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린폴리시 "연준 통화확대정책의 어두운 이면"

2010년 12월 초 UN식량농업기구는 정책브리핑을 발표했다. "최근 글로벌 농업시장의 극심한 가격 변동성은 세계 식량안보에 급격하고 빈번한 위협이 있음을 알리는 불길한 전조다."

며칠 지난 12월 17일 튀니지 거리의 과일행상 모하메드 보우아지지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단속반이 그의 유일한 생계수단인 과일행상 리어카를 압수했기 때문. 이를 계기로 수십명의 영세상인들도 그의 뒤를 따랐다. 튀니지 전역에서 거대한 시위가 일어났다. 중동과 북아프리카로 소요는 빠르게 확산됐다. 주된 원인은 식량가격 급등에 따른 불만이었다.

지난 18일 칠레 수도 산티아고 시민들이 코로나19 위기로 인한 식량과 일자리 부족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AFP=연합뉴스


이같은 사회적 격변의 물결은 서구 언론에 '아랍의 봄'(Arab Spring)으로 소개됐다. 하지만 현지 활동가들은 '굶주림의 혁명'(Hunger Revolution)으로 불렀다. 적절한 작명이었다.

게다가 이같은 정정불안은 아랍세계에 한정되지 않았다. 특히 리비아와 시리아에서 이어진 내전은 국제화됐다. 이들 국가가 양산한 난민은 처음엔 유럽을 덮쳤고, 그 다음엔 전 세계에 포퓰리즘 국수주의 움직임에 불을 질렀다.

미국 외교전문매체 포린폴리시는 21일 "그같은 위기가 재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코로나19 위기로 식량안보에 대한 불안이 팽배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개발도상국에서 그렇다.

이달 초 UN 총회의장인 티자니 무하마드-반데는 코로나19 위기로 인한 식량위기를 경고했다. UN 세계식량프로그램은 '코로나19 위기가 시작되면서 극심한 기아율이 두배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최근 글로벌 농작물 수확량이 좋았지만, 국제기구들은 △글로벌 공급사슬의 취약함 △각국의 식량비축 △거세지는 식량보호주의를 걱정한다. 포린폴리시는 "굶주림이 늘어나면 식량폭동이나 정부를 겨냥한 폭력·비폭력적인 불복종 운동이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먹고사는 문제는 인류역사의 방향을 규정했다. 식량가격 급증은 프랑스혁명의 주요 동인이었다. 유럽에서 수년 동안 가뭄이 이어진 뒤 1848년혁명이 일어났다. 굶주림에 대한 불만은 1917년 러시아혁명의 시동을 걸어 소련의 탄생에 기여했지만, 아이러니하게 1990년대 초 소련의 종말도 재촉했다. 1998년 인도네시아 수하르토 대통령의 축출도 식량 위기에서 비롯됐다.


식량위기는 가뭄과 같은 자연재해나 인구급증과 같은 사회적 요인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포린폴리시는 달러시스템의 변화가 글로벌 식량가격에 큰 변동성을 야기한다는 점을 지적해 눈길을 끌었다.

식량교역은 국가간 활발하게 일어난다. 일반적으로 달러로 가격이 매겨진다. 달러가치 변동은 전 세계 식량가격의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달러가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정책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

연준은 완전고용과 안정적 인플레이션이라는 임무를 수행한다. 이를 위해 다양한 통화정책을 구사한다. 기준금리 조정과 자산매입(양적완화) 등이다. 그 과정에서 달러의 공급이 확대된다. 통화공급 변화는 달러가치에 영향을 미친다. 기축통화인 달러의 가치 변동은 전 세계적 파장으로 이어진다. 달러 공급 확대는 다른 조건이 동일할 경우 일반적으로 원자재 가격의 상승으로 이어진다. 식량가격의 변화는 전 세계 각국의 사회적 안정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이는 2007년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 때 입증됐다. 당시 미국 경제가 둔화하더니 갑작스레 무너지기 시작했다. 연준은 5.25%의 기준금리를 1년여에 걸쳐 제로로 낮췄다. 당시까지 기준금리를 제로로 낮춘 건 전례가 없었다.

하지만 기준금리 인하로는 불충분했다. 금융권이 붕괴하기 시작했다. 금융시장을 안정화하고 경제회복을 자극하기 위해 2008년 가을부터 연준은 연속적으로 양적완화 조치를 취했다. 달러를 내주고 금융자산을 사들였다. 대개 정부 국채와 모기지담보증권이었다. 연준의 총자산은 2008년 1조달러가 안됐지만 2014년 4조5000억달러까지 늘었다. 이 역시 전례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연준의 조치가 누적적으로 가져온 효과로 2008년부터 2014년까지 달러 유동성 공급은 50% 늘어났다.

연준의 이례적인 조치는 식량가격의 급증과 맞물렸다. 2007~2011년 글로벌 식량가격 움직임은 달러공급 변화의 뒤를 따랐다.

포린폴리시는 "식량가격 급등의 전적인 책임을 연준의 통화정책에 돌리는 건 부당할 수 있지만, 국제통화시스템의 핵심 국가인 미국에서의 이례적인 통화정책은 원자재 가격에 급격한 변동성을 야기했다"고 지적했다.

식량가격이 급증하면 결국 정치적 파장으로 이어진다. 식량위기로 인한 글로벌 폭동사례는 2005~2011년 250%나 늘었다. 폭력·비폭력 시민불복종 운동도 2010년 1월 13건에서 2011년 12월 28건으로 늘었다. 먹고사는 문제는 리비아와 시리아 예멘 등에서 지속적인 내전을 부추겼다. 이집트에선 새로운 독재정권이 집권했고, 이슬람 테러단체 IS의 등장을 재촉했다.

포린폴리시는 "전 세계는 또 다시 10년 전의 문제에 봉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심각한 경제위기를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연준은 지난 3월 중순부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를 무색케 할 만큼 적극적이고 이례적인 통화확장정책을 펴고 있다. 2016년 잠깐이나마 완만하게 상승하던 미국 기준금리는 다시 제로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최근 연준의 자산매입은 2008~2014년 3차례에 걸친 양적완화를 압도했다. 연준 총자산은 올해 2월말 4조2000억달러에서 두 달 뒤인 4월말 기준 7조달러에 육박했다.

일부 식량가격은 이미 오르고 있다. 육류는 이미 지난해말 사상 2번째 높은 가격에 도달했다. 반면 공급은 줄어들고 있다. 더 중요한 건 밀이나 옥수수, 쌀 등 곡물가격이다. 개발도상국의 핵심 주식이자 칼로리의 주공급원이다. 2007~2008년, 2010~2011년 시민폭동은 곡물가격의 급격한 변화와 밀접히 관련됐다. 최근의 쌀값은 수년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연준 통화정책은 미국에서 수확하는 농작물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친다. 미국은 전 세계 최대 옥수수 수출국이자 세계 2위의 밀·대두 수출국이다.

연준의 무한대 양적완화는 미국 경제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휘청이는 것을 안정화시키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10여년 극심한 변동성을 보이다 최근 4년 동안 정상 수준으로 잠잠해진 글로벌 식량가격엔 또 다른 충격파가 예상된다. 게다가 전 세계 주요국이 코로나 봉쇄에서 서서히 탈피하면서 사람들이 다시 식당을 찾는 등 사회생활을 재개하면 식량가격 급등을 부채질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포린폴리시는 "현재 식량안보가 취약한 나라들은 2000년대와 비슷하다"며 "사하라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국가들, 중동과 북아프리카 국가들이 특히 위험하다. 중앙아시아와 남아시아 국가들, 베네수엘라 등 중미 국가들도 취약하다"고 분석했다.

개발도상국들은 오래 전부터 국제사회에 식량 등 원자재 가격 안정화 방안을 마련하자고 촉구해왔다. 현재 더 절실한 상황이다. UN은 최근 개발도상국 금융원조기금에 2조5000억달러가 필요하다며 선진 각국에 도움을 요청했다. UN 총회 의장 티자니 무하마드-반데는 "국제적 협력과 조정만이 식량시장의 안정화를 촉진하고 갑작스런 가격 충격을 막는 데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세계은행이나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들의 노력에 더해 전 세계 각국의 국제적 협력이 식량충격으로 인한 사회적 격변 확산을 막을 수 있다.

포린폴리시는 "하지만 주요 국가들이 이를 외면하고 있다. 오늘날 국제협력은 인기 없는 주제"라며 "미국은 다자주의를 경멸하고, 유럽연합은 계속 망설인다. 중국은 글로벌 공공재 비용을 분담하려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매체는 특히 미국 정부의 협력이 식량위기를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포린폴리시는 "미 재무부가 식량위기대응 채권을 발행하고 이를 연준이 사들이면서 식량가격 폭등에 시달리는 나라들을 도울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지금까지의 모습과는 달리 글로벌 협력에 관심을 가져야 가능한 일"이라며 회의적인 모습을 보였다.

글로벌 정치경제는 복잡한 방식으로 상호연관됐다. 연준의 통화정책은 전 세계 식량가격의 변동성에 영향을 미친다. 핵심 먹거리의 가격을 폭등하게 만든다. 식량가격이 급등하면 시위와 폭동, 시민불복종 운동 등이 빈번해지고 강렬해지면서 최소 일부 국가는 붕괴하거나 내전에 빠져들 수 있다.

포린폴리시는 "식량 폭동의 잇따른 물결 이후 10년이 지났지만 그 파괴적인 영향력은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시리아는 아직도 내전의 깊은 상흔을 안고 있다. 시리아 난민 물결은 지금 레바논과 터키, 유럽 각국에서 일렁이고 있다"며 "결국 이런 상황은 포퓰리즘 정치인을 양산해 낸다. 이들은 권력을 잡고 민주주의를 탄압한다. 이같은 복잡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전 세계에 10년 전과 비슷한 시나리오가 또 다시 펼쳐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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