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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

"채무자 공유지분, 채권자가 대신 분할 못해"

대법 "채권보전과 관련없어" … 기존 판례 변경

상의없이 공유지 독점 … "인도 청구까진 안돼"

등록 : 2020-05-22 11:42:41

빌려준 돈을 받기 위한 것이라고 해도 채권자가 채무자 재산의 공유 지분을 대신해 분할 청구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또 공동으로 소유한 땅을 공유자 일부가 협의 없이 독점하더라도 다른 공유자가 땅을 돌려달라는 요구는 할 수 없고, 다만, 공동 사용을 방해하는 나무 등의 지상 설치물을 제거해달라는 요구는 할 수 있다는 판결도 나왔다.

착석한 대법원장과 대법관들│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1일 공유와 관련한 기존 대법원 판례를 변경하는 판결을 해 눈길을 끌었다. 전날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처분 취소 사건 전원합의체 공개 변론에 참석해 앉아 있다. 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재산관리에 대한 부당한 간섭" =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21일 "채무자의 아파트 공유 지분을 채무자를 대신해 분할할 수 있도록 해 달라"며 채권자 A씨가 제기한 소송에서 분할 청구를 받아들인 원심을 깨고 원고 패소 취지로 사건을 인천지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빌려준 돈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골몰하던 중 채무자 B씨의 아파트 공유지분 7분의 1을 전체 지분에서 따로 분할해 확보하기로 했다.

이렇게 하면 아파트 전체를 경매에 넘길 수 있고, 이 경우 선순위 근저당권을 변제해도 약간의 현금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결국 A씨는 B씨를 대신해 B씨의 아파트 공유지분을 따로 떼어달라며 나머지 지분권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지금까지 판례에 따르면 금전 채권자는 채권 확보 가능성이 있다면 채무자의 공유물분할청구권을 대신 행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날 판결에 참여한 대법관 12명 중 8명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금전 채권자는 부동산에 관한 공유물 분할 청구권을 대신 행사할 수 없다"며 기존 판례를 변경했다.

공유물분할청구권을 채권자가 대신 행사하는 것은 채권 보전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채무자의 재산관리에 대한 부당한 간섭이라는 취지다.

대법원은 "공유물분할청구권을 채권자가 대신 행사할 수 있도록 하면 채무자를 비롯한 공유자들이 원하지 않는 시기에 공유물 분할을 강요당하는 등 문제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4명의 대법관은 "채권의 현실적 이행을 유효·적절하게 확보할 수 있도록 공유물분할청구권 대위 행사를 허용해야 한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일부 소수 지분권자가 공유물 독점, 위법" = 이날 토지 공유자가 다른 공유자와 협의 없이 토지를 독점하고 이득을 챙긴 경우 방해물 제거 등을 청구할 수는 있지만, 토지 인도 청구까지 할 수는 없다는 전원합의체 판단도 나왔다. 공유자 여러 명 중 일부가 마음대로 공유물을 독점하는 것을 막기 위해 보유 지분이 과반에 못 미치는 소수지분권자라도 공유물 인도 청구를 허용한 것이 기존 대법원 판례였는데, 이를 변경한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이날 C씨가 D씨를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한 부분 가운데 토지 인도 청구 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C씨와 D씨는 파주시 한 토지 공유자로서 두 사람 모두 과반수 미만의 소수지분소유자다. 다툼은 D씨가 C씨와 협의 없이 이 사건 토지에 소나무를 심어 독점하면서 발생했다. C씨는 D씨를 상대로 소나무 수거와 토지 인도 등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1·2심 재판부는 기존 판례대로 C씨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대법원은 소나무를 수거하라는 방해배제 청구만을 인정하고, 토지까지 돌려달라는 인도 청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날 전원합의체는 "이 사건에서 공유물의 인도를 청구하는 것은 공유자인 D씨의 이해와 충돌해 모든 공유자에게 이익이 되는 보존행위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D씨가 공유물을 독점하는 것은 위법하지만, D씨는 적어도 자신의 지분 범위에서는 공유물을 사용·수익할 권한이 있다"며 "그런데 C씨의 인도 청구를 허용하면, D의 점유를 전부 빼앗아 피고의 '지분 비율에 따른 사용·수익권'까지 근거 없이 박탈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C씨의 인도 청구를 허용하면 D씨를 배제하고 C씨가 공유물을 단독으로 점유하게 돼 '일부 소수지분권자가 다른 공유자를 배제하고 공유물을 독점'하는 기존의 위법한 상태와 다르지 않다"며 "이는 분쟁의 종국적 해결을 위해 판결과 집행이 달성해야 할 적법한 상태라고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박상옥·민유숙·이동원·김상환·노태악 대법관은 "위법한 상태를 시정해 공유물을 공유자 전원이 사용·수익할 수 있는 상태로 회복하기 위해서 방해를 제거하거나 공유물을 회수하는 것은 공유물의 보존행위에 해당한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이들은 "방해금지 청구는 인도 청구를 대신하는 권리구제 수단으로 불충분하다"고 판단했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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