 "(5.18이) 엄청난 사태로 확산된 것은 상당수의 타 지역 불순 인물 및 고첩(고정간첩)들이 사태를 극한적인 상태로 유도하기 위하여 여러분의 고장에 잠입, 터무니없는 악성 유언비어의 유포와 공공시설 파괴 방화, 장비 및 재산 약탈행위 등을 통하여 계획적으로 지역감정을 자극, 선동하고 난동행위를 선도한 데서 기인된 것"이라는 담화까지 발표했다.

시민과 시민군은 생사를 걸고 함께 사웠다. 그리고 공동체 정신을 발휘해 수습에 나섰다.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과 공동체 정신이 빛나는 순간이었고, 광주정신이었다. 이창성 촬영, 5.18기념재단 제공


추모 집회 역시 매번 원천 봉쇄됐다. 참가자는 모진 폭행을 당하고 체포됐다.

이에 대응한 광주는 1980년대 초까지 진실규명을 요구하는 열사들의 분신과 투신으로 외로운 싸움을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고립된 광주 진실을 국내외 양심세력에게 호소하는 의미에서 전국화 세계화가 시도됐다. 목숨을 던진 희생이 이어졌고 마침내 1988년 '제5공화국 청문회'가 열려 5.18 참상이 전국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또 국민의 지속적인 진상규명운동으로 1995년 헌정질서 파괴 범죄행위에 대한 공소시효 정지 등을 규정한 '5.18민주화운동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돼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내란 및 내란목적살인죄 등으로 처벌됐다. 1997년에는 국가기념일로 제정됐다. 초라했던 묘역도 국립묘지로 승격됐다. 희생자와 참여자는 민주유공자로 예우를 받았고, 명예회복도 시작됐다.

5.18 정신은 6.10민주항쟁을 거쳐 2017년 촛불혁명에 이르게 됐다. 또 세계 민주화운동의 표본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런 가치를 인정받아 2011년 5.18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또 지난해 미국 등 세계 20여개 나라에서 기념행사가 열렸다.

김희송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교수는 "전국화 세계화는 왜곡되고 고립된 광주의 진실을 외부에 알리는 생존전략에서 시도됐다"면서 "이로부터 5.18 진실이 차츰 규명되고 정당한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광주에서 버젓이 폄훼 = 전국화 세계화 전략은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잇따라 탄생하고,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한때는 '철 지난 전략'으로 치부되기도 했다.

또 2008년 보수정권이 출범하면서 보수 세력에 의한 5.18 왜곡과 폄훼가 갈수록 심각해졌다. 심지어 보수논객 지만원씨는 2014년 5.18 분석 최종보고서에서 "5.18은 순전히 600여명의 북한 특수군이 일으킨 모략작전이었고, 광주인들은 민주화운동을 위해서든 폭동을 위해서든 독자적인 시위대를 구성한바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2017년 4월 발행된 회고록에서 "5.18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는 것은 왜곡된 악의적 주장"이라며 "(목격을 주장한) 조비오 신부는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공격했다

자유연대 등 보수단체는 오는 16~17일 항쟁지 한복판인 금남로에서 5.18 유공자 공개 등을 요구하며 대규모 집회까지 신고했다. 이에 광주시가 지난 6일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집회를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렸으나, 보수단체는 이에 불복해 소송을 내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조진태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2000년 초반에는 전국화 세계화 전략보다 기념사업이 훨씬 중요했던 시기로 기억된다"면서 "계속되는 5.18 폄훼가 진실규명과 미래지향적 가치를 논의하는데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새로운 가치로 미래 준비해야 = 보수단체 폄훼와 5.18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가 갈수록 늘면서 전국화 세계화는 여전히 중요한 전략으로 남아있다. 보수단체 폄훼에 맞서는 전국화 세계화 전략은 △5.18진상조사위원회 활동 지원 △5.18왜곡처벌특별법 제정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 등으로 요약된다.

이에 못지않게 5.18 정신을 새롭게 해석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김희송 교수는 "거대 담론 못지않게 국민 삶과 함께 어우러진 가치가 필요하다"며 "서울시가 지역특성과 5.18, 문화 등을 한데 엮어 준비한 40주년 기념행사를 눈 여겨 봐야한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오는 27일까지 광주시와 함께 '서울의 봄과 광주의 빛'을 주제로 '오월평화페스티벌'을 진행 중이다. 이 행사는 5.18 직전에 있었던 정치적 과도기 '서울의 봄'과 축제를 한데 엮어 5.18을 국민적 승리로 재해석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5.18단체가 홍콩 등 세계 민주화운동 지원을 한층 강화해 민주 평화 인권국가로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데 기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또 제주 4.3항쟁과 부마민주항쟁, 소외계층 활동을 적극 지원해 '요구만 하는 5.18에서 되돌려주는 5.18'로 거듭나는 노력도 요구됐다. 얼마 전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이 제주 4.3평화재단과 4.3 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하는 업무협력을 맺은 것도 이런 시도다.

광주시가 코로나19 확산 때 고립된 대구에 주먹밥과 방역물품을 보내고 소통했던 것도 의미 있게 해석되고 있다. 정용화 5.18민주화운동기록관장은 "5.18이 광주만의 역사가 아니라 대한민국 역사라는 것을 온 국민이 공감하는 사업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5.18을 사회적 경제 일환인 '5.18경제'로 해석하는 흐름도 나타났다.

정근식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난해 열린 40주년 이후 5.18 방향 설정 토론회에서 "광주(정신)를 세계적 일국적 도시적으로 분석하는 다중적 스케일과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차원의 전망으로 발전시키는 토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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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국진 홍범택 기자 kjb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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